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철 전 남북연락사무소장

“판문점 남북 직통전화는 남북 대화의 상징이자 뿌리입니다. 그런 전화가 단절될 위기에 놓였다고 하니 참 안타깝습니다.”

1990년대 초반 남북연락사무소장을 지낸 김연철(68) 통일교육연구원 사무국장은 13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북한의 ‘남북간 직통전화 단절’ 발표에 대해 “1971년 첫 개설된 직통전화는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유지돼 왔다”며 “남북관계가 점점 더 힘든 국면이 돼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소회를 밝혔다.

통일부 퇴직공무원 모임인 ‘통일동우회’ 산하 통일교육연구원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그는 1990년대 초반 남측 판문점 연락관을 맡았으며, 1990-92년 남북 고위급회담 당시 남측 대표단 안내관으로 참여해 연형묵 북측 대표단장을 안내하기도 했다.

남북 직통전화의 ‘과거’를 상세히 머리에 담고 있는 그는 “판문점 남북 직통전화는 1971년 박정희 정부 때 북한과 한번 대화를 해 보는 게 좋겠다는 취지에서 우리가 제안한 것을 북쪽이 선뜻 받아들이면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는 6.25전쟁의 아픔이 채 가시지 않았고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매일같이 `적화통일’을 부르짖던 때”였지만 “북측이 우리의 제의를 받아들이면서 대화 국면이 전개됐다”고 회상했다.

“처음에는 적십자를 통해 이산가족을 찾아주기 위한 회담을 하자는 명목으로 대화가 시작됐지만 적십자 사이에 전화가 연결된 뒤에는 남북조절위원회도 전화를 주고받게 됐고, 그 이후 직통전화 회선이 늘어나면서 남북간 대화도 늘어났습니다.”

남북 직통전화는 특별한 일이 없는 날에는 매일 오전, 오후에 각각 1번 통화가 이뤄졌다.

그는 “연락관들이 매일 출근해 오전 9시-9시5분에 전화를 하고, 일종의 퇴근 개념으로 오후 4시에 또 전화를 했으며, 그밖에 당국의 지침에 의해 공식 연락내용을 주고받기 위해 통화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남북 연락관간에 비공식적인 농담을 하는 일은 없이 모든 통화는 공식적인 내용”이었으나 “다만 양쪽에 무슨 큰 행사가 예정돼 있을 때는 전화를 통해 서로 준비 상황을 묻기도 했다”고 말했다.

늘 주도권 싸움을 하는 남북 사이에 누가 먼저 전화를 걸 것인지도 예민한 사안이었지만 이 문제는 “홀수 날은 우리가 먼저, 짝수 날은 북쪽이 먼저 전화를 거는 식으로 해결했다”는 것.

통화 내용이라야 상대방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아 “잘 들리느냐”며 회선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정도.

그는 “당시만 해도 판문점에서 일어나는 상황이 아니면 남북 접촉이 없을 때라서 직통전화 개설 초기에는 언론의 관심이 대단했다”며 “남북의 공식회담이나 사건.사고, 군사 부문에서 이뤄지는 일들이 모두 판문점에서 논의됐고, 남북이 어떤 내용을 통화했는지가 숱하게 보도됐다”고 말했다.

북한이 12일 발표한 군사분계선을 통한 육로통행의 제한.차단, 판문점 적십자연락대표부 폐쇄, 판문점을 경유하는 직통전화 단절 등 일련의 강경 조치에 대해 김 전 소장은 “북측이 대내외로 제일 힘든 국면이어서 우리 정부를 자극하기 위해 취한 조치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풀이했다.

그는 “(북한이) 뭔가 목표가 있는 것 같다”며 “저렇게 정치적인 것을 통해, 개성공단 등 현장을 압박해 남측으로부터 빠른 시일 안에 자신들이 목표로 하는 것을 끌어내려는 국면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남북 직통전화는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 이후 몇번 ‘일시 중단’되는 곡절을 겪었다.

그는 “정확한 것은 기록을 봐야 하겠지만, 지금 기억으로는 그때 한 3년 이상 연락이 안 됐던 것 같다”며 “북한이 남측의 팀스피리트 군사훈련에 항의하면서 연락이 안 되기도 했고, 남한의 탱크저지선을 ‘남북 장벽’이라고 부르면서 군사정전위원회를 열었을 때, 1994년 남북 실무접촉에서 ‘서울 불바다’ 발언이 있었을 때 등 일시적으로 일이 생겨서 전화 연락이 안 됐던 때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숱한 고비 속에도 명맥을 이어온 남북 직통전화는 계속 유지돼야 한다고 김 전 소장은 역설했다.

그는 “직통전화 문제는 앞으로 잘 될 것으로 희망한다”고 애써 강조하면서 “다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직통전화는 남북을 잇는 남북 대화의 상징이자 역사의 뿌리”라면서 “빨리 남북간에 화해협력과 교류가 활성화되고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사라져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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