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읽기] 풀로 고기를 만드는 도깨비 방망이는 없다

북한 함경북도 무산군 일대에서 염소를 돌보고 있는 북한 군인. / 사진=데일리NK 자료사진

북한에서 초식 가축사육 과제가 강조되고 있다. 토끼와 염소, 양 같은 초식동물을 키워 주민들에게 고기를 충분히 공급하겠다는 취지이다.

평안남도 내부 소식통이 보내온 소식에 따르면, 최근 들어 ‘풀과 고기를 바꾸라’는 정책을 관철하기 위하여 전국의 모든 기관, 기업소, 농장, 학교, 병원들에 양, 염소, 토끼 확보 과제가 하달됐다. 과제 수행을 위해 미달 단위에 대한 법적 책임 문제까지 거론되면서 시장에서 초식 가축의 가격이 상승하고 가축 절도가 빈발해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북한에서는 지난 70년 동안 ‘풀과 고기를 바꾸자!’라는 구호가 반복돼왔다. 얼마나 그럴싸한 말인가? 사방에 널려있는 풀밭에 가축만 풀어놓으면 금새 고기가 넘칠 것 같으니 말이다. 주민 생활이 어려울 때마다 이 말이 반복됐다. 6.25이후의 ‘잿더미에서 살아남기’, 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극복하기’, 최근 국제사회 제재에 맞선 ‘자력갱생’ 구호 속에 다시 등장했다.

북한 당국의 정책은 과학적 근거에서 나올 때도 있지만, 증명되지 않은 말도 안 되는 가설을 의욕만 앞세워 추진할 때도 있다. 그리고 정책이 실패하면 어김없이 그 책임을 주민들의 ‘간고분투’ 정신 부족과 외부 적대세력의 전복 책동으로 돌린다.

북한 당국이 느끼는 현재의 좌절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북한 현실에서 초원지대와 같은 풀밭조성이 어렵거나 많은 돈이 들게 되고, 일부러 그렇게 한다고 해도 식량 문제를 해결할 정도로 고기를 생산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이 먹을 곡식을 심을 땅도 부족한 마당에 대규모 초지를 어디에 마련할 것이며, 가축들을 키워내는 데 어느 정도 시간과 자금이 소요될지도 생각해야 한다. 북한의 자연과 지형 조건, 인구밀도, 집단경영체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비현실적인 정책이다. 김정일 시대 추진된 ‘풀과 고기를 바꾸자’는 구호는 처참한 실패로 끝난 바 있다.

북한은 지난해 식량생산이 예년에 비해 저조하자 ‘쌀은 금과 같다’는 구호까지 써가며 자력갱생을 독려하고 있다. 북한의 식량부족은 정책실패와 절대적인 비례관계가 있다. 북한 당국이 개인의 자발성을 높이기 위해 포전담당제 규모 축소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개인농이 아니고 물자가 부족한 상태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북한 농업 실패에 대한 책임은 1인 지도체제와 연관이 깊다. 그럴수록 자력갱생을 강조하게 되는데 이것은 식량부족에 대한 책임을 국제사회에 돌리고 주민들에게 적대세력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갖게 해 체제 결속을 다지는 효과까지 노린 것이다.

북한 당국자들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확신한다. 지난 기간에 그 방법이 단기적으로 효과를 본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주민들은 이제 개인의 이익이 아니면 집단의 구호에 별로 반응하지 않는다.

주민 생존과 같은 중대한 문제를 다룰 때는 과학적 타산에 기초해야 한다. 특히 인민생활의 담당자라고 자처하는 농업 지도부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북한 당국이 현재 농업 실태가 진정으로 심각하다고 느낀다면, 정책을 바로 잡아야 한다. 먼저 시장에 의한 변화에 지속적인 관심을 둬야 한다. 시장 논리에 바탕을 두면 생산량과 농업 경영의 효율성은 몇 배 증가할 것이다. 그리고 인민을 쥐어짜기 위한 구호와 경고성 메시지를 더 이상 남발해서는 안 된다.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고 주민들의 노여움만 사게 된다.  

북한 농업 당국자들은 정해진 틀에서만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더 이상 경험에만 매달리지 말고 변화하고 발전하는 전 세계의 현실을 둘러보기 바란다. 고립과 쥐어짜기를 전제로 하는 자력갱생은 최악의 정책이다. 자력갱생은 더 이상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