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中-베트남 모델 따라 경공업 발전에 뛰어들어야

[탈북박사의 북한읽기] 신의주 현지시찰에서 간부들 질타…변화된 모습 보일까

최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평안북도 신의주지구 방문이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고 있다. 싱가포르와 베이징을 오가는 외교활동을 마친 그가 숨을 고른 뒤 처음으로 나선 대외 활동이기 때문이다.

최근 4.27 정상회담과 6.12 북미회담으로 일약 세계 언론의 관심을 제대로 받고 있는 김정은이 북한의 서북지역 신도와 신의주 화학섬유공장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신도의 ‘비단섬’이 주는 교훈은 어디에 있는가?

6월 30일 북한매체의 보도에 의하면 김정은은 평안북도 룡천군 신도군에 위치한 북한 굴지의 갈(갈대) 생산기지 ‘비단섬’과 갈로 종이와 섬유를 생산하는 신의주화학섬유공장을 시찰하면서 “지금 걸리고 있는 문제의 하나가 종이를 수요대로 충족시키지 못 하고 있는 것이라고, 우리는 어떻게 하나 북한의 자원과 원료원천에 의거하여 종이공업을 추켜세워 학생들의 교과서나 참고서, 학습장생산에 필요한 종이를 원만히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또 “갈을 원료로 시험적으로 생산한 종이를 보아주시고 그만하면 괜찮다고, 종이의 질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를 심화시켜야겠다”고 말했다면서 나무로 종이를 생산하면 산림이 견디지 못하니 ‘비단섬’에서 갈 생산을 활성화하고 그 갈을 원료로 하는 현대적인 종이생산 공정을 확립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종이 공업은 소비산업이다. 지난 시기 종이공업은 중공업을 우선으로 하는 북한경제의 가치사슬에서 하류에 있었다. 사회주의를 지향한 북한의 경제 성장전략은 철저하게 중공업을 위주로 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전략이었고 지금까지 대부분의 투자도 여기에 집중됐다.

실제로 북한은 산업에 대한 투자 중 80% 이상을 중공업에 집중했다. 당국이 자원을 중공업 사업에 집중하면서 나타난 급속한 성장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1960~1970년대 사이 북한의 공업생산량은 연평균 10%이상의 성장률을 보여주었다.

전체 산업에서 중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급증했고 농업과 소비품 산업은 하락했다. 발전기, 화학비료, 자동차 등을 생산하는 산업들도 당시에 생겨났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전쟁으로 인한 파괴로 경기침체를 예견됐지만 오히려 경제성장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시기 중국과 구소련,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의 재정지원으로 북한 정부는 지속적인 투자를 할 수 있었으며 노력 및 기타 자원을 동원할 수 있었다.

이렇듯 김일성, 김정일 시대 즉 김정은의 선대 산업의 특징은 중공업 우선전략이다. 북한은 경제의 상층 및 중간단계에 있는 산업들에 집중했다. 이 산업들은 군수산업 및 다른 산업과의 연계의 긴밀성과 중요성의 의미에서 ‘전략적’이라고 불리었고, 실제로 가장 우선적으로 여겨졌다.

전략적 부문에 대한 집중적 투자에 의존하는 성장은 초기 부분적 성과를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성장을 제한하는 결과도 초래한다. 중공업 부문은 정부의 투자결정에 기초하여 발전할 수 있고 이는 상호간의 수요는 충족시킬 수 있겠지만, 시장의 발전에 대한 파급효과는 제한적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자력갱생’에 기초한 계획경제체제의 특징인 폐쇄성과 외부세계에 대한 개방제한을 불러오기도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의주화학섬유공장을 방문해 현장을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일 보도했다. / 사진 = 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쳐

이와 반대로 김정은은 처음부터 경제성장방향을 식량, 농축산물, 수산물, 섬유, 식료품, 그리고 기타 소비재 산업으로 정했다. 다시 말하면 중공업을 우선했던 선대들과 달리 산업의 가치사슬에서 ‘하류’의 끝에 집중한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비품 산업을 위한 시장은 주로 외국 특히 선진국들에 있다는 것이다. 경제개방은 북한의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투입물(원재료와 장비)을 획득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중국과 베트남의 경우를 보아도 개혁개방을 실시한 이후 우선적으로 경공업이 성공적으로 발전했고 여기서 축적된 일부 재원으로 자본집약적이며 정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전략산업들을 발전시켜 나갔다. 이들 모두가 초기의 경공업 소비재 생산에서 기술이 더 필요한 영역으로 비교적 순조롭게 이행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1990년대 중국과 베트남의 경제성장이 급속히 이루어졌다.

북한과 같은 개발도상국의 경우 산업화의 초기 단계에서 국내 중공업과의 연계와 방조(도움)가 없어도 경제개혁과 개방의 이점을 이용해 중공과의 연계 부족을 보완하는 것 이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현재 북한 산업이 중공업의 방조를 받을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북한 경제는 세계시장으로 진출해야만 접근이 가능한 저렴한 원재료의 수급, 저비용의 생산과 현대기술의 빠른 흡수, 그리고 시장경제에 대한 빠른 학습을 통한 사고 수준의 급속한 향상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서서히 다가설 수 있다.

그래야 2차대전 종식 이후 유사한 경제발전 과정을 보인 동아시아 저개발 국가들의 성장을 따라설 수 있다. 현실적으로 1990년 이후 중국과 베트남은 북한을 크게 앞질렀으며(1960~1980년대에는 북한이 그들보다 우월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이러한 사실은 북한 지도부가 경제를 개혁하고 개방하는 데 확신을 갖도록 만든 중요한 전시효과를 주고 있다.

북한이 노동당 7기 3차전원회의에서 발전 전략의 방향을 전환해 핵-경제 병진전략을 경제발전 집중전략으로 수정한 것은 대단히 평가받을 만한 사변이다.

북한경제가 그동안 활용하지 않았거나 꺼려했던 많은 기회들이 경공업 발전과 수출시장에 있다. 북한은 이처럼 지난 시기 등한시했던 기회를 부여잡고 한국의 기업가들과 협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정은이 현재 형성된 남북한의 평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진정으로 비핵화를 실현해 국제사회로부터 정상국가로 인정받아 개혁과 개방을 한다면 더 이상 낡은 승용차를 타고 진펄에 가거나 마구간 같은 공장에 앉아 어른들에게 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북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신의주화학섬유공장을 찾은 김정은은 “마구간 같은 낡은 건물에 귀중한 설비들을 들여놓고 시험생산을 하자고 한다”며 질책성 발언을 했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북한의 공식매체가 이 정도 수위로 공개하는 것은 이미 내각과 공장 간부들에 대해서는 경질의 찬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정은은 또한 “공장 책임 일꾼들이 주인 구실을 똑똑히 하지 못하고 있다. 지배인, 당위원장, 기사장이 서로 밀기내기(책임 전가)를 하면서 누구 하나 정확히 답변하지 못하고 있다”며 “내각과 화학공업성의 책임일꾼들과 도당 위원회가 현대화 사업을 공장에만 방임하면서 잘 나와 보지도 않으며 지도통제를 바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고 한다.

내각과 화학공업성에 대한 대대적인 개각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보이는 발언들이다. 지켜봐야 하겠지만 인사권을 틀어쥔 노동당 당수의 심사가 저 정도 뒤틀렸으면 욕설 정도는 그냥 양념으로 들어야 하는 것이다. 김정은의 수행자 명단에 평안북도 도당위원장, 도인민위원장 이름이 없는 것도 주시된다.

사진을 보니 욕을 보는 사람들이 나이가 김정은의 큰 형님이나 아버지정도 되어 보이는데 김정일의 아들로 태어나지 못한 죄로 두 손을 모아잡고 황송해 하는 표정을 보기가 영 불편하다. 부디 갈로 만드는 종이산업 현대화가 잘되어 북한의 어른들이 어린 지도자한테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