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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지난달 29일 워싱턴 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열린 비공개 세미나에서 “6자회담에서 한국은 미국에 별로 도움이 안됐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 자리에 한국 대사관 직원이 참석한 것을 확인하고 “메모를 해서 서울에 보고해도 좋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표현방식이 꽤 직접적이다. 구체적인 정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 행정부가 한국 정부의 6자회담 태도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그대로 전달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이러한 힐 차관보의 한국정부에 대한 정면 비판은 4차 6자회담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공동합의문 도출에 집착,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수로를 합의문에 포함시킨 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또 6자회담 합의문 작성 이후 한국 정부가 공동합의문을 핵문제 타결로 인식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포괄적인 대북협력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지시하고,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복안이 있다’는 등 미국과 협의 없이 지나치게 한국이 앞서가자 불만을 터트린 것이다.
공동합의문 타결 바로 다음날 북한이 경수로 선(先)지원을 요구하고 핵 폐기를 조기에 이행할 의지가 없음을 강조한 상황에서도 대규모 방북과 경제 지원, 남북관계 관련 법률을 조기에 통과시킬 조짐을 보이자 힐은 “북한의 버릇을 나쁘게 하고 있다”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한국정부, 북한 고집피우기 버팀목 되면 안돼
4차 6자회담 공동합의문에는 체제안전보장과 경수로를 포함, 북한의 요구가 대부분 수용됐다. 만약 5차 6자회담 주요 현안에서도 한국 정부가 북측에 기울어질 경우 북한이 계속 고집을 피울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북한 고집 피우기’에 한국이 버팀목이 되어주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번 힐 차관보의 발언은 11월 초 5차 6자회담에서 공동 합의문 이행 시기와 절차를 두고 상당한 마찰이 예상되는 가운데 한국 정부가 원칙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는 미국의 압력이 커질 것임을 시사한다.
이정훈 연세대 교수는 “5차 6자회담은 굳건한 한미공조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야 진진이 가능하다”면서 “한국이 스탠스를 계속 북한측으로 가까이 할 경우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한미동맹 악화를 불러 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미 의회는 6일 힐 차관보를 출석시켜 ‘6자회담과 북핵문제’ 청문회를 열고 공동성명이 미국이 요구한 고농축 우라늄(HEU) 등의 사항은 포함되지 않은 반면, 중유제공과 경수로 문제가 포함된 데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특히, 중유 문제에 대해서는 카트리나 대참사를 겪은 미국 내부의 어려운 상황을 들어 추가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발상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자세를 취했다.
힐 대표 협상력 축소 가능성
미 의회가 이러한 중유 제공 불가입장 등 미 의회의 강경한 분위기가 계속 유지될 경우 향후 5차 6자회담에서 힐 차관보의 입지가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그만큼 한•미 갈등의 소지도 높아졌다.
미국은 지난 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미 의회의 승인 없이 대통령 재량 범위 내에서 북한에 중유를 지원했다. 미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할 경우에는 북핵 협상에 불만을 보이고 있는 데다 미국민의 세금을 사용한다는 명분이 추가되기 때문에 통과가 쉽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는 “경수로 문제를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북한의 先 경수로 요구뿐 아니라 한•미 사이에도 이견이 노출돼 있다”면서 “한국 정부는 핵 폐기 과정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시기적으로 어정쩡한 입장이지만 미국은 검증이 완료된 시점에서 제공 여부를 논의하겠다는 분명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한•미간 계속되는 마찰을 우려했다.
한 정부기관 연구원은 “핵문제 해결 없이 남북관계가 속도 제한 없이 달려가면서 미국 내에서는 한미공조보다는 민족공조로 기우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다”면서 “미 의회는 미국 내 한국에 대한 냉소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