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BDA처리에 탄력 발휘하나

“북한 핵폐기의 구체적 성과가 나오면 미국도 BDA(방코델타아시아)문제에 유연성을 발휘할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하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최근 13개월만에 개시된 6자회담에서 핵폐기 초기 이행조치 논의와 함께 양대 현안으로 자리잡은 BDA 문제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기류변화를 이 같이 소개했다.

지난 달 중간선거 이후 미국이 북핵문제 해결에 전에 없이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동시에 BDA 문제에서도 나름의 탄력성을 보일 수 있다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려는 기류가 감지된다는 것이다. 북한이 이 문제를 핵폐기 이행과 연계시켜 `버티기’로 나서는 상황을 계속 방치하기에는 `희생’이 크다는 정치적 판단을 했다는 시각이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물론 BDA 문제는 법집행의 문제로, 정치적으로 풀 수 없다는 미국의 원칙 자체에는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오광철 조선 무역은행 총재와 베이징(北京)에서 BDA 실무회의를 진행중인 대니얼 글래이저 미 재무부 부차관보는 19일 북측과 1차 협의 후 “(BDA문제에서) 실질적 성과를 내려면 장기적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원칙론을 피력했다.

하지만 미 당국이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 이 문제를 다루면서도 BDA가 6자회담의 진전을 가로막는 상황은 피할 수 있는 `우회로’를 찾아보자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정부 안팎의 여러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그 `우회로’는 결국 BDA의 조사종결 시점 및 처리 방향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미국 재무부가 지난 해부터 계속해오고 있는 BDA 조사는 아직 그 끝을 알 수 없는 상태. 조사가 끝나지 않는다면 BDA에 대해 걸어 놓은 `돈세탁 우려대상’의 멍에도 풀 수 없고 이 상황이 계속되는 한 마카오 당국도 BDA 북한 계좌동결 조치를 풀 명분이 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 거론되는 해법이 BDA의 돈세탁 혐의와 BDA와 관련된 북한의 불법행위 의혹을 분리해서 처리하는 방안이다.

그간 BDA가 북한 관련 거래내역을 수기로 처리하는 바람에 물리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외에도 조사를 통해 북한의 위폐 유통, 돈세탁 등 불법행위 의혹이 계속 불거져 나오면서 조사를 덮을 수 없게 됐다는 점이 조사 장기화의 원인으로 분석됐다.

BDA에서 가지쳐진 북한의 불법행위 의혹을 끝까지 규명하려면 그야말로 이 사안은 끝을 기약할 수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이 BDA의 돈세탁 의혹에 대한 조사와 북한의 불법행위에 대한 조사를 구분지어 처리하는 방안을 통해 원칙 훼손 없이도 BDA 문제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여러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미국 당국이 BDA의 돈세탁 혐의에 대한 조사를 우선 일단락 지은 뒤 그 결과를 마카오 당국에 통보하면 마카오 당국은 그 결과에 따라 BDA에 대해 모종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 재무부 조사결과를 근거로 마카오 당국이 불법행위와 무관하다고 판단되는 북한 자금은 동결을 풀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어 BDA 조사를 통해 드러난 북한의 불법행위에 대한 후속 수사는 사법적 판단에 따라 처리하는 식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점들로 미뤄 볼때 미국이 북한에 보일 수 있는 탄력성은 우선 BDA 조사를 최대한 신속히 마무리 짓고 조사결과를 마카오 당국에 통보하는 정도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재무부 조사과정에서 드러난 북한의 위폐제조, 돈세탁 등 혐의는 사법 당국에 넘겨 계속 수사를 하게 할 수도 있지만 북한 당국자들에 대한 미국의 사법처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 북한이 BDA와 관련된 불법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모종의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선에서 사법처리를 사실상 유예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위폐 및 돈세탁에 관여한 북측 당국자들에 대해 북 스스로 모종의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불법행위 근절을 위한 국제기구, 협약 등에 가입토록 함으로써 사실상 이번 BDA 문제를 넘어 설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인 것이다.

이 사안이 이와 같은 `타협안’을 찾게 되면 북한으로서도 더 이상 금융제재를 핵폐기 이행과 연결지을 명분이 없어질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기대섞인 전망이다.

이번 북미 BDA 협의에서도 글래이저 부차관보는 오 총재에게 이런 `시나리오’를 설명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아 보인다. 언제까지 BDA 조사를 마무리 지을 것이니 북한도 어느 시점까지는 BDA사태의 원인이 된 불법행위 근절을 위한 모종의 조치를 취하라는 제안을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시나리오대로 일이 진행되기 위한 전제는 북한이 핵폐기에 진지한 입장을 보이는 것이라고 정부 당국자들은 입을 모은다. BDA를 통한 제재가 북한의 자금줄을 옥죄는 효과를 보고 있는 터에 핵폐기 이행이 안되는 상황에서 미국이 핵심 압박카드를 일부러 포기할 리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문제를 당장 해결해야 진지한 핵폐기 논의를 할 수 있다는 북한의 경직된 입장도 풀려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전망이다. 북한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번에 설치된 BDA 실무회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신뢰를 가져야 문제가 풀릴 것이라는 얘기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