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일 ’80일만의 외출’

북한군 축구경기를 관람하는 사진 속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은 와병설을 입증하듯 군부대와 산업현장을 활발히 시찰했던 지난 8월 이전에 비해 달라보인다.

사진전문가들이 분석한 대로 북한 매체들이 2일 공개한 김 위원장의 사진이 최근 촬영된 것이라면, 뇌관련 수술설이 있는 김 위원장의 80일만의 외출을 보여주는 ‘증명사진’인 셈이다.

북한 매체들은 지난달 4일, 김 위원장이 대학축구 경기를 관람했다고 보도했으나 일체의 사진 자료는 내놓지 않았으며, 같은달 11일엔 그가 여성포중대를 시찰했다며 관련 사진들을 공개했으나 이들 사진은 7,8월 촬영 의혹을 짙게 풍겼었다.

▲힘없는 왼팔과 왼손 = 이번 사진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점은 박수를 치는 모습의 사진이 없는 것은 물론, 양팔을 움직이며 수행 간부들에게 얘기하던 과거 모습과 달리 왼손을 왼쪽 허벅지에 늘어뜨리듯 올려놓고 있거나 오른손을 든 채 얘기하면서 왼손은 외투 주머니에 엄지손가락을 살짝 걸쳐놓은 것.

왼손을 외투 주머니에 걸친 김 위원장의 모습에 대해 국내의 신경과, 재활의학과 전문의들은 뇌혈관 계통 이상에 따른 출혈로 좌측 부전마비가 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으나, 마비 상태가 경미한 것으로 판단하고 의식이나 사고 수준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소 살이 오른 얼굴 = 이전 군부대 시찰 사진과 비교할 때 피부가 뽀얗고 살이 약간 오른 듯한 모습이다. 사진만으로 단정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외부활동 없이 병상에서 장기간 요양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사진들에서 김 위원장의 전면과 좌.우 머리를 다 볼 수 있으나 뇌수술을 했다면 감염을 막기 위해 비교적 넓게 머리를 깎아낸 흔적이 사진상으론 보이지 않는다.

8월 중순 수술했다면 2달반 동안 표시가 나지 않을 정도로 머리카락이 자라기 힘들다는 점에서 촬영 후 사진에 약간의 손질을 가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머리숱이 현저히 줄어들어 두피가 보일 정도로 성기긴 하지만, 이전 시찰 때 모습과 별반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컴퍼트’ 신발 = 김 위원장은 작은 키를 감추려는 듯 항상 굽이 높은 키높이 구두를 신고 다녔지만, 이번에 선 채 간부들과 얘기하는 사진에 나타난 신은 굽이 낮은 편안한 신발 모양이다.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 때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맞던 김 위원장의 구두는 뾰족한 코에, 뒷굽이 확연히 높아 앞부분과 사이에 깊은 홈이 패였으나, 이번 사진 속 신발은 코가 뭉툭하고 바닥은 앞뒤 구분없이 편평하다.

김 위원장이 키높이 구두를 벗고 일명 ‘컴퍼트’ 신발을 신었다면 이 역시 몸이 불편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일 수 있다.

▲경기장은 어디 = 김 위원장이 축구시합을 관람한 경기장은 야산으로 둘러 싸인 채 단풍이 든 수목과 달리 파란 잔디가 깔려 있는 등 깔끔하게 단장돼 있으나 관중석이 좌우 골대 뒷면엔 없는 등 비교적 소규모 구장이어서 일반 관중용 경기장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한 고위층 탈북자는 이 경기장이 호위사령부가 관리하는 평양시 강동군 인근의 김정일초대소내 경기장이거나 평양 상원군에 있는 인민무력부 산하 4.25체육단 축구경기장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강동군 초대소 내에는 사격장과 경마장, 농구경기장 등이 있었는데, 호위사령부가 2001년 초대소를 확장하면서 축구경기장을 만들고 잔디를 깐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 농구장에선 김정일 위원장의 차남과 삼남인 정철과 정운이 ‘세계 최장신 농구선수’ 이명훈(234㎝)과 ‘북한의 마이클 조던’ 박천종 등으로 ‘우뢰팀’을 만들어 농구경기를 즐겼었다.

4.25체육단 축구경기장에도 2000년 후 잔디가 깔렸으나, 김정일 위원장 전용이 아니어서 건강이 좋지 않은 그가 이곳까지 가서 경기를 관람했을 가능성은 다소 작다는 게 이 고위층 탈북자의 설명이다.

유리로 막은 귀빈석은 인민무력부나 무역성 등 주요 기관들이 관리하는 경기장에는 대부분 설치돼 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인조잔디 구장도 미관을 고려해 색깔을 달리하는 경우가 있지만 축구장 잔디에 넓은 줄이 가 있다면 천연잔디일 가능성이 크다”며 “천연잔디 구장도 아직은 푸릇푸릇하고, 잔디보호를 위해 덮개를 씌워두면 좀더 오래 푸른색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포츠구장 전문시공업체인 에스빌드 김정훈 팀장은 사진을 본 뒤 “군데 군데 팬 곳이 있는 등 천연잔디구장이 확실하다”고 단언했다.

▲썰렁했다 북소리 울려퍼진 경기장 = 중앙TV가 공개한 사진들은 처음엔 일반 관중은 없이 선수들만 뛰던 경기장의 관람석이 갑작스럽게 북을 다리 앞에 끼운 군인 관중으로 채워진 모습을 보여준다. 경기장 주변에 하늘색 트럭들이 줄지어 선 사진도 있어 이들을 황급히 태워나른 것 아니냐는 추측도 가능하다.

관중도 없고 전광판이 꺼진 채 선수들이 경기하는 사진, 전광판에 ‘전반 16분’이라고 써져 있고 경기는 진행되고 있으나 관중석은 텅빈 사진, 관중석이 꽉 찬 채 전광판에 ‘후반 9분14초’라고 써져 있고 경기가 진행중인 사진이 있고, 전광판이 켜진 전.후반 사진에선 모두 회전시계가 3시28분을 가리키고 있어 회전시계는 고장난 상태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사진을 재구성해보면 선수들은 관중도 없고 전광판도 꺼진 상태에서 시합을 하고 있다가, 김 위원장이 관전한다는 ‘특보’가 전해지자 시급히 전광판을 켠 뒤 주변의 군인들을 트럭으로 태워날라 관중석을 채우고 북을 치면서 응원하도록 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2년만에 등장한 갈색 반코트 = 이달 들어 평양의 낮 최고기온이 15도 안팎인 가운데 김 위원장이 걸친 갈색의 반코트는 두툼하면서도 겉면이 부드러워 보인다. 바지는 검의색.

김 위원장은 ‘현지지도’에 나설 때 통상 ‘인민복’ 상.하의나 회색 파카에 갈색 바지를 즐겨 입지만 간혹 갈색 반코트와 검은 바지를 입기도 한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2000년 이후 공개한 사진을 보면, 2001년 5월 황남 토지정리 현장 지도, 2003년 4월 함남 함흥 영예군인수지일용품공장 시찰, 같은해 10월 제534군부대 산하 농장 현지지도, 또 2004년 5월 평북 신의주시 락원기계연합소 방문, 2005년 10월 말부터 11월 초 평양자전거합영공장과 군인들이 건설한 제115호오리공장 시찰 때 이번과 같은 옷차림이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