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계좌 풀고 核폐기 질주 밑그림?

미국과 북한이 30일 베이징에서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계좌 동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2차 금융회담 실무회의에 들어간 가운데, 미국이 동결계좌 중 일부에 대해 해제조치를 취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제2차 금융회담은 지난달 베이징에서 열렸던 1차 협상 이후 한 달여 만에 재개됐다. 이번 회담은 다음달 8일 개최되는 6자회담의 성패를 가늠할 수 있는 전초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북한 양측은 그간 불법행위 연루 의심을 받고 있는 북한계좌와 관련해 서로 궁금한 내용을 담은 질문서를 교환하면서 간접 협의를 진행해 왔고 기술적인 이해 측면에서 진전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회담에서 양국간에 진전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특히 미국 재무부의 로버트 키미트 차관은 지난 27일 2차 금융회담과 관련해 “비즈니스 스타일로 회담이 진행되고 기술적인 이해 문제에서 양측 간에 진전이 이뤄질 것으로 생각한다”며 “미국은 (북한이) 더이상 불법행위를 하지 않고 과거의 잘못을 시정,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해결 방안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고 강조해 이번 회담 진전을 위한 핵심 키워드를 제시했다.

이와 함께 미국은 북한에 BDA에 대한 조사를 곧 끝내고 그 결과를 마카오 당국에 전달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BDA에 대한 조사를 끝내면, 중국의 지방 정부인 마카오 특별행정구가 이 은행에 묶여 있는 북한 자금(2400만 달러)의 처리를 맡게 돼 일부 합법계좌가 풀릴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진전된 예측이 쏟아지는 가운데 미국이 북한 계좌 50여개 가운데 북한과 영국의 합작은행인 대동신용은행(700만 달러) 분을 포함해 돈세탁에 관련되지 않은 1300만달에 해당하는 합법계좌에 대해 동결의 푸는 데 양측이 합의했다는 언론보도까지 나왔다.

한편, BDA 문제를 실무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미 재무부의 입장은 6자협상 당사자인 국무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미 재무부 레비 차관은 ‘금융조사는 매우 복잡해 합법·불법자금을 구분하기 어렵다’, ‘문제의 초점은 북한의 불법 활동이며, 불법 활동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고 못박고 있다. 북한의 위조지폐 제조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재무부의 원칙적인 입장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가 북핵문제 진전이라는 성과를 내기 위해 이러한 원칙을 포기할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이와 관련, 최근 미 국무부 내에서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와 함께 대표적인 강경파로 꼽혀온 조지프 군축 및 국제 안보담당 차관이 24일 사임서를 제출함에 따라 북한의 핵폐기의 밑그림을 그려왔던 미국의 대북 정책에 변화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조지프 차관은 그동안 제네바 합의와 유사한 핵동결이라는 중간 단계를 거치지 말고 신속하게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식’의 핵 폐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의 사임은 협상파로 금융제재 해제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힐 차관보의 입지를 넓혀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이번 금융협상에서 위폐제조 등 불법행위를 당국과는 관게없이 일부 하부관리의 소행으로 돌리면서 불법행위를 직간접적으로 인정하고, 이에 대해 미국도 북한의 체면을 살려주는 선에서 합의를 검토하고 있다면 이번 회담에서 BDA 문제에 대한 진전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문제는 2차 금융회담에 진전을 이룬 상태로 다음달 6자회담이 재개된다고 하더라도 북핵 문제의 진전에는 여러가지 걸림돌이 남아있다. 먼저 미국은 폐기를 전제로한 핵시설 동결이지만, 북한은 말 그대로 일시적 중단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은 ‘크게 주고 크게 받는’ 형식으로 핵 폐기 완료 기간을 최대한 단축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최대한 시간을 끌며 동결의 대가로 에너지 제공 등을 광범위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협상과정에서 북한이 동결에 따른 광범위한 보상 챙기기, 시간끌기에 미국이 끌려간다면 지난 10년간 계속된 지루한 공방이 재연될 소지가 높다. 미국 부시 대통령 임기내 해결도 물건너 가게 된다.

미국이 협상력을 최대한 살려 북한과 담판을 시도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강경책을 구사하는 사생결단을 요구할 때 오히려 북핵문제는 간단한 해결과정을 밟을 수도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