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범의 체포와 도주

 

수많은 희생자를 낸 이도강 전투 후 그 책임은 과연 누가 어떻게 졌을까? 라는 궁금증으로 한 주일을 보내셨을 우리 청취자 여러분들을 위해 준비한 “다시 쓰는 김일성 혁명역사 34번 째 시간입니다. 오늘 이 시간 함께 해 주실 김형수 선생님 나오셨습니다.

박 : 안녕하세요.

박 : 김 선생님, 전번 시간에 이도강 전투에 대해 이야기 해드렸는데요, 그 전투에서 구군군과 혁명군은 거의 좌절되다싶이 큰 피해를 보았고 지어 이학충이 행방불명까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김 : 김일성 평전 : 1934년 7월 안도현 대전자가 전투를 눈앞에 두고 이도강 기슭에서 크게 낭패를 보았던 독립연대 연대장 윤창범은 하마터면 처형까지 당할 뻔했다, 사단장 주진은 이학충을 잃어버렸다는 말을 듣고 한순간에 온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윤창범은 이도강전투는 이학충이 고집을 부려 그리된 전투이며 이학충을 데리고 왔던 김일성이 그의 귀에 대고 이 전투를 벌려볼만하다고 바람질을 해넣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고 변명했다.

주진은 제2연대 정치위원 김낙천을 시켜 윤창범의 권총을 회수하고 독립사단 사부에 도착할 때까지 왕덕태의 이목을 신경써서 윤창범의 두 팔에 포승까지 지웠다. 그는 왕덕태를 만나고 난 뒤 다 자기 불찰이라고 하면서 책임을 떠 안았다.

왕덕태는 일단 윤창범의 포승을 풀어두고 감금했다. 다행이 그 후 이학충 주임이 안전하게 구원되었고 간부들은 그의 문제는 더 이상 논의할 것이 없다는 쪽으로 쏠렸다. 하지만 왕요중은 윤 연대장을 처벌하는 이유에 대해 다르게 말했다.
“문제는 김일성 동무입니다,” 전투를 해본 경험도 없는 이학충 주임에게 이도강에서 전투를 벌리자고 추겼던 사람이 김일성이고 , 전투도중 엄호부대를 책임지게 되었는데 독립연대 제1중대 지도원이 철수하는 것을 반대하였으나, 김일성이 듣지 않고 철수하는 바람에 혼자 남게 된 두지도원이 진지에서 적들의 총검에 찔려 살해되었다는 것이다.

<중략>

* 이 프로그램은 지원출판사에서 출간한 도서 ‘ 김일성 평전’ 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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