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싸일’ 같은 물가… 인민들은 정신이 없다.

함경북도 ○○시에 거주하는 진용호(가명 · 48)씨는 만 1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서는 깜짝 놀랐다. 1년 전에 비해 장마당 물가가 4배나 껑충 뛴 것이다. 경제난 이전, 병원에서 취급하는 각종 장비를 수리하는 어엿한 엔지니어였던 진씨는 병원이 사실상 ‘휴업’ 상태에 들어가고 장비를 수리할 부품까지 찾아볼 수 없게 되자 “먹고 살기 위한” 길에 뛰어들었다.

평생 장사라고는 해보지 못했으니 실패를 거듭하기 마련. 중국과 밀무역을 하다가 사기를 당하고 떼어먹힌 돈을 찾기 위해 강을 건넌 것이 그의 첫 탈북이 되었다. 1999년 중국 땅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이래 지금껏 두 번의 체포, 송환 과정을 겪었지만 도(道) 보위부 고위직에 있는 친척의 도움으로 남들보다 수월하게 노동단련대 생활을 할 수 있었고, 2002년 이후로는 국경경비대에 뇌물을 주고 반(半)합법적으로 국경을 넘고 있다.

1년전에 비해 3-4배로 뛴 물가

2003년 12월, 아들과 함께 강을 건넌 진씨는 밀무역을 통해 안면을 익힌 중국인 친구의 도움으로 1년 동안 공사장 잡일 등을 하며 돈을 모으다 지난 10월 중순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다. 나머지 가족까지 중국으로 데려오기 위해서다. 한 달 동안 북한에 머물다 중국으로 건너온 진씨는 “지금 조선의 물가는 미싸일을 탄 것 같다”고 상황을 전했다. 끝없이 수직상승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젠 제법 장사수완이 늘어난 진씨는 1년 전 북한의 지역별 장마당 물가를 적어놓은 수첩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교통사정이 열악한 북한은 지역간 물자 이동이 원활하지 않아 물가의 편차가 심한데, 이러한 가격차를 이용한 장사가 예로부터 성행해왔다. 북한 물가의 척도는 쌀 가격. 먹는 문제가 주민들의 1순위 관심사이다 보니 모든 물가가 쌀을 기준으로 이야기된다.

진씨의 수첩에 따르면 2003년 11월 말 북한 장마당의 쌀 가격은 킬로그램당 250~300원 선이었다. 북한 국내산이 270원, 국내산보다는 품질이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받는 수입산 쌀이 250원, 암암리에 유통되는 대한민국 쌀은 300원선에 판매됐다. 보통 강냉이 가격은 쌀값의 절반 정도이니 당시 150원 내외에 거래되었고, 주민들이 ‘연중행사’ 식으로 큰 맘 먹고 사먹는 돼지고기는 900원 가량 되었다. 그러던 물가가 올해 들어 가파른 상승을 계속 하면서 쌀은 800~1200원, 강냉이는 400~600원, 돼지고기는 2000~3500원 가량에 판매되고 있다. 주민들은 “아침에 눈을 떠보면 10원씩 올라있다”고 한숨을 짓는다고 한다.

북한 정부는 2002년 7월 1일 ‘경제관리개선조치’라는 것을 단행하였다. 주요한 변화로는 △임금의 대폭 인상, △국정가격의 현실화, △독립채산제의 확대, △장마당에 대한 국가 통제의 강화 등이었다. 이로 인해 보통 100~150원 선이던 북한 일반 노동자들의 월 임금은 갑자기 2000원 이상으로 상승했다. 쌀의 국정가격이 8원이던 것이 44원으로 바뀌었고(당시 장마당에서의 쌀 가격은 60~70원), 국가에서 인정한 주요 장마당을 제외하고는 장사가 금지되었다. 특히 공산품에 대한 거래는 일체 중단됐다. 기업 운영의 자율성을 확대하여 실적에 따라 성과를 배분하는 ‘독립채산제’의 확대를 북한 외부 일각에서는 “경제개혁의 신호탄”이라 관측하기도 했다.

살인적 인플레 – 김정일이 쏘아올린 또다른 미사일

그러나 이 조치는 석 달을 넘기지 못했다. 자본과 설비가 없는 기업은 독립채산을 할 수 없었고, 정부의 지시사항이다 보니 처음 몇 달간은 어떻게든 인상된 임금을 지급했지만 이것을 계속 이어나갈 기업은 얼마 되지 않았다. 국정가격의 대폭 인상과 장마당에 대한 통제는 암시장의 물가를 더욱 치솟게 했고, 갑자기 시중에 늘어난 돈과 갑작스레 등장한 고액권(1000원, 5000원권) 화폐는 인플레를 부채질했다. 몇 달 정도 통제하던 장마당은 다시 허용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결국 7.1조치는 물가만 천정부지로 올려놓고 주민들의 생활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은 채 아무런 성과도 없이 막을 내린 것이다.

김정일은 노동, 대포동 같은 미사일뿐 아니라 또 하나의 미사일을 주민들을 향해 쏘아 올렸다. 이 인플레 ‘미싸일’의 종착지가 어디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미싸일’을 타고 사재기 등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일부 주민들은 권력과 결탁해 튼튼히 자리를 잡아가고, 힘없는 서민들은 ‘미싸일’의 후폭풍에 정신을 못 차리며 오늘도 봇짐을 짊어지고 하릴없이 장마당으로 나서는 중이다.

중국 지린(吉林) = 김영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