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3대세습 거스를 근대의식.세력 없어

북한 엘리트층은 물론 일반 주민들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서 그의 아들 정운으로 이어지는 `세습’ 자체에 대해선 큰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세습’이라는 단어가 전근대적인 봉건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는 남한과 달리 북한 사회에서는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고, 특히 엘리트층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혼란없는 체제유지라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2월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김정운 후계 내정’ 사실을 공식 확인하지는 않으면서도 3대 세습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북한내 권력 주변의 간부들의 저항이 작아 보인다”는 점과 김 위원장의 아들이 아닌 제3자가 후계자가 될 경우 3대세습 때보다 잡음이 일어나면서 이로 인한 체제내 갈등이 확산될 수 있다는 점 등을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 들었다.

복수의 대북 소식통은 2일 “북한 권력층에서는 김 위원장의 아들중 하나가 후계자가 돼 차기 북한 체제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김 위원장의 아들중 누가 적합한가에 대한 생각은 다를 수 있어도, 3대 세습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고 말했다.

북한 고위층과 주민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혀 경험하지 못했고 6.25전쟁 이후 수십년간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지는 세습체제와 유일지배체제를 겪으면서 최고지도자를 절대시하는 우상화 교육에 세뇌돼 있기 때문이다.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제외하고는 고위 간부들조차 모두 체제의 `부속품’에 불과한 현실과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절대시하는 교육은 북한 주민들에게 오히려 세습 방식이 아닌 권력 이양을 “혼란스러운 일”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 기득권층에서는 김일성-김정일 가계가 아닌 제3자에 의한 권력장악이 도리어 권력투쟁으로 이어져 북한체제의 붕괴나 사회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고위층 탈북자는 “김정일 위원장의 와병 전에도 이미 북한 고위층에서는 아직 후계자가 결정되지 않은 데 대해 상당히 불안해 했고, 후계자 없이 김 위원장이 사망할 경우 체제가 유지될 수 있겠느냐며 북한의 미래에 대해 우려하는 분위기가 컸었다”고 증언했다.

북한의 정치사회적 여건도 수십년에 걸쳐 세습에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다.

고 김일성 주석은 1956년 자신의 경제발전 노선과 개인 숭배, 빨치산의 ‘혁명전통’에 정면 도전한 연안파와 소련파를 완전히 제거해 유일지배체제를 정착시키고, 1967년에는 빨치산파 내부의 ‘이질적’ 세력이었던 ‘갑산파’를 숙청했으며, 1969년 정통 빨치산파이지만 자신의 권위를 훼손한 김창봉 등 ‘군벌주의자’들을 숙청함으로써 절대 권력자로 자리잡았다.

당시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가 당 조직비서로 권력 2인자의 지위를 차지하고 김정일 위원장의 계모인 김성애 세력이 득세하는 등 전형적인 족벌정치 구조가 형성돼 세습이 당연히 되는 정치 여건이 조성됐다.

이에 따라 김정일 위원장은 삼촌인 김영주와 계모인 김성애, 이복형제 등 가족내 권력투쟁을 거쳐 후계체제를 확립할 수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김 위원장은 삼촌과 계모, 이복동생의 편에 줄을 섰던 인물들을 모두 숙청했다.

이러한 김정일 후계체제의 구축 과정을 직접 체험한 북한 고위층 사이에선 세습에 불만이 있더라도 승산없는 싸움에 나서는 모험을 피하는 전형적인 `눈치보기’가 자리잡았다.

현재의 북한 고위층은 김일성의 항일빨치산 동료인 김동규 전 부주석을 비롯해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체제에 불만을 드러냈던 일부 원로간부들이 정치범수용소로 보내지는 등 숙청되는 과정을 이미 경험한 만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세습구축에 적극적일 수 밖에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 권력층 속에서는 김 위원장의 결정을 기다리는 풍토가 만연하고 그 누구도 나서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이 결정한 후계구도에 반발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며 “김정일 1인 독재체제에서 선군정치 등이 강조되면서 이러한 분위기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설사 개혁.개방의 흐름으로 일부 ‘깨어있는 의식’을 가진 지식인과 젊은 층이 세습에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고 해도 2중 3중의 감시시스템 속에서 개인의 불만에 그칠 뿐 드러내놓고 반대하거나 조직적인 저항을 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최근 김정일 체제에 대한 일반 주민의 불만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먹고 살기 힘들다’는 ‘생계형 불평’일 뿐 체제에 대한 저항과는 거리가 있고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다.

인민보안성 출신의 한 고위층 탈북자는 “일반 주민은 오직 먹고 사는 데만 관심을 가질 뿐 김정일이나 정치에는 무관심하다”며 “체제의 문제점 같은 것에는 아예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증언했다.

그렇더라도 25세라는 `어린 나이’에 주민들에게 내세울 이렇다 할 업적도 없는 정운을 후계자로 내세우는 데는 부담이 없을 수 없다.

세습을 당연시 하는 풍토지만 그동안 김일성.김정일을 수령으로 내세우는 데 `영도력’과 `업적’을 명분으로 활용했던 만큼 새 후계자도 이들에 견줄 자질과 능력을 갖췄다고 주민들을 설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운이 후계자로 내정된 뒤 김 위원장과 함께 군부대와 각 지역 공장.기업소에 대한 시찰행보를 이어가고 이례적인 김일성 생일 축포행사와 5.1절 경축 행사, 150일전투 등을 기획.주도하는 등 “수령을 보좌하고 받드는 혁명 활동”에 나서고 있는 것도 업적쌓기의 일환이다.

한 대북 전문가는 “정치적 욕망이 큰 정운이 김정일 위원장과 달리 업적이 전무한 상태에서 후계자가 된 콤플렉스 때문에 앞으로도 150일 전투와 같은 치적쌓기에 열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