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내 인기 상종가 치는 힐 차관보

북핵 6자회담 미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의 한국내 인기가 `상종가’를 치고 있다.

한국민과 가까이 하려는 모습에서 부터 북핵문제를 실제로 해결하려는 듯한 노력에 이르기까지 그에 대한 한국내 이미지는 종전과 비교해보면 매우 이례적이다.

직업외교관인 그는 1985년부터 3년간 우리나라에서 경제담당 1등 서기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둘째 딸 클라라도 1987년 용산에서 태어났다.

그런 그가 한국민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작년 8월 주한 미대사로 부임하면서 부터다.

그가 한국땅을 밟은 뒤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한국민의 여론 형성 과정이었다.

세계적인 IT 강국으로서 인터넷을 통한 여론의 위력을 곧바로 캐치한 것.

2002년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반미감정이 극에 달했을 때 인터넷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는 것도 염두에 뒀다.

그래서 그가 주한대사로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미대사관 인터넷 커뮤니티인 `Cafe USA’를 개설한 것이었다. 이 곳을 통해 한국민의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카페에 들렀고, 때로는 답을 올리고, 채팅으로 직접 네티즌과 소통하는 파격을 보여줬다.

네티즌들은 멀게만 느껴졌던 그를 `이웃집 아저씨’ 정도로 인식하게 됐다.

그러던 그가 대사 부임 8개월만에 동아태 지역을 책임지는 차관보로 전격 승진했고, 곧 바로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게 됐다.

한국에 대한 높은 이해도는 물론 특히 미국 주도의 보스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경계선 획정을 성공적으로 이끈 경력이 있는 분쟁해결 전문가로 `협상의 달인’이라는 별칭을 달고 다니던 그에 대한 기대는 남달랐다.

미국 행정부는 6자회담장을 제외하고는 절대 북한과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는 주한미대사관 카페를 통해 방북 의사가 있음을 공개적으로 밝히는가 하면 결국 지난 9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북한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중국의 중개없이 단독으로 만나 6자회담 재개 성사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힐 차관보는 워싱턴을 방문했던 이태식 외교통상부 차관이 에둘지 말고 김계관 부상을 `직접’ 만나볼 것을 권유한 것을 흔쾌히 받아들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유부단하게 상관의 얼굴만 쳐다보며 원칙만 고수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전 수석대표였던 제임스 켈리 전 차관보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적극적인 셈이다.

물론 그의 이런 자신감 있는 행보에는 미 행정부 고위층으로부터의 전폭적인 신뢰가 깔려 있다는 얘기들이 적지 않다.

힐 차관보는 조지 부시 대통령은 물론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으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데다, 거꾸로 딕 체니 부통령을 비롯한 대북 강경론자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해 온 미 행정부내 동아태 관련 `실세’로 부상했다.

그는 특히 명함 뿐인 6자회담 수석대표가 아니라는 것도 보여줬다.

지난 5월 북핵문제 협의 차 방한한 그의 손에 방북경험과 언론보도, 탈북자 인터뷰 등을 토대로 김일성 전 주석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시절까지 북한을 면밀히 분석한 두툼한 책 한 권이 들려져 있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그는 한국과 중국 등 유관국을 끊임없이 방문하면서 긴밀히 공조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실제로 우리 당국자들은 그를 이전의 대표와는 다르다고 평가하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도 13일 라이스 장관과 힐 차관보를 만난 자리에서 두 사람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면서 “6자회담 과정에서 두 사람의 북핵 해결의지와 역할을 크게 신뢰하고 있다”고 치하했을 정도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역사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3월9일 주한대사였던 그는 국내 한 특강에서 한일간의 독도 마찰이 6자회담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지 묻자 “나는 사학자가 아니라 단순한 협상가일 뿐이지만 역사를 존중할 줄은 안다”며 일본을 우회적으로 꼬집기도 하는 등 역사인식의 단면도 보여줬다.

나아가 그는 지난 5월 17일자 뉴욕타임스 회견에서 “특히 한반도에서는 수많은침입과 전투, 심지어 수세기에 걸쳐 절멸을 가져오는 전쟁과 곤경이 있었다”고 말해한국이 일제시대를 포함한 `수난의 역사’에도 진심어린 동정을 보이기도 했다.

북핵 문제의 심각성이 고려되기는 했겠지만 후임 주한 미대사로 사상 최고의 거물로 국무부 차관급인 알렉산더 버슈보 주러시아 대사가 내정된 것도 힐 차관보가 한국의 `역동성’을 강조하면서 그를 강력하게 설득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인터넷에는 `힐사모'(크리스토퍼 힐을 사랑하는 모임) 카페까지 생겨났으며, 네티즌 사이에서 그의 한국 이름 짓기 운동도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의 이러한 한국내 인기가 북한으로까지 `전염’될 지 주목된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