5개국 ‘물밑 對北제재’ 돌입하나?

▲ 지난해 일본 PSI 모의 훈련에서 해상봉쇄를 시도하는 프랑스 군인들 <사진:EPA>

미국이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에 한계를 절감하고 북한에 대한 제재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중국을 방문, 6자회담 재개방안을 논의했지만 변화된 입장은 없었다. 이 자리에서 중국은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도록 강력하게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은 6자회담을 군축회담 전환이라는 카드로 대응, 중국을 당황하게 만들었다는 것.

이 때문에 미국은 대북 제재방안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뉴욕타임즈>(NYT)는 9일 부시 행정부 관계자들의 발언을 인용, 대북 압박을 강화하기 위한 나머지 5개 국 간의 비공식 협의가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현재 미국이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과 한미 합동 군사훈련 강화, 대북 정보수집과 정찰활동을 확대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대북 제재 준비 신호는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클린턴 시절 미국 행정부에서 북핵 협상을 주도했던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차관보와 대북정책 조정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도 북한의 행동이 대북 제재가 필요한 상황에 임박해가고 있음을 지적했다.

미국 내 보수성향의 헤리티지재단은 8일 ‘아시아의 안보위협’이라는 제하의 정책제안에서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의 5개 참여국은 북한이 회담에 복귀할 수 있는 시한을 제시한 뒤 북한이 이에 불응하면 이 문제를 유엔안보리로 가져가야 한다”고 밝혔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외교적 노력이 한계에 도달한 시점에서도 북한이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을 경우, 미국은 제재 움직임을 본격화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 시기는 언제이며, 사용 가능한 제재수단은 무엇인지, 이러한 대북 제재가 북한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북 제재, 언제 돌입하나?

미국이 칼을 빼들 시기에 관해서 전문가들은 정확한 예측이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한이 다가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는 데 입장을 같이 했다.

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KIDA) 책임연구위원은 대북 제재 시기를 “미국과 중국이 북한 문제에 대한 논의를 일단락하는 시점”이라고 말해 미중 간의 정치적 타협을 그 시한으로 관측했다. 김 위원은 “북한에 대한 제재는 6자회담으로 끌어내기 위한 압박 수단이기보다는 본격적인 제제 국면에 돌입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춘근 자유기업원(CFE) 부원장은 “북한이 핵을 계속 만들 수 있도록 미국이 시간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며 “미국의 정치적 스케줄에 달린 문제이지만 부시 행정부가 안정되게 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1∼2년 내에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내다봤다.

1∼2년 내 해결은 대북 제재가 그리 멀지 않았다는 주장. 현재의 대화국면은 중국과 국제사회의 동의를 이끌어내 북한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수순이라는 분석이다.

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부 언론에서 말하는 6월 위기설은 상징적인 의미 부여에 불과하다”며 “미국도 인위적인 시한 설정은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며, 구체적인 제재 국면에 돌입하기까지 여러 단계가 남아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이 말하는 여러 단계는 외교적 노력과 국제기구를 통한 압박이 당분간 병행될 것으로 보는 시각.

◆대북 제재, 미-중 합의할까?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이 4월 중으로 예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후진타오 시대 들어 북-중 양국은 전통적 우호관계를 거의 회복했다는 평가. 그러나 미국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경제발전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 중국의 입장에서는 현재 상황을 방치할 수만도 없는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북한의 최대 지원국이기 때문에 중국의 동참여부는 대북 제재에 결정적인 변수가 된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중국은 여전히 갈등상황이라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 위원은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 쉽게 예측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그는 “중국은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다”면서 “중국은 경제발전을 위해 미국을 반드시 필요로 하지만, 미국은 전략적 경쟁자이기 때문에 완충국으로서 북한 또한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부원장은 “중국은 미국과 사이가 나빠지면서 나타나는 손해가 북한을 지원하면서 얻는 이익보다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중국은 김정일 정권에 대한 지원이 가져오게 될 결과를 심각하게 고려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에 반중(反中) 정권만 들어서지 않는다면 미국과 타협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박 위원은 “북한의 핵보유 추진은 동북아의 핵 도미노 현상을 불러 올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은 이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면서 “중국도 이런 상황을 초래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사용 가능한 제재 수단, 무엇이 있나?

김 위원은 “미국이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압박수단은 PSI와 UN안보리 회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PSI를 통해 미사일이나 마약을 차단하게 되면 외화수입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게 된다”며 “대북 압박이 효과가 없다는 일부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 이라크 경제제재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사진:연합>

북한 핵문제가 UN안보리에 회부된다는 것은 사전에 중국이 동의하고 국제여론이 미국의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다양한 수단이 검토 가능하다. 김 위원은 “안보리에 회부될 경우 정치∙외교∙군사적 수단에 대한 선택의 폭이 모두 열려있다”면서 “미국은 북한 정권 교체 차원에서 문제해결을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부원장은 “대북 제재는 경제적인 것과 군사적인 두 가지 측면으로 준비될 수 있다”며 “한국과 중국의 지원으로 북한이 생존하고 있기 때문에 두 나라가 경제제재에만 동참해도 북한 정권은 큰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UN안보리에 상정되는 경우에는 군사적 수단까지 검토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이 제재에 동참하지 않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중국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면서도 북한의 최대 원조국가다. 또한 최근 들어 북한의 대외 교역량에서 중국과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어난 상태. 미국과 일본의 양국제재 효과에 대해서는 실효성에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즉, 북한 경제에 대한 타격은 분명하지만, 정책 전환까지 가져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는 것.

LG경제연구원 김석진 연구위원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2002년의 경우 북한의 교역상대 1, 2, 3위 국은 각각 중국, 남한, 일본이었으며, 이들 3개 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60%, 남한과 일본 2개 국의 비중은 34%였다”고 주장했다. 상업적 교역을 제외한 대북 원조에서도 한국과 중국의 비중은 더욱 커진다.

김석진 위원은 12일 <데일리엔케이>와의 통화에서 “한국이 대북 제재에 참여해 경제협력 및 원조를 중단한다면 그 효과는 매우 클 것으로 본다”며 “미국과 일본은 현재 대북 원조를 많이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두 국가만으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PSI를 통한 봉쇄도 그 액수를 정확히 추산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고 덧붙였다.

일본 자민당 대북 경제제재 시범팀은 지난 2월 14일 ‘무역제재에 의한 경제효과’라는 보고서에서 북한의 2000-2003년까지 3년간 평균 국내총생산을 170억 달러로 추산하고, 일본이 제재를 통해 대북 무역을 전면 중단할 경우 10억 달러 정도의 손해가 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것은 북한 국내 총생산의 5%에 해당한다.

미국은 대북 원조를 제외하고는 직접적인 교류가 거의 없는 상태다. 미국은 북한의 무기수출을 계속해서 집중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PSI가 현재 가동되고 있는 상태로 보아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따라서 미국이 해상봉쇄를 강화해도 당장 큰 성과를 새로 내오기는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박영호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을 제외한)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는 북한 주민들에게는 제2의 고난의 행군이 되겠지만 정책 결정자들에게 큰 위협이 될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 어떤 입장 취할까?

김태우 위원은 “지금까지는 미국이 회초리를 들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이 부담스럽지 않았다”면서도 “미국이 행동에 나설 경우에는 중국과 국제여론을 등에 업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상당히 어려운 입장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이 국제제재에 동참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한미동맹이 중대한 기로에 설 수 있다”고 말하고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제2의 대북정책을 준비해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부원장은 “한국은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미국이라는) 지렛대를 잃어버렸다”면서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한국은 북한의 향후 변화 과정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 안보전문가는 “한국에 대한 시험대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며 “그동안 한국 정부의 태도에 반신반의 하던 미국과 국제사회는 대북 제재 동참여부를 통해 한국과의 관계를 재조정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즉, 국제사회의 제재 요구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대북 제재에 동참하지 않게 되면 한미동맹을 포함해 이후 한국의 대북 영향력이 급속히 후퇴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노무현 대통령은 11일 독일 방문에서 “남북관계에서도 쓴소리를 할 때는 해야 하고, 얼굴 붉힐 때는 붉혀야 한다”며 “북한에 더 이상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발언이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북한을 두둔하다가 핵 보유 성명이라는 뒤통수를 맞고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 것인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DailyNK 분석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