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행조치-상응조치’ 합의 가능할까?

제5차 북핵 6자회담 5차 3단계 회의 개막일인 8일 의장국인 중국은 핵폐기 초기단계 이행조치와 이에 대한 호혜조치 내용이 담긴 ‘작업계획’ 초안을 참가국들에게 회람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본격적인 협상에 앞서 ‘작업계획’ 초안을 회람시키는 이유는 지난해 12월 2단계 회의와 지난달 베를린 북∙미회동 등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확인했다고 판단했기 때문. 또 핵심 쟁점에서 벗어나는 논쟁을 사전에 막아 회담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는 의도로 해석된다.

‘작업계획’ 또는 ‘공동성명’으로 명명될 합의문서는 북한의 영변 5㎿ 원자로를 비롯한 5개 핵관련 시설의 가동중단과 폐쇄∙봉인 조치를 3개월 또는 2개월 안에 이행할 것을 못박는 것과 함께, 이에 상응하는 대체에너지 등을 같은 기간내에 제공하는 ‘동시이행’ 원칙을 골자로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측에서 제시한 초안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한국, 일본, 러시아 등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북한은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날 오후 베이징에 도착한 김계관 북한 6자회담 수석대표가 “한반도 비핵화를 명시한 9.19 공동성명 초기단계 이행 문제를 토의할 준비가 돼 있다”며 6자회담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임을 내비쳐 현재로서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이번 회담의 경우 낙관론과 비관론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영변 핵시설 동결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수용을 전제로 요구할 가능성이 높은 ‘중유 50만t 제공(약 2억달러 규모)과 대북제재 해제 등에 대한 ‘상응 조치’에 대해 6자회담 관련국들의 반응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 6자회담 우리측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7일 “이번 6자회담에서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은 합리적 상응조치를 취함에 있어 인색하거나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며 ‘상응조치’ 관련 각 국의 입장차를 사전에 경계했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중유지원은 미국만의 몫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중유 제공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적절한 분배를 원하고 있는 것. 일본 아베 총리는 ‘납치문제’를 ‘대북지원’과 연계시키겠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대북 채무탕감을 들어 에너지 분담에 소극적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국이 모든 걸 떠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편, 이번 회담에서 충돌이 예상되는 부분은 북한이 초기 이행조치로 제시할 것으로 알려진 핵시설 ‘동결’(freeze)에 대한 부분이다. 한국을 비롯한 5개국은 핵시설 ‘동결’에서 한발 더 나아간 ‘폐쇄’(shut down)를 요구한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결은 5∼6년 후 폐기를 염두에 두는 것이지만, 폐쇄는 초기단계 조치 합의 이후 수개월 안에 폐기 절차에 돌입할 수 있다는 개념 속에서 구상된 것이라는 게 외교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힐 차관보가 핵폐기 합의시 3개월 내에 행동에 옮겨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나온 발언으로 해석된다.

북한의 중유제공 요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에너지 문제 뿐만 아니라 대북 금융제재 해제∙테러지원국 해제∙경수로 지원∙경제 지원 등 꼭 이번 회담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이어질 협상 테이블에서 적절한 타이밍에 꺼내 들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현실적 난관들이 도처에 널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6자회담 관련국들의 낙관 속에 개막된 이번 회담에서 북핵 폐기를 위한 ‘초기 이행조치’에 대한 합의 도출이 가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