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방송 공익성’ 어디 팔아먹었나?

▲미처 수정하지 못한 ‘인권회의’ 현수막

MBC가 지난주 서울에서 개최된 ‘제6회 북한인권 난민문제국제회의’의 후원을 급작스레 취소한 것이 북측의 요구 때문인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MBC는 ‘인권회의’를 <조선일보>와 공동 후원키로 했다가 행사 일주일전인 7일 주최측인 <북한인권시민연합>에 후원취소를 통보했다는 것이다.

북측은 현지제작을 위해 북한에 머물고 있는 MBC관계자에게 ‘인권회의’의 후원취소를 요청했다고 한다. MBC는 ‘PD수첩‘이 개성공단을 다녀왔고, ‘느낌표’의 ‘남북어린이 알아맞히기 경연대회’도 금강산 촬영과 함께 평양 수학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 원활한 방송제작을 위해 북한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정권의 성격상 그들이 ‘인권회의’를 비난하고, 반대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친북 성향의 시민단체들이 규탄대회를 열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그것을 이해하고 수긍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일이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공익성을 내세우는 방송에서 전 세계 인권운동가들이 참여하는 국제적 ‘인권회의’를 홀대하며, 북한의 요청에 곧이곧대로 따라주는 것은 전 세계적 망신거리가 아닐 수 없다.

무엇을 위한 북한현지제작인가?

MBC가 북한현지제작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설명 그대로라면 남북의 차이를 좁히고, 통일의 길을 한 단계 가깝게 하자는 취지의 프로그램들이다.

남북의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는 북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리는 것이 그 순서이다. 북한이 원하는 대로, 보여주는 모습대로 방송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남한의 시청자들이 북한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왜곡되고 편파적 방송이 된다.

북한에 돈을 퍼다주며, 틀에 짜여진 방송을 내보내는 것보다, 목숨을 걸고 사지를 탈출한 탈북자들의 증언을 하나라도 방송하는 것이 훨씬 사실적 방송이 될 것이다.

최근 몇 년간 탈북자들의 증가로 인해 북한의 인권유린 실태가 세상에 점점 알려지게 되었다. ‘인권회의’ 자리에서도 여러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북한사회의 인권유린 실태가 공개되었다. 북한인권문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기자의 경우에는 몇 년전부터 수차례 들었던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들은 몇 년째 한국사회 내에서 공론화되거나 이슈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방송과 언론계의 무관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을 가장 이해하고, 감싸줘야 할 우리가 북한의 눈치만 보며 현실을 덮어두고 있으니, 자꾸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것이다.

MBC의 이번 조치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북한 인권문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당장의 방송제작을 위해 북한측의 눈치만 보고 있는 이러한 현실은, 방송뿐 아니라 정부나 학계을 막론하고 한국사회의 여론주도층이 자행하고 있는 가슴아픈 작태이다.

MBC는 방송의 공익성을 되찾아라

이번 ‘인권회의’ 개막식에는 일본 후지TV의 ‘아우슈비츠, 그리고 북한’이라는 영상물이 상영되었다. 영상물은 북한 정치범 수용소 출신 이영국씨가 폴란드에 거주하는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을 만나 정치범 수용소를 증언하는 내용이었다. 남한 사람들도 아우슈비츠라면 나치세력의 끔찍한 범죄행각으로 인식하고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아우슈비츠에 비교될만한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으며, 방송인들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영국 BBC에서는 지난해 ‘악으로의 접근’과 ‘인간 모르모트’ 두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 북한 생체실험을 공론화시켰다. 이 방송의 영향으로 영국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 끝에 북측이 인권문제를 인정하게 만들었다.

방송의 공익성은 바로 이런 것이다. 감춰지고 숨겨진 범죄행위를 고발하고,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웃들을 끌어안는 것이 방송의 공익성이다. 사회적 불의를 보도하고, 대중의 반향을 일으켜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임무가 그들에게는 주어져 있다.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최악의 인권유린 국가, 범죄국가 북한에 대한 남한 방송계의 접근자세는 어떠한가? 수많은 탈북자들의 증언을 외면하고, 몇십키로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범죄행위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2005년 남한 방송계의 현 지표이다.

침묵하다 못해, 김정일의 눈치만 살피는 남한의 방송인들이 가지고 있는 공익성의 잣대는 대체 무엇인지,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다.

양정아 기자 junga@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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