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탈김 시대’…南 ‘엘리트’ 역할은?

지난 칼럼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남북한의 미래를 고려하면 북한에 대안 엘리트, 김부자(父子) 정권과 관계 없는 현대세계의 요구에 부응하는 엘리트의 육성을 추진할 때가 왔다(지난 칼럼 바로 가기)


그러나 이들이 북한 내에서는 정치활동이 불가능할뿐 아니라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없는 조건에서 이러한 엘리트는 주로 남한에서 형성될 수 있다. 현대적 의식을 가진 북한 지식인들에게는 남한이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기지일 뿐 아니라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대안 엘리트의 탄생지가 될 곳은 남한의 탈북자 사회이다.


2010년에 탈북자 2만명 시대에 진입했다. 탈북자들의 수가 많아지고 있지만 그들의 각자 사회적 배경은 1990년대 이전보다 많이 다르다. 1990년대 이후 한국에 온 탈북자들은 주로 농민, 근로자, 병사 출신들이 많았다. 냉정하게 판단하면 그들을 대안 엘리트로 개조할 수 있는 인재로 보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예외가 적지 않다. 첫째, 탈북자 가운데 북한 지식인들이 있다. 둘째, 나이가 젊고 능력도 있고 교육열이 높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금 한국에서 학령계층(7-20세)이 된 탈북 청년의 수는 약 1,800명에 달한다.


한국에 체류하는 북한 지식인 출신들은 현존하는 대안 엘리트로 볼 수 있는데, 그들의 잠재력이 적지 않다. 동유럽에서 반체제 작가들의 활동은 사회 변화에 많이 기여하였다. 특히 1960-80년대의 폴란드나 헝가리의 경우, 대표적인 인기 문화인들이 압도적으로 해외에서 망명생활을 했거나 국내에서 정권과 협력을 의도적으로 피한 작가들이었다. 


그들의 작품은 직접 공산체제를 비판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지만, 정권이 강요한 세계관에 도전하고 그 허구성과 내부 모순을 솔직하게 묘사했다. 1970년대에 들어와 이들 국가에서 정권을 추종하는 작가가 뜻깊은 작품을 만들 수 없는 것은 상식처럼 되었다.


한국에 와 있는 탈북자 가운데서도 작가, 시인, 기자, 영화인 등등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남한에서는 창조적인 생활을 하기 어렵다. 그들의 작품에서 주제가 될 수 있는 경험은 당연히 북한 현실과 가깝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이나 그들의 경험에 대해 남한의 주류 사회가 무관심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북한생활을 다룬 작품이 남한사회에서는 별로 시장성이 없는데, 이 때문에 북한 예술인, 문화인들은 외부 지원 없이 창조적인 활동으로 생계를 꾸리기는 어렵다.


이들을 지원하는 방법은 탈북 작가들을 후원하는 것, 또 그들의 작품을 발표하는 잡지와 출판사를 후원하는 것, 탈북 미술인들의 전람회를 추진하는 것 등 아주 다양하다.  자유북한방송과 같은 대북 방송국도 이러한 대안 엘리트의 경제적인 후원 기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문화적인  활동을 지나치게 정치화하면 곤란하다. 이러한 활동은 북한 독재정권의 실상을 밝혀주고 독재정권의 약화에 기여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명이 있다. 대안 예술, 미술, 문학 등은 역사상 거의 전례가 없는 독재 하에서도 독립적이며 창조적인 문화 전통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는 정책이다. 소련의 소설가 솔제니친, 체코 극작가 하벨, 폴란드 바이다 감독과 같은 인물들은 각자의 국가에서 독재 정권의 거짓말을 폭로하면서 참된 민족문화의 정통성을 유지했다. 2천4백만명이 사는 북한에서 이러한 작가들이 없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따라서 그러한 사람들이 자신의 역사적인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외부에서 이들을 먼저 찾아서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 지식인들을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북한 출신 엘리트 집단 형성을 추진하는 것이 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북한에서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은 북한의 현실을 잘 알고 있지만 현대적인 지식을 배우는 데 장애가 많다. 반대로, 젊은 탈북자들은 남한에서 교육을 받으면 세계 수준의 기술과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남한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탈북자들의 경험을 들어보면 문제점이 참 많다. 탈북자라면 남한에서 대학에 입학하기는 쉽지만 졸업하기는 어렵다. 탈북 대학생 대부분은 자퇴, 휴학 등으로 학교를 떠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들 가운데 능력이 부족해서 떠나는 학생들이 많지만 적지 않은 경우에는 졸업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들의 능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남한에서 대학에 입학한 북한 출신 대학생은 너무 어려운 도전에 직면한다. 첫째, 그들이 북한에서 중고등 학교를 다녔지만 북한의 몇 개 특권적인 학교를 제외하면 남한의 표준보다 학교 시설, 교육 수준이 낮다. 둘째, 그들은 탈북 이후 중국에서 체류하는 몇 년 동안 학교를 다니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셋째, 그들이 익숙한 사회문화 및 학교문화는 남한과 차이점이 많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장애는 남북 교과목 및 교육 내용의 차이다. 북한에서 배운 내용은 왜곡과 거짓말도 많고 현대세계에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도 많다. 예를 들면 북한 학생들은 김부자(父子)의 가계를 에 대해 많이 배우지만, 이같은 지식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대로, 북한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지만 현대사회의 기본지식으로 생각될 수 있는 것이 많다. 예를 들면 북한 학생들은 거의 영어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컴퓨터 사용법도 모른다. 그래서 영화 ‘크로싱’ 조감독을 맡았던 김철용씨는 “북한에서 무엇을 배웠든간에 남한에서 다시 배우는 게 좋다”고 했다. 아주 정확한 말이다. 그래서 북한 출신 학생들은 대학생활에 적응하려면 남한 학생들보다 훨씬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출신들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남한 학생들을 능가하기가 쉽지 않다.


또 탈북자 가족의 경제사정을 고려하면 공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탈북 가족의 소득은 한국 평균 소득의 약 50% 정도인데, 이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하기보다 생계를 꾸리는 데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특히, 엘리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탈북자들은 생계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부에 전념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탈북 학생들에게는 장학금 제공을 고려해야 한다. 현재의 장학금은 대학교 등록금만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탈북 학생들의 경제적인 문제를 고려하면 장학금이 많이 부족하다. 탈북자 전원에게 생활비와 대학 장학금을 지원하라는 뜻이 아니라, 상위 학생 즉, 엘리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학생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더 좋은 정책이다.


이러한 방안은 경제적일 뿐 아니라 공부를 더욱 장려하는 것이다. 이러한 장학금을 받을 학생들은 전체 탈북 학생들의 25-30%면 된다. 물론 후보자를 객관적으로 선택하기 위해 그들의 성적과 면접을 중심으로 평가 절차를 잘 짜야 한다.


이렇게 뽑은 우수학생들에게 월 40-50만 원 정도의 생활비 보조와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는 장학금을 주면 좋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그다지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장학금 지원은 국가가 지원할 수도 있지만, 장학금을 받을 자격이 있는 학생들은 많아봐야 전국 100여명에 불과하니까 재단과 사회 단체들도 후원할 수 있는 규모다.


필자는 탈북자 출신으로서 성공한 실향민 단체들에 희망을 걸어본다. 실향민 단체들은 이러한 장학금을 지원할 능력이 분명히 있다. 그들은 모든 탈북자들에게 주는 것보다 이북의 같은 고향 출신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고 해도 별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북한을 위한 대안 엘리트들, 앞으로 할일 많다.


 북한 학생 대부분이 가장 배우기 어려운 과목은 영어다. 탈북 학생들은 북한에서 영어를 접한 적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영어를 학교와 학원에서 배운 한국 학생들은 영어에 대한 선행교육 경험이 많아서 탈북자들이 그들을 따라 잡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영어 수준이 높지 않으면 그들은 영문 교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졸업한 다음에도 취업이 더 어렵다. 그래서 탈북자의 수준과 특성에 알맞은 교육이 가능한 ‘탈북자 전문 영어학원’을 설치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경제적인 문제는 탈북자 문제에 관심이 있는 외국의 지원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외국어 공부에서 유학만큼 효과가 높은 방법은 없다. 탈북 대학생들이 물론 자비로 유학을 떠나기는 어렵지만 그들에게 지원하는 것은 생각보다 경제적인 방법이 있다. 물론 미국이나 호주 유학이 부담스럽지만 필리핀 영어 연수는 경제적이며 효율적인 방법이다. 필리핀 유학은 등록비, 생활비, 항공료 등을 포함한 비용이 한 학기 당 6-7백만원이면 충분하다. 물론 능력과 열심히 하려는 의지가  확실한 후보자들을 선발해야 한다. 그래서 매년 TOEFL 같은 표준 시험에서 제일 잘 하는 10-20명의 탈북 학생들을 뽑아 필리핀 유학으로 보내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국가 지원이 어려우면 단체들이 후원할 수도 있고, 개인도 후원할 수 있을 것이다. 간고한 노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잘 사는 남한의 고소득자들은 자신과 똑같은 도전에 직면한 북한 학생을 도와주는 것은 당연하고 고상한 일이다.


북 출신 대학생들이 극복해야 할 장애는 경제문제와 영어만이 아니다. 남한사회에 대한 지식의 부족도 북한출신들의 출세를 어렵게 한다. 특히, 남한사회의 업무 스타일을 잘 모르니 취업이 어려울 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어떤 문제에 집중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다. 이 때문에 취업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현재 기업에서 실시하는 인턴사원 제도를 탈북 학생들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 좋다.


탈북 학생들이 한국의 기업에 들어갔을 때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점인 공동체에 적응하는 문제다. 인턴제를 통해 기업에 들어갔을 때,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고 어떠한 일을 해야 하는지 미리 경험하게 함으로써,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대안 엘리트를 형성하는 목적, 그리고 향후 대안 엘리트들이 할 일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북한에서 김부자 독재정권이 별 변화 없이 그대로 생존하는 단계에서 대안 엘리트는 북한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김부자 독재에 비판적인 사회의식을 확산해야 할 사명이 있다. 대북방송을 비롯한 다양한 경로를 통해 그들의 의견과 문화 작품들을 북한 주민들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또, 최근 휴대폰의 확산으로 탈북자 대부분은 북한에 두고온 가족, 친지들과 연락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한국사회에 잘 적응한 탈북 대학생들은 북한의 가족들에게 한국사회를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


둘째, 북한 급변사태의 경우, 이들은 북한으로 가서 다양한 과제를 할 수행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또 남한에서 북한민주화 운동을 한 탈북자들은 당연히 새로운 북한에서 정치인, 고급 행정인들이 될 인재로 꼽힌다. 김정일 정권 이후 ‘탈김 시대’에 이러한 사람들이 없거나 너무 적으면 북한에서 김부자 정권 붕괴 이후에도 실권을 잡는 세력은 주로 노동당 간부 출신이나 남한 출신들일 것이다. 그들의 배경과 가치관을 고려하면 간부 출신들도, 남한 출신들도 북한사회를 주도하기는 어렵고, 또 북한 민중의 신뢰를 받기도 어렵고 따라서 북 주민들을 대표하고, 보호하는 세력이 되기도 어려울 것이다.


또 한편, 남한에서 배운 지식을 북한의 현실에 잘 적용하는 대안 엘리트들은  탈김 시대에 의사, 기술자, 경영자, 학자가 될 수 있고, 새로운 북한에서 전문가 양성을 위한 재교육을 추진할 수도 있다. 북한은 아주 낮은 경제수준에도 불구하고 기초 교육은 그리 나쁘지 않는 나라다. 그래서 북한 복구사업을 할 때 북한 기술자, 의사 등 전문직종의 사람들을 처음부터 교육을 시키는 것보다 이미 갖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재교육을 하는 방법이 더 합리적인 접근이다. 남한에서 대학교육을 받고 현대적인 기술과 환경에서 활동한 경험을 가진 대안 엘리트들만큼 이같은 재교육을 잘 해낼 수 있는 집단은 없을 것이다.


셋째, 북한정권이 비교적 장기간 붕괴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는데, 이 경우 대안 엘리트들은 남한에서도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다.


북한의 미래와 관계없이 앞으로 탈북자의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아무리 적어도 한국에 오는 탈북자가 5만명을 초과할 것은 확실하고, 10만 명 이상도 충분히 될 것이다. 그래서 탈북자들의 남한사회 적응문제는 계속 중요해질 것이다.


남한에서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성공한 탈북 출신 엘리트는 젊은 탈북자들에게 역할 모델이 될 수 있다. 그들의 경험은 북한 사람들이라도 남한사회에서 평생 동안 3D업을 하는 것이 불가피한 운명이 아님을 잘 보여주고 새로 나올 탈북자들에게도 진로를 열어 줄 수 있다.


화폐개혁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의 움직임을 보면, 그들이 개혁과 개방을 결사반대하고 시대착오적인 스탈린주의 체제를 끝까지 지키려고 결정한 것은 확실하다. 이러한 전략은 김부자 체제의 종말을 연기할 수는 있지만, 동시에 그 치명적인 위기를 더욱 첨예하게 만드는 정책이다.


우리는 현 단계에서 북한 체제의 종말이 언제, 어떤 형식으로 닥쳐올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기 때문에 급변사태를 준비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북한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북한사회도, 남한사회도 알면서 ‘친김 행위’를 하지 않은 대안 엘리트들은 급변사태 준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현단계에서 구체적으로 예견할 수 없는 급변사태를 대비하는 방법이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대안 엘리트 형성 추진은 중요한 방법 중 하나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재정적으로 저렴하지만 오랫동안 체계적으로 해야 성과가 나올 것이다. 최근 남한사회의 분위기를 보면 이러한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장기적으로 지원할 정치적인 의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유감스럽지만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처럼 남한 정치인들도 다음 선거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계획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다.


그래서 필자는 이 프로그램을 후원, 지도할 세력이 국가기관보다 단체, 회사에 대해 희망을 걸고 있다. 그러나 정부기관이든, 사회 단체든 분명히 이같은 조치를 취할 때가 왔다는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