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6자회담, 미국의 전략이 궁금하다

▲ 텍사스주 군부대에서 연설하는 부시 대통령

4차 6자회담에서 실질적인 진전이 있기 위해서는 북한이 핵포기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미국은 지난 3차 6자회담 제안에 북한이 응답할 차례라고 공을 넘겨놓은 상태다.

미국은 지금까지 자신들의 정치적 판단을 드러내지 않았다. 미국 내에서 무원칙한 대응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협상 순서를 밟아가며 주변국들과 공조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과연 미국은 4차 6자회담에 어떤 기대를 가지고 참여할지 궁금하다. 미국의 북핵 대응을 가늠할 수 있는 몇 가지 변수를 통해 미국의 판단과 향후 행보를 살펴본다.

미국은 2002년 10월 2차 북핵 위기 발생 이후 표현을 일부 바꾸었을 뿐 ‘조건 없는 先 핵폐기 後 경제보상’ 원칙을 유지해왔다. 지난 3차 6자회담에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방식의 핵폐기) 대신 포괄적 비핵화(comprehensive de-nuclearization)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내용상 차이가 없다.

미국은 지난해 3차 6자회담에서 핵폐기 원칙, 동결 및 폐기 방안, 상응조치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26일 열릴 4차 회담에서도 미국의 입장은 이 제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한이 추가적으로 상황을 악화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조건에서 미국은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미국이 북핵 동결을 전제로 중장기적으로 핵문제를 풀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이춘근 자유기업원 부원장은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북한을 주요 대상으로 선정했기 때문에 임기 내에 문제 해결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는 부시 행정부가 핵무기보다 김정일 정권을 더 위험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부시 대통령 임기 내 북핵 해결 의지가 관건

홍현익 세종연구소 안보연구실장은 18일 북핵 토론회에서 “최근 부시 행정부의 입장도 북한의 견해와 주장을 듣고 이에 대한 수정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해왔다”면서 미국의 유연성이 4차 회담의 진전을 가져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의 향후 행보에는 북한의 결단 여부, 한국과 중국의 입장, 중동질서의 변화, 미국 내 여론 등이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무엇보다 부시 대통령이 핵을 포함한 북한 문제를 임기 내에 해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있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먼저 부시 행정부가 북한 핵문제를 비확산의 관점에서 접근하는지, 아니면 테러와의 전쟁 차원으로 접근하는냐에 따라서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비확산 접근법을 취하게 되면 미국은 북핵에 대해 원칙적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북한이 원하는 수준의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 4차 회담에서 낮은 수준의 합의문 작성도 가능하다.

그러나 반(反)테러 접근법을 취하게 되면 미국은 조건 없이 미국이 요구하는 수준의 핵 폐기를 강하게 요구할 것이다. 북한이 핵 포기 의사를 밝혀도 시작일 뿐이다. 국제사회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의 해체를 추진하게 될 것이다.

북한이 여기에 응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와 함께 대북 제재를 나서게 된다. 겉으로는 대량 살상무기 해체 작업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미국의 목표는 김정일 정권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이번 4차 회담에서는 북한이 핵폐기에 대해 미국에게 어느 정도 신뢰감을 줄 수 있는지 여부가 관건이다. 아직까지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신뢰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 플랜B(외교적 해결에 실패할 경우 사용할 수 있는 수단)에 상당한 무게를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핵포기 의사 없으면 美는 6자회담 연연 안할 것

이번 회담에서 북한은 낮은 수준에서라도 ‘선(先) 핵 포기’ 의사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북한이 군축회담을 고집하거나 고농축 우라늄을 통한 핵 개발 시도를 시인하지 않을 경우 상황은 단시간에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북한이 대화를 통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고 판단되면 더 이상 6자회담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외교적 해결’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기 때문에 이번 4차 회담에 매우 진지하게 임할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는 15일 “다음 회담은 결과를 낼 때까지 며칠, 몇 주가 걸리더라도 계속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핵 포기 결단을 내릴 경우 미국은 빠른 속도로 해결 절차에 돌입할 것이다. 핵 폐기 원칙과 대상, 사찰 방법에서도 유연성을 발휘할 것이다. 한국, 일본과 함께 적극적인 안전보장과 경제지원도 나설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완전한 핵 폐기에 동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북한은 일관되게 미국과 양자협상을 통해 미국을 위협하지 않는 핵 보유국으로 남으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북한이 계속해서 고집을 부리면 한반도에는 1994년의 위기가 재현될 수 있다.

중동 문제도 하나의 변수가 될 수 있다. 지난달 실시된 이란 대선 결선 투표에서 핵 개발을 주장하는 강경보수파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48)가 당선됐다. 새로운 중동질서 창출에 심혈을 기울여온 미국에게 난제가 생긴 셈이다. 일부에서는 미국의 관심이 다시 중동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금까지 유럽연합(EU)에 아웃소싱을 줬던 이란 핵문제 협상도 상황 악화가 예상돼 미국이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이라크에 이어 이란 핵문제까지 미국이 나서야 할 경우 북핵 문제에 전력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럴 경우 미국은 한반도에서 북핵 폐기 보다는 추가적인 상황 악화와 핵무기 유출을 막기 위해 북핵의 안정적인 관리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과 중국에게 북핵 문제 해결을 위탁하는 형태가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란 핵문제, 북핵 해결 촉매제 될 수도

반면, 김태우 국방연구원 군비통제 연구실장은 “이란 핵 문제가 악화되면 미국이 북핵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이다”면서 “강경파 후보가 당선됐다고 해서 당장 미국이 나설 상황도 아니고, 이란 핵문제가 미국의 핵질서 붕괴 위기의식을 가속화 시켜 북한 핵문제 해결의 촉매제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미국이 핵 문제를 중국에 위탁해온 이유는 북핵 해결에 중국의 결단을 촉구하기 위한 측면이 크다. 미국은 중국이 북한 핵문제 해결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촉구해왔다. 결국 북한이 핵 포기를 거부할 경우 중국이 미국의 입장을 수용하도록 만드는 데에 6자회담의 근본적인 배경이 숨어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과 중국이 미래의 패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외교적 대결 형태를 보이면서 중국이 북한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취하기가 좀더 어려워졌다. 미국이 인도와 원자력 기술 이전에 합의하면서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중국이 북한 핵문제 해결 과정에서 미국의 입장을 수용하기는 어려워진 국면이다. 중국의 저울추가 북한으로 기울 가능성이 높다. 북핵 폐기를 위한 미중 공조가 좌초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외교적 해결이 어려워지면, 부시 대통령은 임기 내 해결을 위해 한국과 중국을 제외하고 일본과 함께 대북 제재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대북 제재에 돌입할 경우 최종적으로 군사적 수단도 배제할 수 없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5월 미 해군사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미국의) 기술은 전쟁의 균형점을 바꿔 우리는 이제 우리의 적을 더 효율적으로, 더 멀리서, 더 적은 민간인 희생자를 내고 타격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미국은 적에 맞서 큰 희생을 치르지 않고 전쟁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는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다.

미국이 외교적 해결을 앞세우고 있고, 주변국이 동의하지 않는 상황에서 아직까지는 군사적 옵션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미국이 외교적 해결을 포기하면 상황은 점치기는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4차 회담에서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전술을 앞세워 시간 끌기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일단 부시 임기는 넘겨보자는 것이다. 이런 시도 와중에 북∙미 간에 적당한 타협점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미국이 고농축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제거와 핵시설 철거를 합의하지 않을 경우 협상은 진전되기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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