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커스] 北 경제교류 의지와 비핵화 의구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12일 오전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정상회담을 앞두고 악수하고 있다. /사진=케빈 림, 더 스트레이츠타임즈(Kevin Lim, THE STRAITS TIMES)

문재인 대통령의 7박 9일 유럽순방(2018.10.13.~10.21.)을 끝으로 제2차 북미대화가 시작되었다. 빠르게 진행되는 듯 했던 북미 비핵화협상의 상승세가 경착륙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세간의 관심과 우려는 문재인 대통령의 부드러운 외교가 이번에도 반전을 선사했다. 북한의 지도자를 처음으로 판문점 남쪽으로 맞이한 것도,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힘겨운 조율 과정에서 위트 있는 응원단장으로 등장한 것도 그리고 3번째 시도되는 교황의 북한 방문에 대한 화답까지 모두 문재인 대통령의 ‘뚜벅이 외교’가 빛을 발한 결과였다. 그러나 이번 유럽 순방에서 우리는 ‘조선반도의 비핵화’의 여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점도 다시 한 번 확인하기도 하였다.

2019년 초에 열리게 될 북미대화의 역사는 6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시작으로 북한과 미국은 1974년 5월 IAEA가입, 1991년 12월 남북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 2001년 9.11테러 이후 부시행정부의 ‘3대 테러국가 지정’, 2002년 7월 북미외무장관 회담에서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프로그램 의혹의 제기와 같은 해 10월 제네바 합의 파기까지. 제네바 합의 파기 이후 북핵문제는 6자 회담으로 넘어간 이후에도 2005년 9.19공동성명과 김정일 비자금 창구인 BDA은행에 대한 제재(2005년)와 1차 핵실험(2006.10.09.)까지 게임의 게임을 거듭하며 65년의 시간을 지나 2018년 6월 첫 북미정산회담을 개최하였다.

1차 핵실험을 계기로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를 감수하며 6차례의 핵실험과 17차례의 미사일 발사시험을 진행하였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국제사회로 걸어 나왔다. 그 65년간의 북미대화의 갈등과 대화의 중심에는 ‘핵’이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북한의 핵 보유 목적과 미국의 핵 해체과정에 대한 양측의 불신과 관료의 타성에서 촉발된 오해 그리고 운명의 여신의 얄궂은 역사는 65년이란 시간을 한 사건으로 묶게 하였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가 알고 싶은 것은 오직 하나, 김일성이 미국의 스티븐 솔라즈(Stephen J. Solarz) 특사와의 대화에서 테이블을 손으로 내리치며 노성을 지른 것과 같이, ‘북한에 재처리 시설이 없느냐’는 것이다. 당시 영변의 핵시설 사찰에 대한 IAEA의 관심과 오늘날 유럽 정상들의 머릿속에 남은 잔상이 오버랩(Over lap)되는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이미 경험했지만, 핵 사찰의 핵심은 플로토늄 샘플과 추출한 핵폐기물이 서로 짝이 맞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1992년 당시는 플로토늄의 샘플과 핵폐기물간의 짝이 서로 맞지 않아 북한이 공식적으로 주장하는 것보다 더 많은 플로토늄을 보유하고 있다는 판단에 이르렀고, 북핵 사찰단의 책임자인 빌리 티아스(Willi Theis)는 “북한은 IAEA의 분석능력을 터무니없이 과소평가했다..”로 당시를 평가했다. 이에 대해 돈 오버도퍼(Don Oberdorfer)는 모순되는 사항을 하나하나 지적했을 때 미처 그럴듯한 설명을 준비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은 북한이 핵 사찰에 동의함으로써 얻으리라 기대했던 보상을 얻지 못했다고 그의 저서에서 서술하고 있다. 핵 사찰을 한 IAEA나 검증을 받은 북한 모두에게 아무런 실익이 없었던 것이다.

그 후로 25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세계와 북한은 머지않아 지루한 게임을 다시 할 것이다. 이번은 ‘준비부족에서 오는 실수’와 ‘경종이 필요한 관료의 타성’이 있었던 그 때와는 다르게 ‘서로의 체면을 세워주는 세련된 만남’이 되어야 한다. 한미군사훈련 중단과의 연결은 북한에게 ‘핵 보유의 정치군사적 명분’을 주는 우를 범할 수 있는 동시에 북한 핵에 대한 미국의 시각을 의심하게 될지 모른다. 북한이 왜 비핵화 하려 하는지, 비핵화의 대가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이 북미 양측에게 25년 전으로 돌아가지 않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이 시점에서 본지에서 필자가 언급한 ‘북한의 NPT복귀’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 NPT에 가입을 하면 북한의 핵보유국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것이라는 염려를 고려하더라도 지금에 와서 50년이 넘는 북한의 핵 역사를 단 번에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주지해야 한다.

이미 북한은 1973년 NPT가입과 동시에 상응하는 대가와 맞교환의 의지를 보였으므로, 북미정상회담이 북한에게 더 이상 선전용이 될 수 없는 것처럼 ‘NPT 복귀’가 ‘핵보유국 인정’이라며 무릎을 꿇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필자에게 ‘북한의 비핵화의 저의(底意_ulterior motive)’보다 신선하지 않다. 핵이 완성되었으니 경제 강국건설에 집중한다는 논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북한의 변화가 있다. 얼마 전 국제학술대회에서 보인 조선(북한)학자들의 행동은 이러한 의문을 더욱 증폭시켰다. 영어가 섞인 용어를 번갈이 쓰거나 참가자들과의 사진을 찍어달라며 필자에게 말을 거는 모습, 그리고 자신의 논문을 참고하라며 노트에 서슴없이 적어주는 모습에서 최근에 들었던 북한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자본주의에 대한 프로파간다(Propaganda) 대신 ‘이해를 위한 의지(Willingness for Understanding)’를, 경제교류로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평화에 기여하겠다는 그들의 발표에서 북한은 분명 세계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변화로 ‘북핵에 대한 필자의 태도’를 바꾸기에는 조금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았다.

에너지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 개발이라는 강석주 대표의 말이나 IAEA의 핵 사찰과정에서 보였던 북한 관리의 모순된 행동들을 유럽의 정상들은 아직 기억하고 있다.

북미정상회담과 공동성명은 북한으로서는 실로 커다란 위업이라 말할 수 있다. 핵개발을 둘러싼 위기감은 북한을 어느덧 미국의 대외 관계에서 중요한 국가로 부상하게 했고, 이는 북한에게 국내 정치용으로도 활용가치가 큰 것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진정으로 그것뿐일지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이므로 앞으로 개최될 2차 북미정상회담은 1차와는 다르게 양측 모두에게 실용적이고(Practical) 현실적이며(Realistically) 검증가능한 회담(Verifiable Summit)이 되어야할 것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