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HEU 놓고 한ㆍ미 간 미묘한 입장차

북한 핵문제 해결과 6자회담 재개를 위한 핵심쟁점 가운데 하나인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문제를 놓고 한국과 미국 간에 미묘한 입장차가 보이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24일 국회 정보위 전체회의에서 “북한이 HEU 개발을 추진해왔지만 국제사회의 감시강화로 주요 장비도입이 차단됨에 따라 농축공장 건설에는 이르지 못해 아직까지 HEU를 제조하거나 보유하지는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북한의 HEU 프로그램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본격적인 가동단계에는 들어가지 못했으며 따라서 이를 통한 핵무기 개발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국정원은 이어 북한이 원자로의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1-2기의 핵무기를 개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 HEU 핵프로그램보다는 플루토늄을 이용한 핵무기 개발 쪽에 무게를 실었다.

이에 비해 부시 행정부는 지난해 6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3차 6자회담에서 HEU 프로그램을 포함해 완성된 핵무기, 플루토늄 추출 등 모든 핵 프로그램을 북한이폐기할 경우에나 양국 관계정상화를 고려할 수 있다는 해결 방안을 제시해 놓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HEU 프로그램에 따라 핵무기 개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있지만 북한은 HEU의 존재를 완강하게 부정하면서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과 미국의 HEU 공방은 지난 2002년 10월 2차 핵위기가 점화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제임스 켈리 미 특사가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 미 국무부는 북한측이HEU 핵개발을 시인했다고 발표했으나 북한은 이에 대해 “HEU 계획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이후 미국은 북한의 HEU 프로그램을 ’진행형’으로 단정짓고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미 국무부는 지난해 12월 “북한이 (플루토늄 방식의) 대안으로 농축 우라늄 핵무기를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면서 북한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비밀리에 추진하고 있다는 “강력하고 명백한 증거”를 2년반 전에 입수했다고 주장했다.

국무부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북한이 2001년 원심분리기 관련 자재를 대량으로 구입하기 시작했고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필요한 자재를 구하기 위해 서방에접근했다는 내용의 중앙정보국(CIA) 보고서를 제시했다.

“북한이 원심분리기 자재를 대량으로 구입하기 시작했다”는 미국의 주장은 “HEU관련 주요 장비의 도입이 차단됐다”는 우리측 판단과 대비된다.

미국이 HEU 프로그램을 기정사실화하고 북한의 ’자백과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면, 남한은 아직 확정적인 사실이 없는 만큼 플루토늄에 의한 핵개발 등 시급하고현실적인 문제부터 풀어나가자는 입장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HEU 문제에만 매달려 6자회담을 지체시키고 오히려 북한에핵무기 개발의 명분을 줬다는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과 일맥상통한다.

국내 전문가들은 HEU 프로그램의 존재와 진척상황은 해당 국가가 자인하기 전에는 검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선 북한과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27일 “미국은 북한이 HEU 프로그램을 몰래추진해 북ㆍ미 기본합의가 파탄됐다고 주장해 왔다”면서 “미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의HEU 프로그램이 북핵 문제의 출발점인 동시에 대북제재를 정당화하는 근거”라고 말했다.

백 연구위원은 “결국 미국은 북한의 HEU에 집착할 수밖에 없지만, 북한과 맞닿아 있는 남한은 그런 명분보다 회담 진전을 통한 실질적인 문제해결을 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ㆍ미 간의 시각 차이를 “외교적인 접근방식의 차이”라고 설명하면서 “미국은 북한이 핵시설과 핵원료를 보유해 자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쪽으로 몰아가는 반면 남한은 남북관계와 국내에 미치는 부정적인 파장을 고려, 북한의 핵위협을 최소화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연구위원은 이어 “부시 행정부는 지나치게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북핵 문제를 다뤄왔다”며 객관적이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