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유여! 모든 것 바친 사랑이여

흔히 우리가 접해 왔던 북한 인권문제는 정치범 수용소, 노동 단련대 등의 인권 유린이었다. 그러나 최진이의 탈북 수기 <국경을 세 번 건넌 여자>(북하우스)를 보면 정치범 수용소 등에서의 인권 유린과 마찬가지로 하루하루 배고픔을 이겨내며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의 북한 인민들의 불확실한 삶 또한 희망의 유린이 아닐 수 없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꿈과 희망을 빼앗긴 채 한 가지 목적만을 위해 살아가기에 그들의 아픔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한 가지 목적은 살아남는 것이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부모 형제, 스승, 벗, 고향을 버리고 목숨을 건 탈북을 단행한다.

최진이의 탈북 수기에는 저자의 인간적 고뇌와 고뇌를 불러일으키는 북한의 현실이 눈앞에 펼쳐진다. 책을 보고 있는 사람 자신이 현장에 있는 것처럼 저자가 울면 울고, 저자가 아파하면 아파하고, 저자가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면 실제로 자신이 본 것처럼 머리가 떨궈진다.

평양에서의 삶에 회의를 갖다

북한에서는 가족 중 한 사람이 잘못하면 가족은 물론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처벌을 받는다. 잘못한 사람이 속한 세포조직의 책임자도 처벌을 면하기 어렵다. 죄가 무거우면 정치범 수용소나 단련대로 보내지고 가벼우면 산간 오지로 추방당한다. 저자 또한 남편 전 부인 아들의 잘못으로 평양에서의 작가 생활을 접고 청진으로 추방당하게 된다.

평양에서의 생활과 추방되는 과정에서 저자의 고뇌는 깊어간다. 평양 김형직사범대학 시절 저자는 사주팔자에 관심을 가졌고 주위 사람들에게 조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언해준 것이 비사회주의 그루빠(그룹)에 적발돼 추방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추방의 위기를 모면한 저자는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작가가 되었으나 그가 원하던 삶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인간의 보편적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인간의 행복에는 평범한 사람들과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권리도 포함될 텐데, 북한에서는 독신이기 때문에 그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 권리를 누리기 위해 저자는 17년 연상의 남자와 결혼한다.

그러나 저자가 원했던 권리는 처음부터 북한이라는 사회에서 갖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자신의 잘못이 아닌 남편 전 부인 아들의 비행으로 청진으로 추방당하게 되면서 평양 사회, 북한이라는 사회에 대한 회의는 깊어갔다.

청진에서 북한의 현실을 보다

추방된 청진에서 저자는 모든 인민들이 겪고 있던 인간 이하의 삶을 경험하게 된다. 기아에 허덕이다 죽은 길가의 시체는 저자에게는 충격이었지만 그곳의 인민들에겐, 아니 죽지 못해 살아가는 인민들에겐 불쌍하다고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그리고 시체들을 다루는 순암 시장 꽃제비들의 모습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끔찍한 모습이었다. 처참한 인민들의 삶은 결국 저자의 삶으로 다가온다.

“인생이 난파를 당해 절망이라는 대양에 뿌려진 지 며칠째 되어오면서 나는 정지해 있으면 깊이를 모를 바닥에 아주 가라앉을 듯 싶은 극심한 심적 공황에 빠져들었다. 짚오라기든 물먹은 나뭇조각이든 의지할 만한 것이 보이면 덮어놓고 몸을 움직여가야 했다. 수확이 있든 없든 상관없었다. 움직일 일이 있다는 것, 그래서 움직인다는 것, 그것만이 현재 나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유일한 삶의 증거였다.”

강을 세 번 건너다

청진에서 죽기 직전까지의 고통을 경험한 저자는 탈북을 결심한다. 북한의 무참한 억압과 굶주림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인민들을 보면서 자유에 대한 의지도 높아졌다. 이윽고 저자는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건 탈북을 단행한다.

첫 번째 탈북에 성공한 저자는 먹을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유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아들을 구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는 통제된 사회에서 억압과 기아에 허덕이며 살아갈 아들을 구출하고 싶은 어머니의 당연한 결심이었다. 그래서 다시 두만강을 넘고 아들과 함께 탈북을 하게 된다.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세 번이나 넘는 저자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하나는 자유에 대한 염원이고 하나는 가장 소중한 사람과 함께 자유를 누리고 싶은 소망이리라. 이는 저자의 가슴속에 메아리치는 시에서 엿볼 수 있다.

사랑과 자유
이는 내가 염원하는 모든 것
사랑이여, 너를 위함이라면
목숨을 바쳐 뉘우침 없으리라
허나 자유여
너를 위해서라면
내 사랑까지도 바치리라!

순탄치 않은 중국생활 이후 한국행

거의 모든 탈북 여성들이 중국에서의 안전을 위해 택하는 길이 중국 남자와의 동거다. 저자 또한 어쩔 수 없이 연길 남자와 동거를 하게 된다.

그러나 저자의 시련은 동거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연길 남자의 무참한 구타와 학대로 또 다른 시련을 맞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에서 굴복하지 않았던 것처럼 미친 남자로부터 온몸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구타를 당해도 자유를 향한 저자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결국 저자는 미친 남자로부터 벗어나 교회의 도움으로 한국에 발을 딛게 된다.

저자의 북한에서의 삶과 탈북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안겨 준다. 북한 인민을 외면한 채 체제유지에 급급한 정권의 폐해, 처참한 생활을 하는 북한 인민들의 삶을 우린 저자의 자유를 향한 사투에서 경험할 수 있다. 비록 간접 경험이지만 이 이야기를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앞으로 통일해 같이 살아갈 민족이고, 무엇보다도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이 북한에서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들어보자.

“우리가 오늘 이루어야 하는 통일은 일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거나 일을 하는데도 굶을 수밖에 없는 사회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북한 사람들이 알게 해주는 것이다. 죽어가는 인민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는 권력자를 권좌에 앉혀두면 안 된다는 진리를 그들에게 깨우쳐주는 일이다. 권력자의 초상화를 구해내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생명을 바쳐서까지 불 속에 뛰어드는 짓은 의식 있는 인간이 하는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길이다. 그들을 세상 한복판으로 끌어내어 생명 존중의 세계를 맛보게 하고, 자신들이 김일성 김정일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귀중한 존재라는 엄청난 사실을 제 몸으로 체득하게 해주는 길이다.”

이훈용/ <세계화포럼>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