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 아오지가 고향인 이정미 씨는 2002년 한국에 왔다. 현재 30대 초반인 이 씨는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있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10대 중반의 나이에 한국에 온 만큼 장래에 대한 고민이 더 컸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탈북민이 정착 과정에서 학업에 뜻을 둔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씨는 탈북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도전에 나섰다. 대학을 거쳐 대학원 석사, 박사 과정까지 어려운 학업의 길을 이어온 그는 최근 큰 성과를 거두게 됐다.
바로 교육부 산하 한국연구재단의 ‘글로벌 박사 펠로우십’에 선정된 것이다. ‘글로벌 박사 펠로우십’은 세계적으로 역량 있는 박사를 키워내기 위해 진행하는 사업으로 연구계획성, 글로벌 역량, 실현 가능성, 창의성 등을 100점 만점으로 평가해 최종 선발한다. 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하게 합격의 기쁨을 거둔 그는 함경북도 아오지라는 산골 동네에서 출발해 글로벌 인재 양성 사업에까지 선발된 그간의 노력의 과정을 되새기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결국 북한이탈주민 특혜가 아니냐’는 말을 수군거렸다. 비슷한 처지의 탈북민들마저 비슷한 눈초리를 보냈다. 하지만 공부에 출신이 무슨 영향을 미칠 수 있겠는가. 준비 과정에서 토익이나 영어 프레젠테이션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았지만 잠자는 시간을 쪼개 공부하며 버텼고, 결국 개인의 노력으로 일궈낸 결과라는 스스로에 대한 당당함으로 주변의 시선을 이겨낼 수 있었다. 이 씨는 “열심히 하다보니 나한테도 빛이 드는 날이 있더라”라면서 “보상이 주어지는 것 같아 살면서 가장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13세 어린 나이에 한국에 홀로 와 사춘기가 뭔지도 모른 채 10대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아가야 했기 때문에 앞날에 대한 걱정부터 앞섰던 것이다. 그러던 중 다행히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서 닫힌 마음을 열게 됐다. 그는 먼저 북한 사투리를 고쳐야겠다는 생각에 친구들에게 말투가 이상하면 얘기해달라고 했다. “북한에서 왔다,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혼자만의 오해였다. 친구들은 북한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지만 행여 상처 받을까봐 질문조차 못했다며 오히려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줬다. 친구들의 사소한 배려가 하나하나가 모여 “사람들을 날 다르게 볼 거야. 북에서 왔다고 차별할 거야”라는 생각 자체가 한국에 대한 그의 편견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오히려 나 자신이 한국 사회에 편견…스펙 쌓으며 사회 진출 준비
이 씨는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취업 준비도 열심히 했다. 한국에선 흔히 스펙이라고 불리는 경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인턴기자, 보조연구자 등 할 수 있는 분야에는 모두 도전했다. 특히 언론사에서의 인턴 경험은 4년간 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던 것보다 더 큰 가르침을 줬다. 그 과정은 혹독했지만 글 쓰는 법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고,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생생한 현장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북한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에는 취준생이라면 모두 가고 싶어 하는 한국은행에서 일해볼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한국은행 북한연구경제실은 경제학 석사급 연구원을 채용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북한학을 전공한 이 씨는 합격의 문턱에서 좌절해야만 했다. 그런데 6개월 뒤 연구원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경제학 전공자만 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자기소개서를 보고 감명 받았다”면서 “다른 프로젝트에 연구원으로 채용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국 최고의 인재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이후에는 박사 학위 취득에 매진했고, 지금은 취업, 결혼 등 비슷한 또래의 한국청년들이 하고 있는 고민들을 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이 씨는 탈북민 정착지원 제도와 관련 먼저 일반 국민들의 오해가 풀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탈북민에게 정착지원금과 주택을 무상으로 제공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알고 보면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 임대주택에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해 주는 것일 뿐 보증금의 경우도 정부의 지원이 있기는 하지만 결국은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 이 씨의 경우 한 지역에서 10년 이상 거주한 데다 청약저축 등으로 임대 주택 1순위가 되었고, 추가 대출을 받아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또한 일부 탈북민들이 정부 지원이 부족하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부 지원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마음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물론 한국사회 정착에 돈이 중요하긴 하지만 자기의 내면을 채우는 일에 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결국은 스스로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따라 한국사회 정착의 성공과 실패가 갈린다는 당찬 조언이었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