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과 핸드폰 통화, 밤보다 낮이 유리”

핸드폰으로 통화하는 북한 주민.

“통화는 낮에만 하자”

재중(在中), 재남(在南) 탈북자들과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핸드폰으로 연결시켜 만남을 주선하는 함경북도 00시 거주 김모씨의 말이다.

해방 후의 이산가족 1세를 넘어 탈북자와 재북(在北)가족이라는 ‘이산가족 2세’가 새롭게 등장하면서 북한에 있는 가족과 통화하려는 ‘면담 요구자’도 늘고 있다.

핸드폰 적발에 3개 기관 합동작전

얼마 전 남한거주 탈북자 한모씨는 김씨를 통해 북한에 있는 가족과 핸드폰으로 통화했다. 한씨는 낮보다야 밤에 문을 잠그고 집안에서 조용하게 통화하는 게 유리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김씨는 요즘은 밤보다 낮이 유리하다고 말한다.

그는 “밤에 보안서원(경찰)들과 비사 그루빠(비사회주의 검열단), 보위원(국가보위부)들이 집 골목으로 은회(隱回)하며 누구네 집에 불이 켜져 있고, 말소리가 나는지를 일일이 순찰하고 있다”며 낮을 택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다음은 한씨와 김씨가 나눈 대화.

– 왜 낮에 통화하는 게 유리한가?
“무선전화기(핸드폰) 탐지기가 있어 밤이 되면 중앙에서 내려온 그루빠(검열단)가 마을을 돌며 통화를 탐지한다. 얼마 전 옆집 최모씨도 무선전화기를 빼앗겨 보위부에 다녀왔다. 나도 작년에 한 대, 올해 초에 한 대, 2대나 빼앗겼다.”

– 핸드폰을 빼앗기고도 무사한가?
“남한과 통화했다는 증거만 없으면 일없다(괜찮다). 보위부에 끌려가도 남조선 사람과 하지 않고, 중국사람과 장사문제를 토론했다고 하면 된다. 그리고 뒤로 좀 갖다 바치면 풀려난다.”

– 한번씩 단속될 때마다 무섭지 않는가?
“무섭다. 그러나 먹고 살려면 해야 한다. 하루 종일 장마당에 나가 국수 팔고, 쌀 되거리(농촌에서 쌀을 사서 도시에 판매)를 해도 하루 한 장(만원) 벌기 힘들다. 이런 ‘문서 장사'(북-중간 매매 중개업. ‘에이전트’ 일종)를 하면 슬슬 놀면서도 큰돈을 벌 수 있다. 대신 위험한 장사다.

– 핸드폰 탐지기가 실제로 있나? 어떻게 생겼나?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옆집 최씨도 밤에 전화하다가 전파 탐지기를 휴대한 그루빠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되었다고 한다. 밤이면 그루빠들이 안테나가 달린 배낭 크기 기계에 레시버를 끼고 돌아다닌다. 그런데 북한에 있는 화교들도 핸드폰을 사용하기 때문에 적발하기 어렵고, 잘못 단속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보위원들과 검열단은 누구네 집에 핸드폰이 있다고 미리 점 찍어 놓았다가, 불의에 습격하는 것이다.”

“통화는 길게 할 수 없어”

‘문서 장사’ 하는 중개인들은 “낮에만 통화하되, 오래 할 수는 없다”고 한다. 남쪽에서 통화하는 사람들은 오랜만에 가족과 오래 통화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오래 하면 위험하고, 배터리가 부족하다.

김씨는 “밤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배터리 충전이 어렵다”고 한다.

“중국제 휴대형 전지속에 배터리를 넣어 전깃불이 오는 집(간부 집)에 찾아가 충전하거나, 공장에 들어가 충전한다. 충전이 다 될 때까지 몰래 지키고 있다가 찾아와야 한다.”

북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핸드폰은 한국산이 아니라, 배터리 용량이 작은 ‘노키아’나 ‘지멘스’ 같은 구형(舊型) 핸드폰이라고 한다. 중국제 중고 핸드폰은 5백위안(한화 6만5천원)이면 살 수 있다.

핸드폰도 화교들만 허용

북한은 2002년 라선시에서 휴대전화 서비스를 시범 개통, 2003년 11월 평양과 각 도 소재지로 확대시킨 바 있다. 그러나 지난 2004년 4월 용천폭발사고를 계기로 평양을 비롯한 전역에서 핸드폰 사용을 전면적으로 금지시켰다.

휴대전화 서비스가 전면 중단됨에 따라 화교들도 국경지역에서만 중국의 서비스를 받아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북한에 핸드폰을 반입한 사람들은 화교들이다. 북한 거주 화교들은 90년대 중반부터 중국과 장사를 하기 위해 핸드폰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97년 단둥(丹東)과 접한 신의주, 용천 거주 화교들의 10% 정도가 핸드폰을 이용했으며, 1998년 15%, 2000년 이후에는 50% 이상이 사용해오다 지금 신의주에 사는 화교들은 거의 모두 핸드폰을 사용한다.

북한 당국은 화교들의 핸드폰 반입을 몹시 곤혹스러워 해왔다. 실시간으로 북한내 정보가 유출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경지역에서만 사용하도록 규제한 것이다.

그러나 화교들이 북한주민에게 핸드폰을 건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중국에서 ‘오더’(주문)를 주기 위해 핸드폰 요금을 거래서에 미리 넣어 통화하게 만들어준다.

‘오더’는 장사할 물품이거나, ‘사람 찾기’ 등이다. 한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데 50만원~100만원, 많게는 수백만원의 수수료를 받는다. 결국 만남 주선도 중국 화교가 전화비를 내지 않으면 성사가 안된다. 수수료는 중국인과 중개인들이 나누어 가진다.

지금 북한주민들은 “X놈들은 우리나라에서 마음대로 돈도 벌어가고 전화도 하는데, 우린 뭐가 모자라 전화도 못하느냐?”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는 것이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
중국 단둥= 권정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