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군사동맹 균열, 속도 붙었나?

▲ 한-미 군사동맹의 변화를 언급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

3월 18일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국방성 브리핑룸에서 열린 직원과의 대화에서 “한반도 방위에서 한국군은 더 많은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주한미군을 해∙공군 위주로 재편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럼즈펠드 장관의 이번 발언은 한미동맹의 이상기류에 휩싸여 있는 한반도를 더욱 긴장으로 몰아넣었다. 준비도 안 된 자주국방을 연일 호언하고 있는 노무현 정부의 ‘안보 무리수’에 미국의 대응이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균형자 발언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한국이 ‘한∙미∙일 남방(南方) 3각동맹’의 한 축을 담당했던 동북아시아 질서는 냉전시대에 만들어졌던 것”이라면서 “우리가 언제까지 그 틀에 갇혀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번 노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상 더 이상 한-미 동맹에만 기대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데일리엔케이>는 50년간 이어져온 한-미 동맹의 변화가 구체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번 럼즈펠드 발언과 노 대통령의 발언이 가지는 의미와 파장을 심층 분석해보고자 한다.

럼즈펠드, 한-미 군사동맹 변화 구체화 단계 암시

지난 18일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국방성 브리핑룸에서 열린 직원과의 대화에서 “한반도 방위에서 한국군은 더 많은 책임을 떠 맡아야 한다”고 언급한 발언은 새로운 얘기는 아니지만 한반도 안보상황이 불안정한 시점에서 한국의 안보관계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이날 모임에서 “이미 1개 여단이 이라크로 배치됐고 추가병력이 한국을 떠나도록 예정된 상황에서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에 대처하는 주한미군의 대비태세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한 사병의 질문에 럼즈펠드 장관은 “한국이 유엔군과 미국의 일부 지원을 얻어 한반도 방위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지금까지 한반도의 전쟁억제와 방위에서 한국군이 더 많은 역할과 책임을 떠맡도록 한국과 협의를 해왔다”고 밝혔다.

휴전선 근처 지상방어 한국군에 넘겨

이 모임에서 럼즈펠드 장관은 “한국전쟁이 끝난 지 50년이 지났으며 한국이 자국의 방위를 위해 주된 책임을 맡는 것이 늦어진 상태”라며 “주한미군은 한국측에 이 책임을 넘겨주면서 서울과 비무장지대에서 벗어나 기본적으로 해상과 공중이라는 두 중심축으로 옮겨갈 것이며, 그곳에서 우리는 한국군에 지원적인 역할을 할 수 있지만 한국쪽의 의존도를 창출하는 식으로는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말까지 3만 5천 명이었던 주한미군 중 1만 2천 500명을 철수시킨다는 것은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한국 국방장관이 작년 10월 발표한 공동 코뮤니케에서 합의된 것이다. 그 같은 철수는 2008년 말까지 완수될 것이며, 남아있는 미군은 서울과 휴전선 밖에 있는 두 기지로 이동하게 된다.

따라서 이번 럼즈펠드 장관의 발언은 결국 휴전선 근처 지상방어 책임은 한국군에 모두 넘기고 주한미군은 후방 해ㆍ공군 기지로 이동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맥락의 발언은 전에도 있었으나 점점 구체화되고 있다. 럼즈펠드 장관이나 라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은 기회 있을 때마다 한반도 방위에 대한 한국의 역할 확대를 강조해 왔으나, 노무현 정부가 ‘협력적 자주국방’을 강조한 이후에 더 빈번해졌다.

이번 발언은 현재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놓고 한미 간에 이견이 드러나고 있는 시점이어서 더욱 관심을 끈다. 럼즈펠드 장관의 발언은 주한 미 지상군이 한반도에 있더라도 지역기동군의 역할을 하게 될 것, 한국이 대미 의존성을 탈피하기 위해 한국군도 전력증강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할 것, 유사시 미국의 군사지원은 한미관계 등 정치적인 면이 결정적으로 고려될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미국의 한반도 전력 전개가 지상군 없는 해ㆍ공군 중심으로 간다면 기존 한미연합방위체제의 억지력에 영향이 있게 되고, 미국의 지상군 지원능력에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이다.

노무현 독트린에 美 “재배치 불가피”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한국군 방위책임 증대’ 발언은 3월 20일 한국을 방문한 라이스 국무장관의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 언급과 연결돼 있다. 라이스 장관은 “한국측과 주한미군 재배치와 한국군 현대화에 대한 의견을 교환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라이스 장관의 언급은 “동북아 다른 지역에 분쟁이 발생할 때 주한미군 투입에 반대한다”는 노무현 독트린에 대한 미국 측 답변에 해당된다. 이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원칙과 지역 기동군화 방침에 따라 주한미군 재배치가 불가피하고, 대신 한국군은 현대화를 통해 전력을 증강하여 한반도 방위에서 주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국의 중대한 국익이 걸린 대만 위기가 발생했을 때 주한미군을 활용한다는 것이 미국의 방침임에도 만일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의 대만위기 개입 가능성을 차단하려 하다면 미국은 주한미군의 존재 필요성 자체에 회의를 느낄 수 있다.

▲ 한미연합 합동 야외기동훈련인 ‘독수리 연습’ 상륙훈련에 참가하고 있는 우리 군의 모습<사진:연합>

한국이 반대할 경우 미국은 주한미군의 추가 철수나 완전 철수로 대응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미국의 방침에 대해 노 대통령이 반대입장을 밝힌 것은 동맹국과의 이견을 명시적으로 노출시킨 것이며, 이는 한미관계 조정의 가속화와 한국방위에 대한 미국의 역할 축소를 초래한다. 사실상 우리 정부가 한미관계의 조정을 원했고 그런 수순을 밟으면서부터 미국의 이런 입장 변화는 예정됐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동북아 분쟁 발생 시 주한미군의 이동은 불가피하다는 미국의 입장에 노무현 정부가 반대하고 나섬에 따라 부시 행정부는 동북아 정책과 대북정책에서 한국과의 공조관계를 포기하고 일본지향으로 급선회 할 수도 있다. 미국의 최근 행보가 이미 이런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반도 유사시 미군지원 가능성 확신할 수 없어

이에 따라 한국은 조기에 대미정책을 우호적 차원으로 끌어올리지 못할 경우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 변화가 우리의 안보와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예상해야 한다.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과 한미관계 변화를 오판한 북한이 기습남침을 시도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가져야 하며, 미국이 48시간 내 증원군 출동이 지연되거나 거부됨으로써 미국의 대한민국 적화를 막지 못하게 되거나 또는 방치할지 모른다는 가능성도 인지해야 한다.

한반도 유사시 북한의 미사일 공격, 화생무기 공격, 핵보복 능력 그리고 특수부대의 게릴라전에 대해 미국의 해ㆍ공군은 힘을 쓰지 못할 수도 있다. 한국 지상군 단독으로 북한 지상군의 침공을 저지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한반도에서 새로운 분쟁이 발생할 경우 미국은 베트남에서 그랬듯이 조기에 자국민을 완전 철수시키고 한국을 영영 포기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의 전개 양상은 비록 시나리오 차원이지만 한미관계의 약화와 주한미군의 철수, 한국 정부의 민족공조 정책, 한국 내부의 반미∙친북 분위기가 북한에 의한 남한 적화 시도를 허용하고도 남을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6.25 침략전쟁 이후 현재까지도 군사력을 강화시키며 남한침략을 노리고 있고 핵무기까지 보유한 북한에 대해 노무현 정부는 “북한은 주적(主敵)이 아니고 동포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동국대 강정구 교수는 3월 16일 인터넷 신문 <데일리서프라이즈>에 올린 기고문에서 “한국의 주적은 미국”이라고 주장해서 파문이 일고 있다. 한국의 국방백서는 북한이 주적이 아니라고 하면서 “한국에 분쟁이 일어나면 미국은 69만 명의 미군을 파견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와 관련, 3월 10일 헨리 하이드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은 북핵문제 청문회에서 “한국은 주적이 누구인지 분명히 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미국은 한국의 이중적 행보 이해 못해

미 의회는 한반도 분쟁 시 69만 명이라는 대규모 미군병력의 파견을 검토하는 등 주요 역할을 하는데 미 의회를 설득시키려면 도대체 한국의 적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말하라는 것이다. 북한의 군사적 적의(敵意)가 한미동맹의 주요한 근간이라는 점에서 한국 정부가 국방백서에서 북한이 주적이라는 부분을 삭제한 것은 한국 스스로 한미동맹의 근거를 약화시킨 사건이다.

하이드 국제관계위원장, 럼즈펠드 국방장관, 라이스 국무장관의 한국에 대한 발언은 한미관계의 현주소를 표현하는 말이다. 정동영 NSC 상임위원장의 최근 발언은 악화된 한미관계에 대고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적을 먼저 규명해야 미국이 한국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은 동맹의 정신과 목적을 이해하지 못한 것”, “미국은 동맹, 북한은 동포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는 그의 발언은 동맹과 민족 사이에서 이중적 행보를 걷겠다는 얘기이다.

미국인들은 “한국은 더 이상 동맹이 아니다”, “이제 미국은 이혼을 서두를 때”라고 분노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북한이 주적이 아니라고 주장한 이상, 미국은 한반도 방위에 나설 이유가 없고 한국이 한국 방위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럼즈펠드 장관의 발언은 단순히 한국의 방위 책임 증대라는 군사적 의미보다 한미동맹관계의 질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미국의 국익에 배치되면 동맹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왜곡한 것과 때를 맞춰 일본이 독도문제를 거론하는 이유는 한미관계의 틈새가 보였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딜레마는 마땅히 도움을 요청할 만한 상대가 없다는 사실이다. 적이 누구인지도 모르니 싸움인들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앞선다.

한-미동맹 약화, 안보위기 부채질

얼마 전 울진에서 동면하던 개구리가 세상으로 나왔으나 급격한 기온 강하로 인해 떼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우리 정부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기온 변화와 북한 핵전략과 대남전략의 본질 그리고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변화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해 울진의 개구리와 비슷한 신세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북핵 해법과 한일관계에서 우리 입장이 관철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한미관계마저 악화될 경우, 한국의 안전을 보장하고 수호할 전략적 대안은 거의 부재하다. 한국은 안보 전략면에서 중대한 선택을 앞두고 있다. 우리의 과제는 기존 정책의 오류와 실패를 자인하고 국가와 국민을 보호할 새로운 전략적 대안을 시급히 찾아내는 것이다.

The DailyNK 분석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