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vs 트럼프…‘트럼프의 미국’에서 걱정해야 하는 것

북한은 미국의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은근히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기대해왔다. 지난 6월 북한의 대외선전매체 ‘조선의오늘’이 힐러리 클린턴을 ‘우둔하다’고 평가하면서 트럼프를 ‘현명한 정치인’이라고 치켜세웠는가 하면, 지난 9월 말 방북한 일본 언론인에게 북한 인사들이 “민주당보다 공화당이 얘기가 통한다”며 트럼프가 당선되면 뭔가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았다고 ‘미국의소리’ 방송이 보도하기도 했다.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됐다면 ‘전략적 인내’와 ‘대북 제재 압박 강화’라는 기존의 오바마 행정부 대북정책 기조가 이어졌을 것인 만큼, 북한으로서는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할 수 있는 트럼프의 당선이 반가울 수 있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미치광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김정은과의 대화 가능성’을 닫아놓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트럼프, 과감한 북미대화 시도 가능성

트럼프가 대선 과정에서 내놓은 말들이 다소 들쭉날쭉해 트럼프의 기존 발언에 근거해 대북 접근법을 예상하기는 아직은 이른 것 같다. 다만, 민주당의 기존 정책과는 다른 정책을 구사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리라는 점, 아웃사이더적인 트럼프의 성향으로 볼 때 과감한 북미대화를 시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어 보인다.

이를테면 북한이 주장해 온 한미합동군사훈련 중지와 한반도에서의 평화협정 체결, 그리고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유예, 북한 비핵화까지를 패키지로 논의하는 것과 같은 통 큰 형식의 협상이다. 물론, 아무리 트럼프 행정부라도 동맹국인 한국과의 협의 없이 일방적인 협상에 나서기는 어렵겠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 틀에 얽매이지 않는 과감하고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해보겠다고 하면 우리 정부로서는 난감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아마도 국내에서는 ‘통미봉남’이라는 비판과 함께 한미동맹의 균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게 될 것이다.

협상 잘 안됐을 경우가 더 걱정

하지만, ‘트럼프의 미국’에서 정작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것이 아니다. 초기에 시도될 가능성이 있는 북미대화가 잘 굴러가지 못하고 대화 국면이 대결 국면으로 전환됐을 때가 진짜 문제이다.

북미 협상이 쉽지 않은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아무리 통 큰 협상을 시도하더라도 북한이 비핵화에 쉽게 이르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북한은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새로이 열린 협상국면에서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고 일부 불능화하는 단계까지 갔지만, 과거 핵활동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기 위한 ‘시료채취’는 끝까지 거부했다. 북미간의 불신이 여전한 상황에서 북한만 핵무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북한 입장에서는 협상이 잘 진행된다 해도 트럼프 행정부만 믿고 핵을 포기하긴 어렵다. 미국은 4년 단위로 합법적으로 정권이 바뀌는 나라인데, 차기 행정부가 어떤 대북정책을 펼칠 지 알고 핵을 포기하겠는가. 빌 클린턴 행정부 때 발전됐던 북미관계가 바로 다음 부시 행정부에서 180도 돌변했던 경험을 북한은 기억하고 있다.

이것은 평화협정이 체결되느냐 마느냐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이다. 미국이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라고 해서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북미관계는 북한이 미국 주도의 세계체제에 편입될 수 있게 유연하게 변화하지 않는 한 근본적으로 개선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1994년 같은 전쟁위기 다시 올 수도

트럼프 행정부의 북미대화 시도가 무산되고 대립 구도로 들어가면, 북한은 좀 더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서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과시할 것이다. 아니, 협상 과정에서도 북한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핵과 미사일 능력 과시를 멈추지 않을 수 있다. 괌까지 타격 가능한 무수단 미사일을 안정적으로 실전배치하고, ICBM급으로 간주되는 KN-08이나 KN-14 미사일 등이 미국 앞바다를 위협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북한 미사일이 로스엔젤레스 앞바다에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 되면,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용인할 수 있을까?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의 이익에 침해가 발생할 경우 절대로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국민의 안전에 위협이 발생하는 상황이 되면 트럼프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북한의 도발적 행동이 트럼프 행정부를 자극하게 되면 한반도에는 다시 한 번 전쟁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 북한이 지금까지 수십 차례 전쟁 위협을 했지만, 우리가 한반도 전쟁 위기를 얘기할 때 1994년을 거론하는 것은 1994년 당시에는 미국이 실제로 전쟁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은 퇴임 뒤 기술한 ‘My Life’라는 회고록에서 “(1994년) 당시 전쟁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막겠다는 결심을 갖고 있었다”고 썼다.

‘트럼프의 미국’에서 또 다시 그런 위기가 닥칠 가능성이 있는데, 우리는 거기에 대응할 준비가 돼 있는가? 1994년 위기는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과 극적인 타결을 이끌어내면서 협상 국면으로 전환됐다. 또 다시 그런 외부적 요인에 희망을 걸 수는 없지 않겠는가.

미국의 대북압박을 활용해 북한의 핵포기를 유도하고 그와 동시에 미국의 행동이 실제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국민들의 불안감이 과도하게 확산되지 않게 믿음을 주는 리더십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트럼프의 미국’과 함께 할 한국의 지도자는 내치와 외치에서 능란하면서도 배짱있는 리더십을 가진 유능한 지도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정세가 불확실하게 변하고 있는 지금 한국의 리더십 문제는 빨리 해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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