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김정일, 잦아진 思母 행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해 8월 뇌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졌다가 재기한 후 부쩍 생모 김정숙씨가 생각나는 듯한 행보를 보여 와병 후 그의 심리적 변화 가능성과 관련, 눈길을 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월 말 생모의 고향인 함경북도 두만강 연안의 회령을 생애 처음으로 찾은 데 이어 5월말엔 북한이 김정숙씨의 대표적인 항일투쟁지로 내세우는 함경북도 연사지구 ‘혁명전적지’를 시찰했다.

당시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각급 당조직들과 근로단체조직들에서 혁명전통 교양을 일층 강화해야 한다”고 지시했다며 김일성 가계의 혁명전통 계승에 대한 강조를 중심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24일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당시 김 위원장 시찰 모습을 생모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으로 연결시켜 감상적인 어조로 묘사했다.

중앙방송은 연사지구가 김일성 김정숙 부부의 “불멸의 혁명 역사가 그 어디보다 많이 깃들어있는 땅”이라며 김 위원장의 연사지구 혁명전적지 시찰 행적을 상세히 소개하는 가운데 “수십년전 사랑하는 어머님의 그날의 모습을 그려보는 듯 표식비 앞에 서서 비문의 글발을 눈여겨 보기도 하시고 부엌과 아랫방, 윗방을 차례로 돌아보며 오랫동안 건물 마당에 서 계셨다”고 김 위원장의 모습을 전했다.

그는 또 해설강사의 설명을 들으며 “어머님의 위대한 사랑의 역사를 더듬어 보시듯, 어머님의 손길이 미치었을지도 모를 귀틀집 벽을 두드려도 보고 되창(벽에 조그맣게 낸 창문)을 살펴보기도 하며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고 방송은 소개했다.

방송은 “물매가 급한 참관도로를 따라 오르고 내리기를 그 몇번, 구호문헌(항일 빨치산들이 껍질을 벗겨 김일성.김정숙 등을 칭송하는 구호를 새겨넣었다는 나무)을 보존하는 원통 유리관을 두드려도 보고 글발들도 유심히 들여다보기를 그 몇번”이라며 생모의 사적물을 둘러보는 김 위원장의 “마음은 참으로 숙연”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이 연로한 데다 작년 8월 뇌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진 이후 회복했지만 후유증의 하나로 감상적이 되고 부모에 대한 생각도 자주 떠올리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는다.

그가 “미루고 미루던” 회령 방문을 지난 2월말 실행에 옮겨 생모의 동상을 둘러보고 외삼촌의 이름을 붙인 김기송회령제1중학교와 기초식품공장 등을 시찰한 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3월4일자에서 김 위원장이 2001년 8월 러시아 방문을 마치고 두만강을 건넌 뒤 “어머님이 그리워질 때마다 회령에 가보고 싶었지만, 일감이 너무 많아 시간을 낼 수 없었다”고 말했고, 1970년대 함북 온성군의 왕재산혁명사적지 건설현장을 시찰하기 위해 열차를 이용할 때도 회령역에 멈추지 않고 그냥 통과토록 했었다며 그의 첫 회령 방문에 큰 의미를 부여했었다.

김 위원장의 이들 지역 방문은 물론 3대세습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직접 강조하는 데 주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연사지구 시찰 때 “사랑하는 어머님의 체취가 뜨겁게 깃들어 있는 이 역사의 집” 앞에서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이 사진은 “혁명의 명맥을 이어주는 위대한 재보가 선군시대와 더불어 어떻게 마련되고 고수되고 빛나는가를 전하는 불멸의 화폭이었다”고 중앙방송이 주장한 데서도 그 목적이 드러난다.

중앙방송은 “우리가 가는 길은 철두철미 수령님의 위업계승의 길”이고 “백두의 혁명전통은 대를 이어 억세게 옹호고수”되고 있으며, 연사지구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가슴에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님을 따라 주체혁명 위업을 끝까지 완성할 맹세로 불타게 하는 역사의 땅”이라고 강조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