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포커스] 북한 김정은의 책잡이 전략

평양정상회담 사흘째인 9월 20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정상인 장군봉에 올라 손을 맞잡아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뿔난 북한이 지난 2일 십자포화를 날렸다. 김정은의 지시로 노동당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인 것이 역력하다.

일단 문재인 정부를 향해서는 2달 전, 김정은을 만나 덕담을 건넨 인사들을 일일이 나열하며 어떻게 칭찬(칭송)했는지 노동신문을 통해 다 까발렸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민족애와 확고한 통일의지, 통이 큰 아량과 소탈한 풍모에 대한 남조선 각계의 칭송의 목소리들이 높아가고 있는 속에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민주평화당의 대표들, 국회의원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등은 <<김정은 위원장이 조선반도정세의 주도권을 쥐고 정세를 이끌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통큰결단이 그대로 실천적조치로 이어지고 있다.>>고 하면서 현 북남관계가 경애하는 원수님의 탁월한 정치실력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것을 내놓고 인정하였다. 그들은 <<김정은 위원장은 지금 인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겸손하면서도 담백한 지도자, 방향을 옳게 정하고 거침없이 돌진하는 지도자임이 분명하다.>>, <<그 어느 나라 지도자들보다 훨씬 위대한분, 현재를 도약시켜 국가를 건설하는 출중한 위인이시다.>>라고 하면서 자기들의 솔직한 심정을 터놓았다.”(11월2일자 노동신문)

이 신문을 접한 당사자들은 매우 당황했을 것이다. 노동신문 표현대로 칭찬을 넘어 칭송에 가까운 문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어느 나라 지도자들보다 훨씬 위대한 분”은 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다. 옆에 문재인 대통령이 있었다면 그의 심기까지 불편하게 했을 언사다. 노동신문은 누구라고 거명하지 않았지만, 이제 그는 노동신문을 필두로 북한선전요원들의 입에 한창 오르내릴 것이 뻔하다. 이러한 전례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북한은 김정일의 대표적 지도자상징인 ‘태양’(선군의 태양)을 외부인사의 칭송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선전을 했었다. 김정은의 지도자상징인 ‘어버이’도 마찬가지다. 잘하면, 그의 이름은 북한 교과서나 <김정은 혁명활동, 혁명역사> 속에 기록되어 씻지 못할 오명을 남길지도 모른다. 허언처럼 들리는가. 북한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

노동신문은 어느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적시하지 않았는데, 이는 좀 더 지켜보겠다는 심산이다. 이처럼, 관계가 틀어질 것을 대비해서 북한은 늘 ‘책(責)잡이’(아킬레스건)를 마련해둔다. 노동신문에 언급된 인사들은 현재 이 정부의 핵심정치인들이다. 북한이 이 같은 기사를 올린 의도가 무엇인가. 뻔한 것 아닌가. 좀 더 미국에 대해 공세적으로 나아가라는 사인이자 압박이다. 이후, 여기에 해당되는 인사들의 발언을 보자. 통일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은 11월 7일, 국내언론을 향해 ‘대체 어느 나라 언론이냐’라고 강하게 성토(비판)했으며 8일에는 시진핑 주석에게 트럼프에게 대북제재 완화를 제안해달라고 강력요청하기도 했다. 22일에는 김정은을 ‘악마화’하지 말라고 강력주문하기도 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관련 핵심발언은 11일에 북한의 ‘핵포기 각오’가 느껴진다고 했고, 15일에는 백두산 관광이 실현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물론, 두 인사의 이 같은 발언이 북한의 압박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면 너무 작의적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북측에서는 자기들의 수법이 먹혀들어갔다고 판단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북한은 이날(11월 2일), 핵심정치인들에게만 압박을 가한 것이 아니다. 문대통령을 향해서도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 9월, 평양에서의 제3차 남북정상회담기간에 문대통령은 북한의 대집단체조, 예술공연을 관람했다. 당시, 부정적 견해들에 대해 청와대는 대집단 체조, 예술공연이 북한체제선전을 제외시켜 참관해도 무관하다는 논평을 내놨다. 그런데, 오히려 북한이 11월 2일, 노동신문을 통해 정면반박을 했다. 당시, 대집단체조, 예술공연은 체제선전이었다는 것이다. 노동신문은 ‘수령이 위대하여 인민이 위대하고 조국도 빛난다’라는 제목으로 한명이 아닌 세 명의 필진을 동원해서 대집단체조, 예술공연의 성격에 대해 매우 분명하게 기술하였다. 청와대 대변인의 논평이 매우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음을 충분히 알게 해준다.

또한 작품 총평들을 보면, “작품은(대집단체조, 예술공연) 공화국력사의 어느 한 시대, 사회발전의 몇단계 만이 아니라 우리 국가의 창건으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전 력사적 로정을 방불하게 반영하면서 위대한 력사가 있어 영광 넘친 오늘이 있고 오늘이 있어 휘황한 래일(내일)이 있다는 철리를 사람들에게 깊이 심어주고 있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은 수령이 위대하여 인민이 위대하고 조국도 빛난다는 작품의 사상적 핵을 완벽하게 해명하였다. 공화국의 품에서 우리 인민이 대를 이어 간직한 제일 큰 긍지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신 수령님들을 어버이로 높이 모신 것이다. 이 땅에선 어머니라 부르는 당도 수령의 당이고 인민도 수령의 품에서 존엄과 행복을 찾은 인민,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제도도 수령이 마련해준 인민의 보금자리이다. 공화국의 그 어느 시대도, 그 어떤 승리도 모든 행복과 영광도 위대한 수령님들과 경애하는 원수님의 품을 떠나서는 우리는 생각할 수 없다.” 이 총평만 보더라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큰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는 한국전을 성전으로, 승리전으로 묘사한 공연과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 라는 글발이 영상에 담겨져 있었다고도 적시했다. 정말 이 정부가 뜨끔해 할 내용들이 수두룩하다.

왜, 북한은 두 달이 훨씬 지난 일을 이처럼 집요하게 끄집어 낸 것인가. 문재인 정부를 향한 ‘책잡이’이기 때문이다. 그럼, 왜 11월 2일을 기해서 이처럼 포문을 연 것인가. 아무래도 비건 미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10월 28일 방한해서 문 정부의 핵심인사들을 만나 비핵화 해법을 논하면서 비핵화-남북관계 협의체인 한미워킹그룹 설치안 마련에 대한 대응일 것이다. 동시에, 북미고위급회담(8일, 뉴욕에서 폼페이오-김영철 미팅 예정)에 앞서 미국에게 적극적인 공세를 펴라는 문 정부를 향한 주문일 수 있다. 즉, 확실히 지원사격을 하라는 것이다.

미국은 북미고위급회담 취소라는 카드를 던지고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21일, 한미 워킹그룹 설치에 대해 “서로 다른 소리를 내지 않고 (한국의) 단독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걸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그 목적을 분명히 했다. 또 이날, 그는 비핵화가 남북관계(화해)보다 뒤처져서는 안 된다며 문 정부를 향해 속도조절 할 것을 강력 주문하였다. 더 이상 북한에 질질 끌려가는 듯한 형국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북한은 19일자 노동신문 정론에서 ‘높아가고 있는 반미투쟁기운’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을 공격했다. 또한, 한미워킹그룹설치를 맹비난하였다. “지금도 미국은 남조선당국에 북남관계개선의 <<속도를 조절>>하라고 강박하면서 일정에 올라있는 협력사업들을 지연시키고 있다. 이런 속에 얼마 전 미국은 <<대북정책>>과 제재 리행, 북남관계문제 등을 남조선당국과 협의한다는 명목 밑에 <<실무팀>>이라는 것을 내오기로 하였다.”고 지적하면서 남북관계문제는 철저히 민족내부의 문제로 미국의 이 같은 처신은 민족의 자주권을 침해한 것으로 지나친 내정간섭이자 남북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11월 2일, 북한이 보인 행태는 그 특유의 깡패 본성을 다시금 드러낸 것이다. 보란 듯이 미국과 문재인 정부를 향해 공갈, 협박을 한 것이다. 미국에게는 공갈일지 모르지만, 문 정부에게는 아킬레스건(책잡이)을 휘두르며 협박을 가한 것이다. 이러한 치졸한 수법은 북한외교전략 중에 상수(상책)이다. 문 정부는 이것을 유념해서 책잡힐 행동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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