晝학습, 夜식량…북한의 가을은 괴롭다

▲ 추수하는 북한 주민 <사진:연합>

9~10월은 완연한 가을이다. 북한은 남한보다 기온이 낮기 때문에 가을이 짧고, 10월말이면 북부지역은 초겨울에 접어든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 주민들은 가을걷이를 하면서 겨울과 이듬해 춘궁기를 대비한 ‘식량 저축’에 만전을 기한다. 북한에서 가을걷이란 순수하게(?) 한 해의 결실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이 시기에 무슨 짓을 하든 한 알의 낟알이라도 가정에 끌어들이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절박한 ‘생존욕구’가 깔려있다.

그래서 주민들은 9~10월을 은어로 ‘빨쥐의 달’이라고 한다. ‘빨쥐’란 북한에서 박쥐를 뜻하는 말이다. 가을을 ‘빨쥐의 달’이라고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가을이 되면 박쥐처럼 밤에만 먹이를 찾아 활동하기 때문이다. 그럼 북한 주민들의 가을살이를 살펴보자.

 

낮에는 맥없이 순응하는 로봇형 인간

북한의 가을에는 정권수립 기념일(9월 9일)과 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 등 굵직한 기념일이 있다.

따라서 가을과 함께 북한 각종 우상화 학습에 시달린다. 다른 명절과 마찬가지로 기념강연회를 실황중계(생방송)로 보고, 혁명역사 학습 등 각종 교육과 행사장에 끌려 다니며 곤혹을 치른다. 물론 내용은 대부분 김일성, 김정일 우상화 세뇌교육이다. 더욱이 올해는 노동당 창건일은 60돌을 맞이하기 때문에 한층 그러할 것이다.

한편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노동당의 교육은 두 가지 상반된 분위기를 함께 내포하며 진행된다. 한 측으로는 신심(信心)을 북돋고, 다른 한 측으로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북한의 모든 주민들이 김정일주의자로 똘똘 뭉쳐 남북을 통일시키기만 하면 지금 보다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고 신심을 주는 한편, 이에 반하는 자는 반역자로 처형되어 마땅하다고 공포심을 안겨 준다.

주민들은 일생 동안 주입되어온 이러한 맹목적 믿음과 원초적 공포감 때문에 감히 다른 생각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식량난 이후 주민들은 차츰 깨어나기 시작, 지금은 이런 강연을 제대로 듣고 필기하는 사람도 소수에 불과하다. 먹고 살기 힘든데 교육이 귀에 들어오겠나.

해년마다 북한 당국이 내놓은 구호는 천편일률적으로 되풀이 된다.

“공화국 (또는 조선노동당) 창건 ○○돌을 높은 정치적 열의와 빛나는 노력적 성과로 맞이하자.”

이제 이런 구호는 워낙 식상해서, 구호를 듣고 힘을 내는 주민은 거의 없다. 그런 구호를 백날 외쳐봤자 먹을 것이 차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주민들은 이제 경험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남들이 쳐다보는 대낮에는 맥없이 순응하며 로봇처럼 움직이지만 밤에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움직인다. 생존을 위한 창조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밤에는 생존 위해 몸부림 치는 창조적 인간

북한에서 도둑과 약탈은 너무나 많다. 대낮에는 로봇처럼 순응하면서 대상을 정해 놓고 밤이면 너도나도 활동을 시작한다.

가장 쉬운 것은 개인이 가꾸는 뙈기밭에서 곡식을 털어 내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에는 ‘마대(麻袋)농사’라는 말이 있다. 마대를 메고 다니며 남이 지어놓은 곡식들을 도둑질한다는 말이다.

마대농사를 미련한 도둑과 약탈행위 때문에 주인이나 도둑이나 둘 다 잠을 잘 수가 없다. 뙈기밭 농사를 지워 놓은 사람은 도둑들에게 털리지 않으려고 밤을 밝히고, 도둑들은 그것을 털어 내기 위해 밤을 밝힌다. 밭을 지키는 사람이든 도둑이든 간에 힘이 약하면 뺏기고 빼앗는 일이 북한전역에서 야밤에 벌어진다.

1990년대 중순경에는 몽둥이를 들고 지키는 사람들이 득세했으나 지금은 그렇게도 하지 않는다. 도둑들도 무리를 지어 자갈(돌)을 들고 맞서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도둑질이 약탈로 변한다. 어스름 녘이 되면 지키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약탈을 하는 사람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정해진 장소에 모여 행동한다.

날이 밝으면 도둑에게 털린 사람들은 통곡하고 붙잡혀서 매를 맞은 사람도 통곡한다. 통곡은 더 큰 악을 부른다. 털린 사람은 어떻게든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자신도 ‘마대 농사’에 합세한다. 한번 털려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교훈(?)삼아 더욱 대담하게 행동에 임한다.

개인 뙈기밭뿐 아니라 협동농장의 곡식 역시 대상물이다. 협동농장에는 인민군이 총을 들고 경비를 서는 점이 개인 뙈기밭과 다를 뿐이다. 그러나 방법은 착상하기 나름이다. 경비병에게 뇌물을 잘 먹이면 전혀 힘을 들이지 않고 곡식을 마대로 걷어 갈 수 있다. 술이나 값비싼 필터담배를 주면서 한 마대 슬쩍 한다.

경비병들이 자진해서 곡식을 가져다 주는 경우도 있다. 군인들은 그 대가로 술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거나 돈을 바꾸여 제대를 준비한다. 군인들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가을에 북한 주민들은 낮에는 사상학습에 시달리고 밤에는 한 알의 낟알이라도 저축하기 위해 뺏고 빼앗는 악순환 속에 살아간다. 북한의 가장 ‘큰 도둑’ 김정일 정권은 본보기로 주민 몇 명을 잡아 처형하여 이러한 행태를 단속하려 한다. 그럴 때마다 생각나는 말이 있다.

“당신들이 도둑을 손수 만들어 놓고 그들을 처벌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입니까?”

중세 철학자 토마스 모어의 말이다.

이주일 기자 (평남출신, 2000년 입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