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원전 ‘사용후 핵연료’ 발등에 불

한국은 1991년 노태우 정부의「비핵화 선언」과 1992년「남북한 비핵화 공동선언」에 따라 농축과 재처리를 공식적으로 포기한 상태다.

북한이「남북한 비핵화공동선언」을 위배하면서 파키스탄과 우라늄 농축을 위한 비밀거래를 할 때에도 그랬지만, 북한이 노골적으로 “우리는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선언한 이후에도 한국은 ‘비농축ㆍ비재처리 정책’을 준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수입된 농축 우라늄을 가공하여 경수로용 핵연료를 만들고 있으며, 분말(Yellow Cake) 상태로 수입된 천연우라늄을 중수로용 원료로 가공하고 있다. 20개 원전이 매년 배출되는 사용후핵연료는 재활용 또는 감용(減容)ㆍ소멸(消滅) 처분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중간저장소(水曹)에 보관하고 있다.

바로 이 사용후핵연료 문제로 요즘 원자력연구소 등의 과학자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각 원전이 보유한 중간저장시설이 포화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850톤씩 쏟아져 나오는 사용후핵연료

2006년 1월 현재 한국은 가압경수로(PWR) 16기, CANDU 중수로 4기 등 총 20기의 원전을 가동 중이며, 4기를 건설하고 있다. 이들의 발전용량은 약 5,600만 kw로 전체 전력생산의 38%를 점하고 있다. 이들이 배출하는 사용후핵연료는 매년 850톤이며, 현재까지 누적 비축량은 7,400톤에 이른다.

원자력진흥계획에 따르면 감용ㆍ소멸 처리를 거치지 않을 경우 사용후핵연료의 누적량은 2010년에는 11,248톤 그리고 2020년에는 18,138톤에 이를 전망이며, 2100년에는 88,000톤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재처리를 할 수 있다면 이들을 분해하여 재활용할 자원들을 분리해내고 수십 분의 일로 줄어든 최종 폐기물을 간편하게 처분할 수 있지만, 재처리가 금지된 한국으로서는 폐연료봉 상태로 각 원전(울진, 영광, 고리, 월성)에 설치된 수조에 중간 저장해오고 있다.

그 동안 조밀화(reracking) 작업을 반복하면서 여러 차례 용량을 확장하여 현재 용량은 10,500톤이나, 발열에 따른 위험성 때문에 무한정 조밀화게 할 수도 없다.

이런저런 사정들을 감안할 때 사용후핵연료 누적량이 16,000톤이 되는 2016년에는 포화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요컨대 사용후핵연료를 영구 처분할 방법과 부지를 확보하는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간단하지 않는 심지층(深地層) 처분

우선 생각할 수 있는 영구 처분 방법은 깊은 땅속에 묻는 것이다. 사용후핵연료 내에 생성된 각종 자원의 재활용은 아예 포기하고 감용 소멸 처분 없이 향후 수십 년간 배출되는 사용후핵연료를 그대로 묻는다고 할 때, 우선 광대한 지하공간이 필요하다.

지하 500-1,000m 깊이에 있는 안정된 화강암 지역을 찾기도 어려울 뿐더러 2km × 2 km 정도의 공간을 만든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고준위방사성 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가 천연우라늄과 같은 수준의 방사성(radio-toxicity)을 내는 물질로 바뀌기까지는 약 30만년이 소모되는데,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 중간에 빙하기 같은 것이 오던가, 대규모 지진 등이 발생한다면 후세에 엄청난 재앙을 안겨줄 수도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난 부안사태에서 보듯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을 구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대단히 민감한 문제가 된다.

물론 과학자들의 입장에서는 한국이 아예 본격적인 재처리(습식재처리 또는 Wet Reprocessing)를 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선 엄청난 가치의 자원이 재활용된다.

사용후핵연료에서 추출해낸 잔여 우라늄은 경수로 또는 중수로의 연료로 재활용되고, 분리된 플루토늄도 고속로 또는 고속증식로의 연료로 사용되며, 각 분야에서 소중한 자원으로 쓰이는 방사성 동위원소들도 생산된다.

‘건식 재처리’ 방안 고려해봐야

당연히 최종 폐기물은 수십 분의 일로 부피가 줄어든다. 필요한 지하공간이 최소화되어 부지선정이 용이해짐은 말할 나위가 없다. 최종 폐기물의 발열이 줄어들어 매장의 효율도 높아지며, 방사성이 통상수준까지 줄어드는데 걸리는 기간도 1,500년 이하로 줄어든다. 하지만 플루토늄이 핵폭탄 물질이기 때문에 확산성 문제가 야기되며, 현재의 국제정치적 여건에서 이를 시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은 과학자들도 잘 알고 있다.

과학자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이 ‘건식 재처리(Pyroprocessing: 고온야금) 방식’이다. 이는 핵폭탄 물질인 플루토늄이 따로 분리되지 않고 여타 불순물과 섞인 상태로 분리되는 방식으로 확산성 문제가 적다. 상당한 수준의 자원재활용이 가능하여 최종 폐기물의 감용 효과도 크다. 방사성이 통상 수준까지 줄어드는데 걸리는 기간은 300년 이하로 줄어든다.

미국도 사용후핵연료의 영구처분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미국은 클린턴 대통령 지시로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정책을 위해 상용 재처리를 중단한 이래 쌓여가는 사용후핵연료를 영구히 처분하기 위한 방안으로 오하이오주 Yucca Mountain에 영구처분장을 마련했다.

미국의 경우 이미 50,000톤의 사용후핵연료를 비축하고 있으며, 추후 감용ㆍ소멸을 거치지 않는다면 2100년에는 1,300,000톤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어 향후 Yucca Mountain 이외 여러 곳에 심지층 처분장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예상되고 있다.

이에 미국 정부도 감용ㆍ소멸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사용후핵연료 처분의 효율성을 극대화하여 향후 100년간 Yucca Mountain 하나만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효율적 처분을 위해서는 감용, 소멸, 발열 축소, 환경 위해도 축소(반감기 축소) 등이 불가피하며, 이를 위해서는 습식 또는 건식 재처리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과학자들이 사용후핵연료의 감용처리를 위한 방안을 도출하고 타당성을 증명해도, 문제는 누가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하는 것이다. 즉, 누가 어떻게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정치적 여건과 제도를 만드느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기본적으로는 ‘농축 재처리 금지’ 체제가 종식되는 것이 좋지만, 당장 여의치 않다면 ‘건식 재처리'(Pyroprocessing)을 통한 감용ㆍ소멸 정책을 실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 주는 것은 정치인들의 몫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적 식견을 가진 정책결정자들이 요로에 포진되어 있어야 하며, 국제적 신뢰성을 보장하면서 미국과도 이 문제를 놓고 협상을 벌여야 한다. 현 「한미원자력협력협정」은 40년 유효기간으로 1974년에 개정된 것으로 2014년까지 새로운 협정을 도출해야 한다. 한국으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협상을 남겨두고 있는 셈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자세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너무 안일했다고 볼 수 있다. 정부는 부안사태를 겪은 후 “사용후핵연료 처분문제를 공론화시키겠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있으나, 공론에 맡겨둘 경우 국가전체의 이익보다는 협소한 이해관계에 집착하는 환경단체 등이 개입하여 여론을 호도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영구처분장 확보문제는 더 오래 표류할 수도 있다.

이런 문제는 전문가적인 결정을 내린 후 국민을 선도해나가는 자세가 바람직할지 모른다. 모든 것을 떠나, 중간저장시설의 포화가 10년 앞으로 다가온 현 시점에서도 고준위핵폐기물 영구처분 정책이 확립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 본 글은 2005년 12월 1-3일 부산에서 열린 외통부 주최 「군축비확산국제회의」및 2006년 1월 4-5일 덕산온천에서 열린 원자력연구소 주최「비확산워크샾」에서 논의된 使用後核燃料(Spent Fuel) 처분 관련 부분을 정리한 것으로, SF의 영구처분 문제와 관련한 과학자들의 우려와 제안을 정리한 것임.

김태우 / 국방연구원 군비통제연구실장

– 뉴욕주립大 정치학박사(핵정책/핵전략 전공)
–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군비통제연구실장
– 경기대학교 대학원 겸임교수
– 저서 <한국핵은 왜 안되는가?>, <저승바다에 항공모함 띄웁시다>, <미국 핵전략 우리도 알아야 한다>(2003), <주한미군 보내야 하나 잡아야 하나>(2005)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