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희 기록영화 첫공개…”조선의 어머니”



▲김정은의 생모인 고영희의역할을 조명한 ‘기록영화’ 풀영상을 데일리NK가 입수했다./RENK제공

김정은의 생모인 고영희(2004년 사망)의 생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조명한 ‘기록영화’ 풀영상을 데일리NK가 입수해 분석한 결과 향후 북한이 고영희를 강반석(김일성의 생모), 김정숙(김정일의 생모) 반열에 올려 본격적인 우상화에 나설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진다.

‘위대한 선군 조선의 어머님’이라는 제목의 이 기록영화는 약 85분 분량으로 고영희 우상화를 위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영화문헌편집사가 지난해(주체100년) 제작해 올해 5월 최고위 간부들을 대상으로 처음 상영했다. 일본 대북 인권단체 RENK(구출하자 북한민중, 긴급행동 네트워크)가 최근 북중 관계자를 통해 영상을 입수, 30일 데일리NK에 제공했다.

영화는 1994년 김일성 사망 100일 추모대회 이후 촬영된 고영희의 활동 영상과 사진을 담고 있다. 고영희는 이 시기부터 김정일과 함께 군과 기업소에 대한 현지지도에 나서고, 인민군 음악회 등 공개행사에 참석한다. 1994년 김일성 사망이후부터 공개적인 국모(조선의 어머니)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영희는 1952년 생으로 당시 나이 42세였다.

또한 1998년 3월 고영희가 김정일과 함께 그의 생모 김정숙의 유적지인 함경북도 회령시를 방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레이션은 강반석, 김정숙을 예찬하면서 그 전통이 고영희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어 고영희를 지칭해 위대한 어머님이라고 표현, 그의 아들 김정은이 백두혈통을 계승하는 위대한 영도자임을 선전하고 있다.

영화 후반부에는 고영희가 자신의 50번째 생일 축하모임(2002년)에서 직접 축사를 읽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부분에서 고영희의 육성이 직접 흘러 나오는데 그의 목소리가 외부에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고영희는 축사에서 “장군님과 함께 기쁨도 영광, 슬픔도 영광, 시련도 영광으로 생각하며 보내온 30년 세월을 돌아보면서 인생에서 가장 고귀하고 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고 말했다.

고영희의 발언대로라면 늦어도 1970년대 초부터 두 사람이 연인관계를 가져온 것으로 해석된다. 김정일이 두 번째 부인으로 알려진 성혜림과 동거하며 김정남을 낳은 것이 1971년이다. 김정일이 성혜림과 동거하는 와중에 고영희를 만나기 시작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고영희는 “장군님께서 저에게 ‘당신이 다른 사람들한테 말해 보라. 내가 얼마나 힘든 7년(1994∼2000년 당시 고난의 행군 시기) 세월을 보내왔는가’라고 말했습니다.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장군님의 어려운 7년 세월을 바로 저는 보아왔고 함께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고영희는 당시 김정일의 모습에 대해 “뜻밖에 위대한 수령님을 잃고, 너무도 당황하시던 모습. 겹치는 자연재해, 어려워만 가는 경제사정 때문에 일꾼들이 아우성치고, 우리 인민들이 쌀문제, 전기문제, 그 모든 것이 장군님께만 떠맡겨지고 계실 때, 찢어지시던 가슴 아픔도, 여기저기서 가족이 흩어지고, 방랑아들이 생기고 있다는 보고로 잠 못 드시던 밤”이라고 묘사했다.

영화는 말미에 고영희가 아들 김정은의 독서와 미술, 나무심기를 지도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여준다. 이 사진에 이어 김정은이 성인이 돼 후계자 자격으로 현지지도에 나서고 열병식에 참여하는 영상이 바로 이어진다.

영화는 고영희에게 바치는 감사의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2010년 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열병식 장소에 김정일과 김정은이 동시에 등장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처리, 결국 이 영화가 고영희를 통해 김정은을 우상화 하려는 목적임을 드러냈다.

북한은 그동안 고영희가 재일교포 출신이라는 약점 때문에 본격적인 우상화를 망설여왔다. 고영희에 대한 기록영화 제작과 공개에 나선 점을 볼 때 향후 고영희에 대한 우상화는 더 활발해질 전망이다. 전현준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 체제가 출발한 이상 이러저러한 단점이 있다 해도 우상화 속도는 빨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영화에서는 고영희라는 본명이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름 대신 ‘조선의 어머니’나 ‘위대한 어머니’라는 찬양 문구를 사용했다. 이는 당분간 고영희의 실명이나 이력이 공개되지 않을 것임을 말해준다.

이영화 RENK 대표(일본 간사이대 교수)는 영상을 전한 내부 협조자의 전언을 통해 “김정일 사망 직후 김정은의 후견인 세력이 다급하게 고영희의 실명과 경력을 국가최고기밀로 지정했다”면서 “이를 어긴 자는 엄벌에 처한다는 방침을 비밀리에 내려졌고 기록영화서 이름과 경력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고위 간부를 대상으로 한 시사회에서는 사회자가 주인공에 대해 이은실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잔재주를 부렸고 주인공의 경력에 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