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제2 금융조치, 北정권 안전핀 제거한다

미국이 제2, 제3의 대북금융조치를 잇따라 준비하고 있다.

미 의회조사국(CRS) 래리 닉시 박사는 해외의 북한 고위층 계좌 조사 등과 관련, “미국에 피해를 줄 수 있는 북한의 금융행위 전반에 대해 미국이 이에 맞서는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라고 지난달 31일 말했다. 미국은 또 중국과 공조하여 국제범죄에 공동대처한다는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위조달러 등의 범죄행위를 차단하기 위한 국제적 금융포위망 구축과 동시에 국제사법공조 마련에도 나서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조치에 중국이 동참하면서 위력은 배가되고 있다. 불법행위가 유통될 수 있는 육로(陸路)가 차단되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달 말 위조지폐와 돈세탁, 마약 등의 범죄행위에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중국 내 은행들도 북한의 불법행위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중국의 인민(人民)은행은 지난 3월 북한의 초정밀 위조달러 ‘슈퍼노트’ 경계령을 내린 데 이어 중국(中國)은행도 마카오에 있는 북한계좌를 동결했다.

미 재무부 스튜어트 레비 차관은 북한 지도자들이 거액의 비자금을 전 세계 은행들에 숨겨놓고 있다며 이들 국제 금융기관들은 북한과 관련된 어떠한 계좌(any count)도 주의 깊게 살필 것을 권고했다. 사실상 김정일 비자금에 손을 댈 수도 있음을 강력히 경고한 것이다.

미국은 이러한 일련의 조치를 통해 경제봉쇄를 취하지 않고도 국제금융시장에서 북한을 고립시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5월 평양에서 열린 재북 유럽상업협회가 주최한 설명회에서 대동신용은행의 니젤 코위 총지배인은 대북 금융조치가 북한의 합법적인 거래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동신용은행은 외국인이 절반 이상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북한 내 국제거래 은행이다. 그는 북한 무역간부들이 달러가 든 현금 돈가방을 직접 들고 은행을 찾아가야 할 정도로 북한 금융기관이 국제은행들의 기피대상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데일리NK 취재결과 지금 북한 내에서는 위조달러 ‘슈퍼노트’가 시장에서 비공식 화폐수단으로 이용될 정도로 광범위하게 유포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국제적인 위조달러 거래도 아직은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핵심은 김정일 해외 비자금

그러나 북한이 돈 세탁을 하지 못할 경우 위조달러나 마약 등의 범죄행위가 국제적인 사법감시망에 노출되기 쉬워진다. 국내 은행들까지 북한과 불법 거래혐의가 있는 계좌를 살피고 있다. 인터폴은 위조달러 문제에 본격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일련의 대응은 북한의 불법행위를 크게 위축시킬 것으로 보인다.

30억불 수준인 북한의 무역규모에서 5억 달러로 추정되는 불법행위를 통한 수익의 상당부분이 사라질 경우 북한 내에는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한 북한전문가는 이를 ‘치명적’이라고 표현했다.

국제금융계에서 기피 대상으로 전락한 북한 입장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김정일과 그 일가(family)가 가지고 있는 해외 비자금의 안전문제다. 미국의 압력으로 북한의 해외 비자금 계좌가 동결될 경우 김정일은 자신의 신상문제에 심각한 불안감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태가 현실화되면 김정일 입장에서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마련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십억 달러의 해외 도피자금이 사라지는 꼴이 된다. 도피자금이 묶이는 것은 김정일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 안전핀 하나가 빠지는 격이다. 94년 김일성 사망 후 침대에 권총을 두고 잘 정도로 불안감을 노출했던 김정일에게 비자금 계좌 동결은 그 이상의 충격을 줄 수 있다.

김정일의 개인 돈줄이 막히면 이는 통치자금의 고갈로 이어질 수 있다. 김정일은 적대세력에게는 냉혹하고 가혹한 처벌을 일삼지만 측근들에게는 최고수준의 생활을 보장하고 각종 선물공세로 주변에 둔다. 자금줄이 막히면 이러한 특혜를 통해 충성을 유도했던 용인술이 타격을 입게 된다. 이 또한 김정일에게 적지 않은 심리적 위축감을 던져줄 수 있다.

북한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 격으로 당장은 현금 가방을 들고 다니거나 중동, 남미의 반미국가 등을 통한 불법행위나 우회적인 무역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이란도 국제제재 리스트에 올라가 있는데다 달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나라가 지구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미국의 대북조치가 추가적으로 나올 경우 파급효과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미국의 추가적인 금융조치와 이에 대한 김정일 정권의 버티기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일부에서는 7월 5일 미사일 발사에 이은 북한의 또다른 ‘국면전환 조치’가 임박했다는 섣부른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