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제작진, 공정성·사실성에 자신없나

어떤 굴지의 식품회사가 있다 하자. 그 회사에서 생산한 먹거리를 먹고 매우 많은 국민이 크게 아프고 서로 심하게 다퉜다. 그러나 그 사장은 어떻게 그 먹거리가 제조되고 유통되었는지 그 과정을 전혀 모른다. 알아보려 하니 공장장책임제로 식료품이 생산되기 때문에 사장은 사전이든 사후이든 그 과정에 개입하지 말라한다. 사장은 아무 영문도 모른 체 국민에게 그저 ‘대승적으로’ 사과했다. 당연히 그 사과의 진정성은 모호했고 불량식품 논쟁은 증폭만 되어 갔다. 과연 이런 해괴한 회사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있다. 우리 국민에게 정신적 양식을 제공하는 MBC가 바로 이렇다. 2008년 PD수첩 광우병 보도와 그 이후의 사태전개는 이런 이상함의 단적인 증거였다. 동물학대동영상의 소를 광우병 소로, 베르니케뇌병변으로 숨진 이가 인간광우병 환자로 둔갑하여 온 국민을 공포와 극단적인 분열로 몰아넣었는데도 MBC 사장과 임원진은 ‘왜?, 어떻게?’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사전에는 물론이고 사후에도 전혀 알지 못했다. 영문도 모르고, 뭘 사과할지도 모른 상태에서 노조가 봉쇄한 MBC 주조종실을 피해 자회사에서 몰래 ‘대승적인’ 사과방송을 해야 했다. 그것은 사과도 아니고 해명도 아니었다. 아직까지 2008년의 논란과 상처는 화인처럼 온 국민을 아프게 하고 있으며 MBC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에 엄기영 前 사장은 2009년 9월 국민에게 약속했다. 리뷰보드를 두어 사실성과 공정성 등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엄 前 사장의 이런 리뷰보드 제도는 뒤를 이은 김재철 사장체제에 계승되었다.
 
최근 PD수첩 프로그램에 대해 사전 논란이 거셌다. 사실성 논란, 공정성 논란이 크게 일었다. 물론 문제가 될지 안 될지는 재판부의 말대로 아직 방영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알 수 없다. 하지만 만일 문제가 된다면 광우병보도 때처럼 사장과 임원진이 책임을 져야 한다. 이에 김재철 사장과 MBC 이사회는 리뷰보드를 소집하여 논란이 되고 있는 프로그램에 대해 시사회를 하고자 했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데도 나 몰라라 하는 사장이 바른 정신을 가진 분일까? 아니면 책임을 지려 노력하는 사장이 제 정신을 가진 이일까? 초등학교 1학년만 되어도 어떤 사람이 바른 사장인지 가려낼 수 있다. 그렇다면 책임을 지려 노력하는 사장과 임원진에게 프로그램을 굳이 보여주지 않겠다는 PD수첩 제작진의 생각은 뭔가?


프로그램의 공정성과 사실성에 자신이 있다면 못 보여줄 일이 없지 않은가? 공정성과 사실성에 문제가 없는데도 부당하게 프로그램에 개입하려면 그때 가서 싸움을 해도 늦지 않고 오히려 싸움의 명분을 획득할 수 있지 않은가? (만일 그렇다면 나도 제작진의 입장을 지지할 것이다) 보도 자료를 내며 자신들이 논란을 자초해 놓고 임원진은 간섭 말라니 사장과 임원진은 돈이나 세고 있으라는 협박에 다름 아니다.
 
최승호 PD수첩 담당PD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장책임제를 위반하는 나쁜 선례를 만들 수 없어’ 시사회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특정 신문과 인터뷰를 한 것도 옳은 처사로 볼 수 없거니와 이 거부의 이유는 부당하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회사 사장과 임원진이 출시 전 논란이 되고 있는 제품을 보지 못하게 하는 제도가 있다면 그것이 웃긴 것이다. 하기에 이런 제도는 개정해야 하는 것이지 우스운 제도가 훼손될 것이기 때문에 그걸 지키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안 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최문순 前 사장도 국장책임제를 본부장 책임제로 개정하고자 했으며, 엄기영 前 사장도 이의 개정을 약속한 것은 이 제도가 임원진의 책임성을 근본적으로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일선 제작자에게 ‘이걸 하라 저걸 하라 이걸 빼라 저걸 넣으라’ 이렇게 개입한다면 그것은 자율성을 침해하는 중대한 문제이지만 출시 전 논란이 되는 방송물에 대해 제작진과 함께 그 내용을 검토하며 사실성과 공정성을 논의하는 것은 매우 책임 있는 행동이라 여겨진다.

광우병 보도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듯이 국장책임제 하에서 이런 게이트키핑이 되지 않아 본부장책임제 등이 논의되고 있는 것을 보면 국장책임제를 현실적으로 비웃고 무력화시킨 책임으로부터 PD수첩 제작진은 자유로울 수 없다.
 
무슨 일만 생기면 MBC 문제를 정치투쟁으로 몰아가려는 분들이나 단체들이 있다. 종편 출범을 눈앞에 둔 MBC는 이들의 희생양이 되어서도 안 되고 될 시간적 여력도 없다. 바른 정신을 가지고 책임을 지려는 MBC 이사회와 자율성을 귀중하게 여기는 제작진이 한 자리에 모여 진지하게 프로그램을 함께 보고 공정성과 사실성을 엄정히 한 후 하루 속히 국민들에게 방송하기를 바란다. 제작진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공정성과 사실성에 대해 임원진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그렇게 새로운 대화의 장이 MBC에 열리기를 학수고대한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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