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공동사설 학습시간에 무슨 일이?

북한 당국이 매년 그렇듯이 새해 벽두부터 전당(黨)·전군(軍)·전국에 공동사설 관철을 위한 학습을 진행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모든 정치행사의 첫 순서가 김일성·김정일의 ‘교시와 말씀’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것은 ‘어길 수 없는 철칙’이다. 특히 노동신문·조선인민군·청년전위에 실린 공동사설이 과거 김일성 생전에 발표되던 ‘신년사’를 대체한 것이니만큼 지금 북한에서는 최고지도자 김정일의 ‘공약(公約)’ 관철을 위한 학습에 총동원되고 있다.


노동신문을 비롯한 북한 매체들은 연일 ‘공동사설 관철’을 촉구하고 있고, 당 조직과 기업소 등에선 3일부터 공동사설 학습에 돌입했다. 설 연휴(1, 2일)를 마치고 새해 첫 출근하자마자 공동사설 학습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공동사설 학습은 보통 20일경까지 매일 아침 당 간부의 지도로 진행된다. 최종적으로 구답(질의·응답)과 필답(필기시험)을 통해 학습을 마무리한다. 구답·필답에 통과하지 못한 주민들은 주(周), 월(月), 분기(1/4) 총화 때까지 계속 비판의 대상이 된다.


때문에 주민들은 20일경 공동사설 총화 모임까지 시험 통과를 목표로 총력을 기울이게 된다. 한 탈북자는 “계속 시달릴 바에는 힘들더라도 한 번에 통과하는 것이 낫기 때문에 이 기간 학습에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다.


공동사설에 나온 김정일의 ‘공약(空約)’을 믿지는 않지만 사상 총화 등의 정치적 예속과 비판을 당하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억지 암기에 들어가는 것.


그러나 이미 북한 주민들에게 공동사설은 ‘나라살림의 길잡이’가 아니다. 때문에 북한 당국이 공동사설을 통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인민생활 향상”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주민들은 단지 ‘정치적 수사(修辭)’로 받아들일 뿐이다.


실제 양강도 소식통은 6일 “3일 출근 직후부터 오늘(6일)까지 계속 공동사설 학습을 진행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내용에 관심이 없다. 학습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공동사설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학습을 진행하는 당 간부들에게 있어서도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소식통은 지난 3일 공동사설 첫 학습시간에 있었던 일화(逸話)를 소개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당시 기업소 종업원들이 모두 모이기를 기다리던 당 비서는 노동신문을 흔들며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첫째가는 혁명임무이다”라고 말했다. 


당 비서의 발언 중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학습’으로 바꾸면 이는 바로 ‘김일성의 교시’가 된다. 학습을 지도할 간부가 스스로 말뿐인 공동사설을 학습하는 현실을 비꼬고 있는 셈이다.


이 비서의 말이 끝나자 주변에 앉아 있던 종업원들은 박수까지 치면서 “옳다. 잘 먹어야 미국 놈도 이기고 강성대국도 건설하지” “정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 말이다”고 호응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전체 종업원이 회의실에 들어오고 난 후에도 웃음소리와 맞장구는 한동안 이어졌다.


이에 당 비서는 “이 말에는 사상이 없고 생활적인 소리이기 때문에 어디에 가서 옮기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소식통은 말했다. 상급기관에 이 같은 발언 내용이 알려질 경우 처벌을 받기 때문에 급히 무마에 나선 것이다.


북한에서 당 비서는 사람들을 김일성·김정일 사상으로 무장시켜 그들을 혁명과 건설에 쓸모 있는 인재들로 교양·육성하는 것이 첫 번째 임무다. 그런데 당 비서가 이 같은 발언을 스스럼없이 하는 것은 그만큼 북한 주민들이 공동사설을 대하는 자세를 미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북한 당국이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안TV를 통해 “전역에서 공동사설 관철을 위한 궐기모임이 진행되고 전체 조선인민은 당의 주위에 철통같이 뭉쳐있다”고 선전선동 하고 있지만 실제 일선의 간부들이나 주민들은 당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소식통이 전한 일화처럼 공동사설은 주민들에게 있어 단순한 ‘생활의 짐’일 뿐이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로 추운 겨울을 견뎌내기도 버거운 현실 속에 공동사설 학습은 주민들의 당국에 대한 ‘불만’만 키우고 있다는 소식통의 전언이다. 

경제학 전공 mjkang@uni-med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