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5일은 23년 전에 죽은 김일성의 105번째 생일이 되는 날이다. 이에 따라 북한에서는 각종 이벤트와 대대적인 선전으로 경축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죽은 지 23년이나 된 사람의 생일을 이처럼 떠들썩하게 치르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북한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영생의 성상으로 떠받들고 있다. 북한 문학가 김홍익의 ‘살아계시다’는 김일성 사후 신격화 과정을 그린 단편소설이다. 평범한 농촌 아낙인 주인공 현분녀를 통해 유훈통치의 절대성과 김일성 신격화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수령은 죽은 후에도 여전히 인민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다는 것이다. 평양 거리를 가득 메운 선전물 가운데 유독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문구가 많다는 점은 이를 입증한다. 김일성의 위대함과 신성성은 후계자에게 계승된다. ‘주체사상’이니 ‘혁명적 수령론’이니 ‘후계자론’과 같은 해괴한 논리가 이론적으로 이를 뒷받침했다.
무엇보다도 김일성의 신격화와 ‘대를 이은 충성’을 정당화한 이론은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일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에게는 생명유기체로 살며 활동하는 육체적 생명과 사회적 존재로 살며 활동할 수 있게 하는 정치적 생명이 있는데 양자 중에 “보다 중요한 생명은 정치적 생명”이라는 것이다. 김정일에 따르면, 개인의 육체적 생명은 끝나도 그가 지닌 사회정치적 생명은 사회정치적 생명체와 더불어 영생하게 된다. 사회정치적 생명체에서 수령은 그 생명의 중심이다. 혁명의 주체로서의 사회정치적 집단의 생명 중심은 집단의 최고 수뇌인 수령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에서 개인의 육체적 생명은 도구적 의미로 전락하게 되고 인권 개념 역시 수령과 혁명의 하위개념으로 격하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논리 체계를 통해 북한에서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마왕들이 신격화되고 있고, 그 논리의 근거가 되는 1대 수령 김일성을 시조(始祖)로 추앙하며 광적으로 떠받들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북한은 광적인 신도들로 이뤄진 사이비 종교집단으로 전락해버렸다. ‘김일성교(敎)’의 교리가 어느 정돈가하면, 집에 불이 났을 때 가족들을 먼저 구하기보다 김일성·김정일의 사진부터 챙기고 나와야 할 정도라고 한다. 심지어 냉면 먹는 법까지 ‘위대한 수령’이 가르쳐준 대로 먹는 사람들이다.
올해에도 북한은 김일성 생일준비로 여념이 없다고 한다. 특히 국제사회 최강의 대북제재가 실행되고 있고 외부세계에선 미국의 선제타격설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도 북한 사회엔 축제분위기가 만개하고 있다. 축하행사 준비를 위해 동원된 수십만의 주민들은 늦은 밤까지 불을 밝힌 채 행진연습에 여념이 없고, 당국에선 6차 핵실험을 강행해서 축제를 절정으로 이끌 수도 있다는 분석까지 제기됐다. 만일 북한 당국이 추가 핵실험을 단행한다면 죽은 사람을 위해 북한 전체 주민의 2년 치 식량 비용인 2조 원 가까이를 날려버리는 셈이 된다. 물론 김정은에겐 다른 셈법이 있겠지만 이성적인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 못할 접근법이다.
모든 면에서 취약한 김정은이 수령 자리에 올랐을 때 의지해야 할 곳은 단 하나, 김일성의 권위뿐이었다. 그래서 김정은은 ‘김일성 따라하기’에 열을 올렸고, 머리모양, 걸음걸이, 흡연 스타일까지 김일성을 흉내 내며 주민들의 옛 시절 향수를 자극했다. 김일성뿐 아니라 김정일까지 신격화하고 우상화해야 그 후과가 자연히 자신에 대한 절대적 충성으로 돌아온다는 단순한 계산도 했던 것 같다. 그런 이유로 김정은은 역대 수령들에 대한 지극한 효심을 쏟아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김정은은 북한 사회 밑바닥에서 일고 있는 민심의 변화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느리지만 꾸준히 유입되고 있는 외부 정보의 영향으로 북한 주민들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에는 김일성 신화의 허구도 있다. 예컨대 북한 주민들은 6·25전쟁이 북침이 아니라 김일성의 의도에 따른 남침전쟁이었으며 그로 인해 한민족이 현재까지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다는 점도 차츰 알아가고 있다. 김일성이 불세출의 영웅이 아니라 민족 재앙의 원흉이라는 점을 북한 주민들 모두가 알게 된다면 그를 신성시하고 신격화하려던 김정은의 지위는 어떻게 될까. 북한 주민들이 70년 넘게 김 씨 일가 사람들에게 속아왔다는 분노는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폭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김일성이 죽은 후 23년 동안 어처구니없는 블랙 코미디가 해마다 계속되고 있다. 민족 최대의 재앙이 시작된 날을 북한에선 ‘태양절’이라며 민족 최대의 명절로 둔갑시켜 놓았다. 이 비극의 막을 내리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북한 주민들의 자유화를 위해 지속적인 정보유입을 추진해야 한다. 북한 주민들에게 김일성의 진실과 허구를 정확히 알려줄 뿐 아니라 인권과 자유의 의미를 전파하여 그들 스스로 폭력에 저항하고 자유로울 수 있도록 꾸준히 ‘의미 있는 행동’을 지원해야 한다. 북한 주민들이 독재로부터 해방되고 자유를 쟁취하는 날이야말로 민족 최대의 명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