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조선시대 ‘현은산 日記’ 높이 평가

북한은 조선시대 문인 현적복(玄積福)의 일기인 ’현은산 일기’에 대해 “역사연구에 이바지할 수 있는 가치있는 민족고전의 하나”라며 역사.문학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23일 ’민족문화 유산 현은산 일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현적복이 1558~1600년 썼다는 이 일기가 “그 내용과 규모로 보나 지금까지 전해오는 일기들 가운데서 제일 큰 것”이라며 그 중 6권이 현재까지 남아있다고 소개했다.

중앙통신은 이 일기가 “이조 봉건국가의 사회경제 형편과 지방통치 제도, 당시의 문학.언어학.역사지리.생활풍습.미풍양속 등을 연구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으며, 주로 초서체로 쓰였고 약자와 속자(획을 간단하게 만든 한자), 이두(吏頭) 문자도 들어있다고 설명했다.

또 현은산 일기는 본기와 별기로 구성돼 있으며, 본기에는 주로 현적복의 개인생활과 친분 관계, 별기에는 여러가지 특기사항이 각각 서술돼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의 과학백과사전출판사가 발행하는 학술계간지 ’역사과학’ 최근호(2007년3호)도 ’현은산 일기의 사료적 가치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논문을 싣고 현적복의 일생과 현은산 일기의 내용 등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현적복은 1521년 12월3일 황해도 연안에서 태어나 1560년대까지 이지역 향교에서 공부했다.

서울로 유학을 떠난 그는 서울학관에서 공부하며 과거시험에 응시했다가 낙방, 이후 상의원과 군자감 등 낮은 벼슬을 맡는 데 그쳤다.

그는 1580년 경상도 하양현감, 1590년 평안도 은산현감 등을 지낸 뒤 고향에서 머물며 80세 이상 장수했다.

현적복은 ’현은산 일기’에 이러한 내용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어, 당시 수공업과 농업의 발전상, 주민 생활상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된다고 ’역사과학’은 평가했다.

특히 황해도 등에서 쓰이던 모내기 방법, 임진왜란 당시 재정 악화 현상, 16세기 후반 조선왕조의 행정 조직 구성 등이 자세히 기술돼 있다.

역사과학은 또 현은산 일기에 ’이몽학의 난’에 대한 내용도 들어 있다고 소개하고, 이 반란이 “봉건통치배들의 학정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던 수천명의 인민들이 악질 관리들을 반대하는 폭동”을 일으킨 것이라고 평했다.

이 일기는 임꺽정, 길삼산 등의 행적도 소개하고 있어 “반정부 반란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키는 데서 하나의 문제가 제기되는 새로운 자료라고 인정된다”고 역사과학은 분석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