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북한이 지난 8일 싱가포르 회동을 통해 핵 신고와 관련, 상당부분 의견을 절충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여전히 세부 항목과 ‘행동’ 등에 대한 입장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실제 9일 미국과 북한의 반응, 중국과 한국 등 6자회담 관련국들의 미∙북 회동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고 있다.
◆美-北 싱가포르 회담 결과 상반된 평가=미국과 북한은 싱가포르 회담 결과에 대한 본국의 최종 승인을 기다리고 있지만, 결과 해석을 두고 미묘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9일 미∙북 회동에 대해 “10∙3합의 이행을 완결하는 데서 미국의 정치적 보상조치와 핵 신고 문제에서 견해 일치가 이룩됐다”며 “우리는 6자회담 참가국들의 의무사항 이행을 주시할 것”이라며 긍정적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힐 차관보는 같은 날 베이징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과 양자회동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지만 핵심적인 돌파구는 찾지 못했다”며 “이번 회동을 통해 (핵 신고에 필요한) 플루토늄 문제 등을 비롯해 모든 요소를 북측과 조율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도 북한 외무성 발표에 대해 “아직도 함께 모아놓고 최종 확인해야 할 요소들이 남아 있다”면서 “북한이 합의사항을 이행하면 우리도 약속을 이행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미국으로서는 일단 국무부의 검토와 의회 청문회를 통한 회담 결과를 검증하는 단계가 남아있다. 또한 핵 신고 잠정안을 미 의회가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선 세부적인 부분에 있어 추가 협상이 필요할 것으로 풀이된다.
국가안보전략연구소 김성배 책임연구위원은 ‘데일리엔케이’와의 통화에서 “싱가포르 회동에서 어느 수준의 합의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미북 양측간 (신고서에 담을) 문구 조정은 이뤄진 반면 신고에 따른 검증 절차에 대한 얘기는 안 된 것 같다”며 “북한은 일단 정치적 보상을 통한 실리를 챙기기 위해 (합의한 사항을) 기정사실화 하려고 발표 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미국 또한 국내정치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신고-검증 문제에 확실한 매듭을 짓기 위해 이 같은 표현을 한 것 같다”며 “UEP와 시리아 핵 협력 문제에 대한 검증 문제를 풀기위해 압박에 나선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힐 차관보도 “북핵 신고 문제를 완료하기 위해 더 논의하고자 한다”면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보고하고 국회 청문회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핵 신고에서 검증, ‘갈 길은 멀다’=미국과 북한이 이번 회동에도 불구하고 최종합의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6자회담 재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 측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이날 베이징에서 “기초는 마련됐지만 다음 단계로 나가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미∙북 양측이 국내적으로 승인 받아야 할 부분과는 별도로 추가 협의를 해야 진전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미국과 북한은 최종 승인을 앞두고 다시 의견을 조율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당분간 6자회담 재개도 불투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상 빠른 시간 내 재개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핵 신고 문제가 본국 승인을 받아야 하는 절차상의 시간과 미북간 세부항목에 대한 조율이 필요하기 때문. 또한 핵 신고 이후 미국과 관련국들의 상응조치가 이행돼야 다음 단계의 협의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천 본부장도 “신고문제가 합의되고 북한이 신고서를 제출하고 미국이 취해야 할 상응조치를 취하는 등의 순서가 마무리되고 나면 다음단계 협상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힐 차관보도 “본국으로 돌아가 앞으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보고하고 국회 청문회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면서 “우리에게는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으며 앞으로 필요한 것은 시간과 세부계획”이라고 말했다.
핵 신고가 이행되더라도 검증을 위해서도 3~4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핵 포기를 약속한 지난 2005년 6자회담 9∙19 공동성명 합의에 이르는 데도 2년7개월이 걸렸다. 또 실제 검증에 나서더라도 군사 시설이 거의 공개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북한이 성실하게 임해줄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김태우 국방연구원 군비통제연구실장도 “검증과정은 핵 신고보다 어려워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핵 신고서가 제출되더라도 미국 내 강경파들의 반발도 예상돼 결과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미북관계는?=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여온 미국과 북한이 담판을 벌였지만 최종 합의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관측되면서 향후 남북-미북관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의견일치를 보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미국과 남한은 시간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우선 북한의 핵 신고 내용을 봐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당장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의 상응조치나 대북 인도적 지원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숀 매코맥 대변인이 “모든 일이 잘 풀릴 때가지는 아무것도 실현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한 것처럼 북한 김정일의 최종 결정이 남아있고, 지난 ‘제네바 회동’ 때와 마찬가지로 회담 결과와는 달리 뒤집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과 북한이 핵 신고에 최종 합의, 북한이 핵 신고를 이행한다면 미국은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등의 상응조치를 곧바로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북한은 적절한 핵 신고를 했다면서 미국의 우선 행동을 요구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실제 미국과 북한은 각각 핵 신고의 성실한 이행을, 6자회담 관련국들의 테러지원국 삭제와 에너지 지원 등의 선(先)행동을 요구하고 있어 협의 사항에 있어서도 이견을 보이고 있다.
또한 북한은 미국의 반응을 지켜보면서 대남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다음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 등을 면밀히 주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족보다는 국제공조를 강조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를 향해 ‘역도’ 등의 표현을 써가며 공세를 취했던 만큼 정상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핵 신고 협상이 타결로 이어지는 경우라 할지라도 미북관계는 개선되겠지만 남북관계는 당분간 경색 국면을 이어갈 가능성도 작지 않다. 단기적으로 북한은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미국과 통하고 남한은 배제한다) 원칙을 고수하면서 이명박 정부 길들이기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비핵화에 따른 단계별 지원’을 밝히고 있는 이명박 정부는 핵 신고 담판 결과를 당분간 지켜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핵 신고의 파고를 넘더라도 북한이 검증에 얼마만큼 성실한 입장을 보이는 가에 따라 대북 경제협력과 인도적 지원 재개 등에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 민간연구소 연구원은 “시간에 쫓기는 미국이 북한보다 초조해 보인다”면서도 “미국은 그 동안 ‘완전하고 정확한’ 신고를 강조한 만큼 북한의 성실한 핵 신고를 지켜본 후 상응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관계 역시 미국과 북한의 핵 신고를 둘러싼 최종 협의와 한미정상회담 결과도 지켜봐야 한다”면서 “결국 미북-남북관계 개선의 키(Key)는 김정일이 쥐고 있는 셈”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