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 탈북자 10년 ‘그림자인생’ 청산

14일 경기도 용인경찰서 보안계에 30대 여성이 긴장된 표정으로 남편과 함께 들어섰다.

지난해 결혼해 용인에서 사는 이 여성은 중소도시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다문화가정의 중국인 주부로만 주위에 알려져 있었다.

“나는 중국 사람이 아닙니다.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서 살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남한으로 온 탈북자입니다.”

이 여성은 북한을 벗어나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지내 온 지난 10년의 ‘그림자 인생’을 청산하고 자신의 본모습을 되찾고 싶다고 했다.

박명희(가명.36)씨는 10여년전 북한에서 결혼을 했지만 생계를 꾸리기가 어렵자 이혼한 후 1998년 5월 무작정 국경을 넘어 중국땅을 밟았다.

이리저리 떠돌다 헤이룽장(黑龍江)성의 한 농촌마을에서 만난 조선족 남성과 가정을 이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이 남자는 명희씨를 아내로 대하지 않고 노예처럼 부렸다. 탈북자라는 꼬리표가 달린 명희씨로서는 달아나는 길 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후 명희씨는 부평초처럼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8년을 중국에서 지내다 2006년 지금의 남편 이모(56)씨를 만나게 됐다.

중국에서 중장비 대여사업을 하는 친구의 소개로 중국으로 건너간 이씨가 명희씨에게 끌렸고 오래지 않아 결혼을 결심했다.

마음이 통한 명희씨는 이씨가 준비한 돈으로 브로커를 통해 만든 중국 호구(주민등록증)로 지난해 8월 국내로 들어올 수 있었다.

입국 직후 남편과의 혼인신고를 마쳤고 지난 6월 딸을 출산하는 등 전에 맛보지 못했던 신혼의 달콤함을 느꼈다.

명희씨는 “자식까지 얻었는데 평생 남의 신분으로 살 수 없지 않느냐”며 “이제 내 이름으로 떳떳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중장비 기사로 일하는 남편 이씨도 “더 열심히 일해 아내와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 여성이 위장 입국 사실을 스스로 밝혔고 현재로선 대공 용의점이 없어 무거운 처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명희씨와 남편 이씨에게는 명희씨를 국내에 입국시킬 때 초청장에 초청인을 명희씨의 본명이 아닌 중국에서 사용했던 가명을 적은 혐의(사문서 위조 및 행사)가 적용됐다.

경찰은 일단 이 여성을 대공 합동심문기관에 넘겨 조사를 받게 한 뒤 관련법에 따라 처리할 방침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