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공산주의는 60년대에 이미 죽었다

▲ 구 소련 붕괴 후 생필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소련 공산주의는 어떻게 죽었나?

1991년 소련이 몰락할 당시가 공산주의의 ‘최후’는 아니었다. 소련 공산주의는 91년에 결정적인 타격을 받은 것이 아니다. 이 무렵 소련 공산주의는 ‘이념’으로서는 죽은 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렇다고 1970-80년대 소련 사람들이 소련 정권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를 반대하지 않은 사람들도 이 체제의 기본 신화인 공산주의 사회 건설론을 믿지 않았다. 돈도 필요없고 계급도 없고 범죄도 없는 유토피아가 올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30년대 ‘선진계급’ 노동자들도 소련정권에 불신

물론 1917년 공산혁명 당시에도 공산당이 국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당시에는 공산주의를 믿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불평등이나 차별 없이 누구나 함께 일하고 아무 부족함을 모르고 행복하게 사는 유토피아를 약속한 이론은 매력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자연과학과 진보를 절대화 하는 20세기 초에는 ‘과학성’을 강조하는 유토피아론에 매력이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1920-30년대에 세계관이 형성된 소련 사람들 대부분은 공산주의를 종교처럼 받들었고 공산혁명의 세계적인 승리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 사람들은 ‘공산주의 위업’을 위해 사람을 학살하거나 희생당해 줄 정신이 있었다.

물론 언급한 ‘소련 사람들’은 주로 도시 지식인들을 의미한다. 농민들은 스탈린의 강제적인 농업협동화 정책 때문에 공산주의 정권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이 너무 컸다.

‘지배계급’으로 선전된 노동계급도 자신의 처지를 현실적으로 둘러보니 군사공업을 중심으로 공업화 정책을 위해 노동자들의 건강과 복지를 희생하도록 하는 정권에 그리 환상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관념과 공상의 영향을 쉽게 받는 지식인들은 공산당 정권을 지지한 편이었다.
물론 지식인들이 지지한 다른 이유도 있다. 1930년대는 소련 교육제도가 폭발적인 성장을 보인 시대였다. 당시 젊은 지식인들은 보통 근로자가 아니면 서민 출신이니까 그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준 체제에 충성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스탈린의 테러나 농민들의 기아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아름다운 사회’의 건설을 위해 불가피한 희생으로 봤다. 그것은 분명히 환상이었지만 이 젊은 열광자들 덕분에 소련이 제2차 대전에서 승리하는 데 많이 기여했다.

50년대 소련사람들 서방세계에 눈떠

그러나 1950년대에 들어와 소련 사람들의 의식은 바뀌었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소련사회에서는 민족주의 성향이 많이 나타났고 순수 공산주의에 대한 믿음은 떨어졌다.

군인으로 해외에 파병되었다 돌아온 수백만 명의 소련 사람들은 자본주의 국가의 생활이 얼마나 높은지 자기 눈으로 직접 보는 기회를 가졌다. 해외의 정보도 소련의 생활 수준이 비교적 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소련 사람들은 1930년대에는 “우리 체제가 아직 젊어서 그렇다”는 방식으로 뒤떨어진 생활수준을 정당화할 수 있었으나, 1950년대에까지 이러한 견해를 믿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1940-50년대 세대들 중에도 진실로 공산주의를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하는 공산주의는 소련과 러시아의 민족주의, 아니면 국가주의와 결합하는 것이었다.

1920년대 소련 청년들은 세계적인 공산주의 국가에 대한 꿈을 꾸었다. 그러나 1950년대의 청년들은 러시아와 소련의 전통이 공산주의 국가 건설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련판 ‘386’도 있었네

1950년대 말에 벌인 비(非)스탈린주의 정책은 공산주의 이념의 마지막 부흥을 가져왔다. 단기적인 정치 민주주의를 인정하는 공산주의 국가가 가능하다는 희망이 생겼던 것이다.

그러나 이 마지막 부흥은 오랫동안 계속되지 못했다. 1960년대에 활동한 사람들은 젊었을 때는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었으나 세월이 갈수록 소련 체제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1980년대에 들어와 공산주의 붕괴를 초래하는 개혁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이 바로 이 세대들이었다.

공산주의와 소련 체제에 대한 실망은 자기 개인의 경험에서 얻어진 것이었다. 60년대나 70년대의 소련 사람들은 서양 국가의 사람들이 물질적으로 더 풍부하고 정치적으로 더 자유롭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들의 부모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어도 “과도기의 임시적인 어려움”으로 정당화했지만, 그 다음 세대들은 혁명 이후 50~60년이 지나서까지 이러한 설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또, 공산주의의 기본이념인 평등사상도 유린되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원래 소련 간부들 중에는 농민이나 근로자 출신이 많았다.

하지만 간부가 된 사람들은 자기 자식들의 출세를 위해 총력을 다했다. 결과적으로 명문대에 입학한 사람, 특히 졸업 후에 인기있는 직장에 배치된 사람들은 간부 집안이나 특권층 출신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러한 현상을 잘 묘사한 농담이 있었다.

“장군의 아들이 원수(元帥)가 될 수 있을까? 될 수 없다. 원수도 아들이 있기 때문에…”…

이후에도 소련 체제를 지지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들도 공산주의가 약속한 유토피아가 올 것으로 기대하진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완벽한 공산주의는 불가능하지만 평등이 비교적 실현된 사회주의는 좋다는 논리 때문에 공산주의를 지지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민족주의 성향이 강해서 소련식 공산주의를 초강대국 소련의 국교(國敎)로 보기도 했다.

그러나 60~70년대에 이미 소련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는 공산주의 사상이 죽어 있었던 것이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역사학 박사

<필자 약력> -구소련 레닌그라드 출생(1963) -레닌그라드 국립대 입학 -김일성종합대 유학(조선어문학과 1986년 졸업) -레닌그라드대 박사(한국사) -호주국립대학교 한국사 교수(1996- ) -주요 저서 <북한현대정치사>(1995) <스탈린에서 김일성으로>(From Stalin to Kim Il Sung 2002) <북한의 위기>(Crisis in North Korea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