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과 일본 핵무장의 함수관계

북핵과 일본 핵무장의 함수관계
North Korean Bomb and Japan’s Nuclearization

Ⅰ. 들어가는 글

2005년 2월 10일 북한 외무성이 발표한 ‘핵보유 성명’은 북한의 의도와 무관하게 향후 동북아의 핵지도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중대 조치를 취한 북한의 의도에 대해서는 ‘6자회담을 인정하되 반대급부를 받아내기 위한 벼랑끝 전술,’ ‘미국-북한 양자간 대화틀을 구축하려는 시도,’ ‘차제에 핵보유국의 지위를 굳히려는 수순,’ ‘체제와 정권을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 등 다양한 분석이 있지만 모두가 일정 정도의 설득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것만이 맞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특히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핵보유국 지위를 향한 북한의 야심과 정권과 체제를 지키려는 강력한 의지일 것이다.

핵보유국으로 발돋움하려는 북한의 노력은 반세기에 걸쳐 지속되었다. 북한은 방어적 목적 뿐 아니라, 내부통치, 외화가득, 대남 전략적 우세 등 다양한 동인(動因)을 가지고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해왔고, 그 결과 오늘날 북한에는 경제사정에 어울리지 않는 방대한 핵시설과 대량살상무기들이 산재해 있다. 이는 북한의 의도를 ‘반대급부를 노린 벼랑끝 전술’로만 해석하다가는 중요한 진실을 놓칠 수 있음을 강변하는 증거들이다. 마찬가지로 핵보유 성명이 ‘체제와 정권을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라는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과거 “핵무기를 개발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라는 입장을 취했던 북한은 2003년 4월 북경의 3자회담장에서 핵보유 사실을 흘리기도 했고, 급기야 2005년 2월 스스로 핵보유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2003년 4월의 경우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직후이어서 북한이 다음의 공격목표가 될 수 있음을 우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ㆍ10 핵보유 성명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북한은 2004년 10월 미국의 북한인권법 제정, 부시 대통령의 재선, 북한의 선 핵포기 약속을 요구하는 부시 행정부의 태도 등을 불길하게 여겼을 것이며, 특히 미국 관리들이 ‘정권의 변형(regime transformation)’을 언급하고 부시 대통령이 2005년도 연두국정연설에서 ‘폭정의 전초기지’를 제거하겠다고 말한 점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 언급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테러세력을 배태하는 체제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이 북한정권의 교체를 시도하고 중국이 이를 지지 또는 방조하는 경우 북한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되며, 때문에 북한은 최근 미중간 빈번한 외교접촉을 불안하게 지켜보았을 것이다. 요컨대 2ㆍ10 성명을 통해 북한은 체제와 정권의 위협을 느끼고 미국과 중국의 협력을 차단하기 위해 “핵무기를 가졌으니 건드리지 말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북핵 문제는 그 자체로 동북아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불안정 요인이며, 특히 한반도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보다 자세한 분석은 김태우, “한국의 대응과 대북관계: 처방과 전략,”2005년 3월 24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주최 「북한 핵보유 선언 관련 안보세미나」발표문; 김태우, “북한 핵개발에 따른 한반도 안보위협과 국가비상대비의 중요성,” 비상기획위원회,「비상기획보」제69호 (2004년 7월) 등 참조.
북핵은 남북한 교류의 걸림돌이 되며 한미동맹을 어렵게 만든다. 북한이 ‘동족’의 모습과 ‘안보위협’의 모습을 동시에 가진 모습으로 존재하는 한 한국의 대북정책은 “안보위협에 대처하면서도 민족적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한 교류협력을 추진한다”가 될 수밖에 없고, 이는 통일의 그날까지 견지해야할 과제이다. 하지만 북핵은 한국을 진퇴양난의 어려움에 빠뜨리고 있다. 남북한간 군사균형을 변질시켜 안보 문제를 유발하면서도 정부의 대북지원 정책마저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 동안도 북핵 문제는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북한이 위험한 핵무기를 만들고 있는 데에도 경제지원을 계속해야 하는가”라는 비난에 직면하게 했으며, 한미동맹에도 적지 않은 어려움을 초래했다. 김대중 정부 이래 한국은 핵문제가 종결되지 않아도 남북간 교류 협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포용’의 입장을 견지해왔으나, 이는 “남북교류에 앞서 핵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과 상충된다. 즉, ‘분단 극복’을 중시하려는 한국의 입장과 국제질서의 관리 차원에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려는 초강대국의 입장이 서로 다른 것이다.

북핵이 국제 및 동북아 안보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간단하지 않다. 북핵 문제가 장기화되고 북한이 핵무기의 숫자를 늘리고 성능을 향상시키면서 핵보유국으로 정착하게 된다면 국제사회와 한반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핵보유를 선언한 북한은 비확산체제의 명분을 약화시키고 제2, 제3의 북한을 탄생시킬 수 있는 나쁜 선례가 된다. 강경 이슬람 지도자들이 ‘북한의 선례에 따른 NPT 탈퇴 및 핵보유’를 공개적으로 주장하여 이란-유럽연합(EU) 간의 협상을 난항에 빠뜨리고 있는 이란의 경우에서 보듯, 북한의 핵보유국 기정사실화는 핵무기의 수평적 확산을 부추기는 악재로 등장할 것이다. 동북아 차원에서도 일본의 핵무장을 부추기는 원인을 제공하고 새로운 핵경쟁을 유발할 폭발력을 가질 것이다.

특히 북핵 문제는 일본에게 미묘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일본이 미일동맹 체제 하에서 핵무장을 시도할 가능성은 희박하나, 북한의 핵 및 미사일을 자국에 대한 심대한 안보위협으로 인식하고 이미 대응책들을 강구하고 있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문제는 일본이 북핵을 빌미로 일본 스스로가 원하는 정치군사 대국화의 길을 가고 있는 측면도 있다는 점이다. 일본이 공식적으로 북한의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로 인한 위협을 중시하고 있지만, 주변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진실로 일본이 북핵의 인질인가,” 또는 “북한이 일본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고 있으며, 일본이 북핵 위협을 적절한 수준으로 증폭시켜 스스로의 군사현대화를 위한 명분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현재 일본에서 진행 중인 우경화 및 보수화 경향과 시기적으로 맞물려 있다. 이 연장선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는 “일본이 언제까지 현재의 비핵정책을 유지할 것인가”하는 것이며, 이는 일본 원자력 산업이 축적한 막강한 군사적 잠재력과 무관하지 않다. 일본이 후일 북핵 문제 또는 기타 명분을 활용하여 핵무장을 결정하든가 현재보다 공세적인 핵정책을 취한다면 동북아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날 것이며, 지금은 어렴풋하게나마 그런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북핵 문제의 악화 또는 장기화 조짐과 함께 일본 핵정책은 새로운 기로를 향해 접근하고 있으며, 북핵 문제는 일본 핵정책의 방향 전환을 초래할 수 있는 변수로 다가오고 있다.

Ⅱ. 일본 원자력산업의 특징

일본은 상업용 원전 54기에 4천 5백만 Kw의 용량을 가진 세계 제3위의 원전국이다. 가동원전 20기에 약 1천7백7십만 kw의 발전용량을 가진 한국에 비하여 3배의 원전용량을 가진 셈이다. 일본 통산성이 제시하는 장기계획을 보면 2030년까지 총 120기의 원전을 건설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일본의 원자력산업은 규모의 방대함에 더하여 세 가지의 중요한 특징을 가진다.

① 신속한 자국화 및 선진화

첫째, 일본은 급속한 국산화와 함께 단기간내 세계 최첨단으로 발전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세계 유일의 원폭 피해국인 일본은 1955년 ‘민주․자주․공개’라는 원자력 3원칙을 발표했으며, ‘자주’원칙에 따라 정책목표를 에너지자원의 안정적 공급에 두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핵연료사이클의 자국화 및 핵심 원자력산업 시설 및 장비의 국산화에 박차를 가했으며, 이에 따라 1961년 일본원자력위원회가 수립한 원자력개발 장기계획에 입각한 정책 및 투자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 일관성 있게 집행되고 있다. 이와 함께 1956년 이래 일본 원자력위원회와 과기청은 매5년마다 “핵에너지 개발 및 이용을 위한 장기계획”을 발표해 왔으며, 이 계획에 따라 일본은 일관성을 가지고 원자력산업의 선진화를 추진해왔다.

일본은 1966년 가동한 최초의 가스냉각로(GCR)인 도카이 발전소를 포함한 3기를 외국에 의뢰하여 건설했으며, 7기를 외국과의 합력을 통해 건설한 바 있다. 이후의 원자력 시설은 모두 일본기술로 건설되었다. 일본의 원전 개발을 단계별로 나누어 본다면, 1960년대 기술도입 단계와 1970년대 모방 단계를 거쳐 1970년대 후반부터 국산화 단계에 돌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국산화 완성단계를 거쳤으며, 현재는 세계 선두주자로서의 기술혁신 단계를 구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기존의 경수로 체계를 뛰어넘어 MOX 등 새로운 연료를 사용하는 신형 원자로의 상용화를 목표로 원자력에너지의 혁신을 추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구상에 따라 일본은 1990년대 중반에는 개량형 경수로와 고속증식로 원형로를 가동했으며, 2000년대 중반에는 차세대 경수로를 그리고 2030년까지 고속증식로에서 생산되는 플루토늄을 경수로에 재활용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일본이 보유 중인 원자로는 대개가 비등경수로(BWR) 또는 가압경수로(PWR)이나 차세대 원자로로 후겐 신형전환로(ATR)(16.5만 KWe, 1979), 대간 신형전환로(60.6만 KWe, 1998), 조요 고속증식로(FBR)(10만 KWt, 1977 가동), 몬주 고속증식로(FBR)(28만 KWe, 1994), JT-60 핵융합로 (1985) 등을 추진하여 상당 부분을 실천했다. 몬주 원형로는 1995년 냉각수 유출로 인한 화재로 가동이 중단되었으나, 현재 후쿠이현은 재가동을 위한 수리보수를 진행하고 있다. 후겐 원자로는 2003년 가동을 중단하고 해체 중이며, 대간 신형전환로는 MOX를 사용하는 경수로로 대체 추진 중이다.

신형전환로란 사용후핵연료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을 천연 우라늄과 혼합하여 만든 MOX연료를 사용하는 것으로서 획기적인 자원 재활용을 가능하게 한다. 미래의 에너지원으로 각광받고 있는 융합로에 있어서도 1976년의 제2단계 핵융합연구개발기본계획 및 1987년의 원자력개발이용 장기계획을 근거로 실험장치 JT-60를 가동하고 있다. 융합로 연구는 미국 및 유럽과 비슷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

고속증식로도 플루토늄을 우라늄과 혼합해서 사용하는 원자로이며, 처음 장전한 양보다 연소 후에 더 많은 플루토늄을 생성시키는 장치이다. 이는 우라늄자원의 효용성을 극대화할 수 있어 부존자원이 부족한 국가들에게는 차세대 전력원으로 부각되고 있다. 고속증식로 내에서의 중성자 속도는 기존 원자로보다 훨씬 더 빨라 제어하기가 어렵고 핵연료도 기존의 개념과는 상이하여 조작에 고도의 기술을 요한다. 따라서 고속증식로를 운영하는 국가는 핵탄제조에 기술적 문제가 없는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일본은 고속증식로의 실험로인 조요에 이어 몬주 원형로를 1994년에 가동했는데 일본은 원래 2000년대 초반에 첫 고속증식로 실증로를 완공하고 2020-2030년대에 2-3기의 실증로를 추가하여 고속증식로 실용로 시대를 열 것을 계획했으나, 몬주 사고로 약간의 차질을 빚고 있다.

현재 일본의 고속증식로 기술은 프랑스와 소련을 제치고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일본은 핵연료용 저농축우라늄 확보를 위해 초기에는 미국 및 프랑스로부터의 수입에 크게 의존했으나 1884년에는 아오모리에 대규모 농축공장을 가동시킨 이후 획기적인 국산화를 이룩하고 있다. 일본은 1985년 분자레이저법으로 첫 저농축우라늄 6 mg을 회수한 이래 레이저 농축도 연구 중인데, 이 시설을 군사용으로 사용할 경우 단시일 내 무기급 고농축우라늄을 얻을 수 있다. 일본의 재처리도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다. 일본은 1959년에 플루토늄 분리에 성공하여 일본원자력연구소, 동경공대와 같은 연구소와 학교에서 실험실 규모의 재처리시설을 운영해왔으며, 본격적인 재처리는 1977년 연간 210톤 규모의 도카이 재처리공장을 가동하면서부터이며, 현재는 아오모리에 대규모 재처리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외에도 일본은 15기의 연구용 원자로와 9기의 임계실험장치를 일본원자력연구소(JAERI)를 비롯한 국가출연 연구기관과 여러 대학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렇듯 2차대전 패전국인 일본은 전쟁의 폐허를 닫고 세계 최고의 원자력산업을 육성하는데 성공했다. 일본은 무서운 일관성을 가지고 원자력산업 전 부분의 자국화를 서둘렀으며, 이제는 융합로, 고속증식로, 레이저 농축시설, 대규모의 재처리 및 농축시설, 최첨단 핵폐기물 비축시설 등 첨단 핵시설들이 일본 열도에 널려있다.

② 플루토늄 대량확보

둘째, 일본의 원자력 정책은 막대한 량의 플루토늄 확보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일본은 과거 재처리 용량이 부족하던 시절 자국에서 생산된 사용후핵연료를 영국의 BNFL사와 프랑스의 COGEMA사에 보내 재처리했으나, 지금은 아오모리에서 재처리하고 있다. 일본은 플루토늄을 신형전환로, 개량형 경수로, 고속증식로 등에 사용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며, 추후 경수로에도 MOX 연료를 사용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이를 위해 일본은 1986년 ‘포괄적 사전동의 방식’에 의해 30년간의 플루토늄 사용계획을 토대로 플루토늄 확보를 용인받은 바 있다. 이는 매 건수마다 미국의회의 동의를 받던 과거방식과는 전혀 다르며, 미국이 일본의 플루토늄 비축을 인정한 조치였다. 이에 따라 일본은 2005년 4월 현재 약 40톤의 플루토늄을 확보한 상태이다. 일본은 2010년까지 약 85톤의 플루토늄을 확보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그때까지 82내지 90톤의 플루토늄을 소비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필자가 1994년 5월 일본 과기청 방문시 받은 브리핑 내용 중 일부이다.

물론 여기서 결정적인 질문은 “일본이 확보하는 플루토늄의 전량을 소비할 것인가” 또는 “비축중인 플루토늄으로 핵탄을 만들지 못하게 할 방법은 있는가”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만이 가장 확실하게 답할 수 있다. 그럼에도 세계는 일본의 대량 플루토늄 확보 정책이 경제성이나 세계추세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현재로선 플루토늄을 연료화해서 사용하는 것은 농축우라늄을 외국에서 구입해서 경수로에 사용하는 것보다 6배나 비싸므로 경제성은 없다. 일본은 물론 자원빈국임을 내세워 추후 플루토늄 연료사용 극대화의 불가피성을 주장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미러간 핵군축 조약(START-I, START-II, SORT) 등으로 인한 핵무기 해체로 플루토늄 잉여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③ 핵외교의 투명성과 지도자의 역할

셋째, 일본 원자력산업의 이면에는 지도자들의 눈부신 정책입안 및 외교적 역할이 있었다. 일본의 원자력산업은 긴 안목을 가진 지도자들에 의해 입안․주도되었고, 정부나 수상의 교체와 관계없이 일관성 있게 지속되었다. 예를 들어, 일본이 고속증식로 운용계획을 입안한 것은 제1차 핵에너지 개발 및 이용을 위한 장기계획(1956-1960)에 의해서였으며, 도카이 재처리공장 건설을 구상한 것도 이 시기였다. 도카이 재처리공장은 1968년 착공되어 1975년 완공되었으나 미국이 전면가동을 허용하지 않아 부분가동을 해오다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가동이 가능했다. 일본의 수상들은 재처리공장 입안, 건설, 부분가동, 그리고 전면 가동을 위해 빈번하게 미국을 설득했으며, 정상회담에서도 이 문제를 빼놓지 않고 다루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컨대, 오늘의 도카이 공장이 있기까지 입안에서 가동에 이르는 30년 동안 수상들이 집요한 대미외교를 펼친 것이다. 포괄적사전동의방식을 위해서도 일본은 10여년 동안 미국과 협상을 벌였다. 당시 미국은 SDI 계획을 위해 일본의 기술참여가 필요했는데, 이를 이용한 일본의 집요한 외교가 포괄적사전동의 합의를 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최고의 원자력 정책 전문가이자 ‘일본 원자력의 아버지’라 불릴 수 있는 나카소네가 펼친 원자력입국 정책은 눈물겨운 것이었다. 해군중위로 참전 중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의 피폭을 목도한 나키소네는 종전 후 최연소 중의원이 되었고, 이후 미국으로부터 일본 원자력산업 추진을 허락받기 위해 줄기찬 대미외교를 전개했다. 나카소네는 1954년 최초로 원자력 예산을 수립했으며, 이때 국회에서 통과된 금액이 2억3천5백만 엔이었다. 이는 U235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히로시마의 한을 담은 나까소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나카소네는 방위청장관 시절 방위산업을 육성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 최초의 핵전략을 구상했으며, 수상 재직시 ‘불침항모론’을 주창하기도 했다.

아울러, 일본은 1955년에 발표한 공개원칙 및 사토 수상의 ‘비핵 3원칙’에 의거하여 원자력개발과 관련해서 철저하게 투명성을 제공하는 자세로 임했으며, 그 결과 일본은 IAEA 사찰에 있어서 B급 국가가 되었다. B급 국가는 국제사찰을 받되 신뢰성을 인정받아 상당부분 자율화가 이루어진 나라를 의미한다. 이에 비해 A급은 NPT에 의해 핵보유가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5대 강대국을 말한다.

일본은 두 달에 한번 꼴로 IAEA 관련 국제회의를 유치하면서 핵외교를 주도하는 나라로 부상했으며, 외통부 군축비확산과의 일부 인원이 원자력외교를 담당하는 한국과 달리 외무성내에 원자력국을 두어 수십 명의 전문 인력으로 하여금 핵외교를 전담케 하고 있다.

④ 핵무장 능력

넷째, 일본 원자력산업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핵무장 능력이다. 앞서 밝힌바와 같이 일본은 재처리시설 및 플루토늄 확보는 물론, 비밀가동이 가능한 레이저농축까지 확보함으로서 핵연료사이클의 자국화를 완성했다. 자체기술로 핵융합장치를 개발한 점에 미루어 핵융합 기술을 확보했음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전자, 전기, 통신, 기계, 소재산업 등에서의 일본의 수준은 세계 최고이며, 일본의 원자력잠수함 건조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일본이 개발한 로켓은 대륙간탄도탄으로 전환될 잠재력을 가진다. 인공위성 발사용이나 군사용 미사일이나 그 발사체는 사실상 동일하다. 1960년대 미국도 우주개발용으로 사용되던 아틀라스 로켓으로 대륙간탄도탄을 제작했다.

일본의 우주산업은 1970년 국립우주개발청(NASDA) 설립 이래 급성장하여 1970년대 중반부터 로켓을 시험 발사했다. 일본은 유인우주계획, 화성탐사계획 등을 위해 타네가시마섬에 대규모 우주발사대를 설치했으며, 1990년대 초반에 발사된 지구궤도진입 로켓 H-2 발사는 28분 만에 9,500 Km의 비행거리를 과시했다. 요컨대, 일본의 원자력 시설, 산업기반, 자본력, 로켓기술 등을 종합할 때 일본이 본격적으로 핵무장을 시작한다면, 조만간 중국을 능가하는 제3의 핵무장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보유한 플루토늄의 질, 미일동맹에 의한 일본 핵보유 억제 역할, 장거리 미사일 부재 등을 감안할 때 일본이 C3I를 갖춘 신뢰할만한 핵군사력을 갖추는 데에는 다소의 시간이 걸릴 것이나, 신속하게 핵탄두를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결국 일본은 NPT가 허용하는 범위내의 부분에 대해서 확실하게 사찰을 받으면서 그리고 일체의 군사적 징후를 보이지 않으면서 세계 최첨단의 수준으로 육성하는 ‘무증후 전략’을 구사한 것이며, 그 결과 원자력 선진화와 함께 자동적으로 양성되는 상당한 수준의 군사적 잠재력도 함께 보유하게 되었다.

Ⅲ. 핵무장 억제요인과 촉진요인

물론, 일본이 핵무장을 결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으며, 일단은 핵무장을 억제하는 요인(retarding variables)과 촉진하는 요인(facilitating variables)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억제요인으로는 정치적 장애물을 들 수 있다. 일본의 지도자들은 히로시마와 나카사키를 기억하는 일본인들에겐 핵에 대한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본인들이 어떤 수준의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고 그것이 과연 일본 핵무장을 가로 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검증이 필요한 상태이나, 공산당, 사회당 등 일부 정치세력들이 여전히 평화헌법 개정이나 핵무장에 반대하는 것은 사실이다. 둘째, 국제정치적 장애물이 있다. 과거 군국주의 시절 주변국들에 엄청난 피해를 끼친 적이 있는 일본이 핵무장을 강행하는 경우 중국과 러시아를 크게 자극함은 물론, 대만과 동남아에까지 여파가 미칠 것이다. 일본이 이러한 국제정치적 파장을 무릅쓰고 핵무장을 결심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셋째, 법적인 장애물도 있다. 일본은 핵무기확산방지조약(NPT)의 회원국으로서 핵보유를 위해서는 이 조약을 탈퇴해야 하며, 1967년 일본 스스로 발표했던 ‘비핵 3원칙’도 철회해야 한다. 일본의 핵보유가 평화헌법에 위배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으나, 교전권을 포기한 평화헌법의 정신에 비추어 볼 때 핵보유에 앞서 헌법개정이 선행되어야 할 필요성도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넷째, 기술적 장애물도 있다. 일본이 40톤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는 원자로급 플루토늄(RGPu)은 당장 핵무기 원료로 사용되기에는 제약점들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불순물격인 Pu240과 Pu241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제조과정이 어려우며 핵무기로 만들어지더라도 불안정하기 때문에 폭탄으로서의 신뢰성이 떨어진다. 현재까지 원자로급 플루토늄으로 핵무기를 제조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원자로급 플루토늄으로 무기급 플루토늄(WGPu)을 만들려면 Pu240과 Pu241을 Pu239로부터 분리해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쉽지 않다. 사용가능한 투발수단을 개발하는데 있어서도 기술적 제약이 존재한다. 일본이 개발한 H-2 로켓은 대륙간탄도탄이 될 수 있는 충분한 사정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추진체이나, 연료로 쓰이는 액체 산소와 액체 수소는 군사용 미사일로 사용되기에는 너무 까다롭다. 이 연료는 초저온에서 관리되어야 하는데, 발사 직전에 거대한 발사체를 냉각시키고 수 시간에 걸쳐 액체연료를 주입하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과정이다. H-2 로켓이 장거리 미사일로 변신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유용한 군사 미사일이 되기에는 어려운 변신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다섯째, 일본 핵무장의 최대 억제요인으로 미일동맹을 들 수 있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미일동맹은 일본의 안전을 지켜주는 안보방패의 역할과 함께 일본의 과도한 군사력 보유를 억제하는 ‘병마개(bottle cap)’ 역할도 함께 수행해왔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positive security assurance; PSA)은 일본의 독자적 핵무장 명분을 배제하는 역할을 해왔다. 일본 역시 확고한 미일동맹을 바탕으로 하는 안보외교 정책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에, 현 상태에서 일본이 동맹의 틀을 깨고 핵무장을 강행할 가능성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억제요인들은 최근 강화되고 있는 촉진요인들에 의해 상쇄되고 있다. 일본 핵무장을 위한 첫 번째 촉진요인으로는 우경화를 들 수 있다. 최근 일본이 보이고 있는 역사 교과서 개악 움직임,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국과의 영토 분쟁, 러시아에 대한 북방 4개 도서 반환 요구, 독도 영유권 주장 등은 미일동맹을 등에 업고 실리를 취하겠다는 의도인 측면도 있으나, 우경화의 결과인 측면도 할 수 없다.

이 연장선에서 최근 일본의 주요 언론들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과반수가 평화헌법 제9조의 개정에 찬성하고 있는 것이나 2004년 니혼 게자이 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5%가 헌법개정에 찬성했으며, 아사이 신문의 조사에서도 비숫한 결과가 나왔다. 마이니찌 신문이 일본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5%가 개정에 찬성했는데, 이는 공산당 및 사회당 의원들을 제외한 나머지 정정 소속 의원들의 대부분이 헌법개정을 원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EPCJ-Home>Media Resource>Japan Brief.

일본의 주요 지도자들이 핵보유가 위헌이 아니라는 언급을 지속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키시(1957), 오히라(1979), 나카소네(1984) 등 일본 수상들은 “일본의 비핵정책은 바뀔 수 있으며 일본의 핵보유는 위헌이 아니다”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2002년도에도 야수오 후쿠다 관방장관은 “국제 안보환경 변화에 따라서 일본국민은 핵무장을 요구할 수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으며, 신조 아베 부장관은 “일본이 소규모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수용할 수 있다”라고 발언했다. EPCJ-Home>Media Resource>Japan Brief.

이러한 우경화 움직임은 국내정치적 및 국제정치적 핵무장 억제요인들을 상쇄하고 있으며, 오늘 날 일본 국민의 대다수가 여전히 강력한 핵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은 정밀한 검정이 필요하다.

둘째, 중국의 경제적ㆍ군사적 부상은 일본의 군사현대화를 정당화해주는 훌륭한 빌미가 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미일동맹, 미호동맹, 한미동맹 등을 발판으로 중국을 에워싸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이를 돌파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미일의 영향력이 강하다고 간주하는 아세안안보포럼(ARF)에서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왔으며, 반면 자신이 주도하고 러시아가 지원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를 통해 러시아 및 구 소련 신생국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고, 인도네시아와 우호협력조약을 서명하고 협상을 통해 EU의 대중 무기수출 금지 조치를 해제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매년 국방비를 증액하면서 군사현대화를 지속하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움직임에는 미일동맹에 의한 포위망을 돌파하려는 대응적 측면도 있지만, 스스로 성장하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군사 대국화를 이루어 아시아의 맹주로 부상하려고 하는 ‘중화패권(中華覇權)’ 의식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된다면 이는 결국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간의 대결적 국제질서의 부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정당화시키는 명분이 되고 있다. 이는 결국 중일간 지역패권 경쟁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중일간 패권전쟁이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요컨대, 미국패권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가 협력하고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일본과 협력하는 대결적 질서와 함께 일본의 핵무장 명분은 강화되고 있다. 일본 역시 아시아에서의 맹주를 꿈꾸며 정치군사 대국화를 시도하는 측면이 있으나, 미국은 이 보다는 중국의 전략적 경쟁자 부상을 견제하기를 원하여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지지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와 함께 미일동맹이 가지는 일본 핵무장 억제요인도 약화될 것이다.

셋째, 북한의 핵무기 및 대량살상무기 역시 일본의 핵무장을 촉진하고 미일동맹이 가지는 일본 핵무장의 억제요인을 약화시키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 미사일, 화생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정권 및 체제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보고 필사적으로 고수하고 있으며, 북한이 이러한 자세를 취하는 한 일본이 이를 핵무장의 빌미로 사용할 여지는 남게 된다. 일본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직접적인 위협으로 인정하고 대응책을 강구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위협을 느끼는 것으로 가장하면서 스스로의 군사력을 확충하는 명분으로 이용할 수 있다. 동시에 미국은 북한의 핵보유를 만류하기 위해 중국의 대북 압박을 기대해왔으며, 이 과정에서 “중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막지 못하면 미국도 대만과 일본의 핵무장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식의 논리로 중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

이상의 억제요인과 촉진요인을 종합하여 내릴 수 있는 잠정적 결론은 적어도 단기적으로 볼 때 억제요인이 촉진요인을 압도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일본이 당장 핵무장을 결행할 가능성은 없다는 점이다. 일본이 미일동맹을 중시하고 있고 미국이 일본의 핵무장을 반대하는 한 일본이 이러한 틀을 깨고 핵무장을 결행할 가능성은 없으며, 핵무장은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등 일본이 원하는 외교적 목표들과도 상충된다. 따라서 일본은 북핵 위협과 중국으로부터의 도전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미국이 묵인하는 한도 내에서의 군사현대화를 지속하면서 후일을 기약하는 현재의 행보를 지속할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투명한 비핵국’으로 남게 될 전망이다. 요컨대, 일본의 핵정책은 북핵문제와 중국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결정적인 계기를 맞이한 것이 아니며, 보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일본이 핵무장을 결정할 것인가 하는 것은 현재 진행 중인 우경화ㆍ보수화의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북핵이나 중국 문제가 조속한 시기에 일본에게 기로를 제공할 수 있지만, 일본이 이를 활용하여 핵무장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판단되는 시점까지 핵무장 결정을 보류할 것인가는 우경화ㆍ보수화의 정도에 따라 해답이 달라질 것이다.

만약 후일 어떤 기로가 주어지고 일본이 핵무장을 결정하게 된다면, 비교적 짧은 시일 내에 세계 제3위의 핵무장국으로 부상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산업력, 기술력, 자금력 등을 종합할 때 이미 대량으로 확보하고 있는 원자로급 플루토늄을 무기급 플루토늄(WGPu)으로 변환하는 문제, 레이저농축을 통해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을 확보하는 문제 등은 심대한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일본의 정보통신 기술을 감안할 때 러시아보다 더 우수한 C3I 체계를 갖춘 핵군사력을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본격적인 핵무장은 동북아시아의 안보환경이 요동치게 만들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게 되고 대만까지 핵보유국 대열에 뛰어들게 되면 동북아는 세계의 화약고로 부상할 것이다. 이는 물론, 상상하기도 싫은 최악의 시나리오이나 일단 북핵문제의 악화가 촉발할 수 있는 하나의 시라리오임에는 틀림이 없다.

Ⅳ. 일본의 우경화와 정치군사 대국화

일본의 우경화 추세에 대해서는 두 가지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 중상주의(重商主義)적 시각에서 본다면 일본은 “군사강국을 괴하기보다는 이익을 탐닉하는 경제적 초강대국”으로 정의된다. 예를 들어, Ezra F. Vogel, “Pax Nipponica?,” Foreign Affairs (spring 1986) 등 참조.

이 시각에서 보면 일본이 비록 방위역할을 확대하고 있다고는 하나 이것은 미국의 대일 방위비 부담 증대 요구, 중국의 군사․외교적 강대화, 북핵 등 외부요인에 의해 유발된 대응적 조치(pull)일 뿐이다. 이 시각에서 보면 일본은 향후에도 안보역할 증대는 불가피한 수준에 그치고 계속해서 미일동맹에 안주하면서 중상주의적 이익극대화를 추구할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각에서 보면 일본이 핵무장을 추구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그러나 구조적 현실주의 시각에서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일본이 안보역할을 증대하는 것은 외부요인들을 빌미로 삼고는 있지만 사실상 군사정치 대국화를 염원하는 일본 스스로의 능동적 행동(push)이 된다. 즉, 우경화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된다. 일본의 안보역할 증대가 무서운 일관성을 가지고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북핵 이후 일본의 군사적 대응책을 종합한다면 일본의 행보를 구조적 현실주의적 시각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이는 후일 일본 핵무장의 불가피성을 암시하는 것이 된다.

전후 초기의 일본은 1967년 사토 수상의 비핵 3원칙, 1976년 미끼 수상의 GNP 1퍼센트 방위비 제한 등의 조치를 앞세워 수세적이고 제한적인 안보역할에 머물렀다. 그러나 1981년 스즈키 수상이 ‘1천 해리 해상로 보호’를 천명하고 나카소네 수상이 방위비 상한선을 철폐하고 ‘불침항모론’을 외치면서 일본의 안보역할은 눈에 띄게 확대되었다. 이어서, 1992년의 PKO법이 통과되면서 자위대의 해외파병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1995년의 신방위대강, 1996년의 신안보 선언, 1997년의 미일 신방위협력가이드라인 채택 등의 계기들을 맞으면서 일본의 안보역할은 획기적으로 확대되었다. 이 무렵 오자와 이찌로, 이시하라 신따로, 모리타 아키오 등 보수 지도자들이 주창한 “일본도 경제력에 걸맞는 정치적, 군사적, 외교적 능력을 갖추는 정상적인 국가가 되어야 한다”라는 ‘정상국가론’이 크게 부상했다. 이와 함께, 일본 내부에서는 평화헌법 개정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국제 외교무대에서는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특히 북핵에 대한 일본의 대응은 대단히 기민하다. 일본은 1998년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실험발사를 계기로 미일 전역미사일방어망(TMD) 공동연구에 착수한 이래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에 대처한다는 명분하에 정보 수집 및 분석능력을 강화하면서 미국과의 협력 하에 이지스함 및 AWACS 전개 및 운용체제를 강화하고 MD의 실전배치 추진하여 2007년까지 PAC-2 개량형 27기를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괴선박 식별 선박자동식별시스템(AIS) 강화, 해상보안청내 ‘육상국(陸上局)’ 신설, 정찰위성 2기 발사(2003. 3. 28) 등 정보력 강화조치들을 연달아 내놓았다. 법적으로도 주변사태법(1999), 대테러 특별조치법(2001), 유사법제(2003) 등을 통해 자위대의 활동범위를 지리적 및 개념적으로 크게 확대했다. 주변사태법은 1997 신방위협력가이드라인에 의거한 미일 군사협력의 지리적 한계를 제거한 것이며, 대테러 특별조치법은 ‘주변사태’의 범주를 넘어 반테러에 대한 자위대의 독자대응을 허용하는 것이다. 유사법제는 기발생 위협뿐 아니라 ‘예상되는 위협사태’에 대해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일본 자위대가 수동적ㆍ대응적 역할을 넘어 공세적ㆍ선제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영유권 주장, 센카쿠 열도 영유권 주장, 북방 4개도서 반환 요구 등을 통해 주변국에 대한 외교적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과거 제국주의 시절 이웃국가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끼친 일본이 오히려 과거사를 정당화하고 외교적 목소리를 높이는 현상은 ‘미일동맹에 편승한 우경화’로 해석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국 구조적 현실주의적 시각의 설득력을 높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 시각에서 볼 때, 오늘날 일본의 움직임은 과거 소극형․수동형 방위정책에서 탈피하여 평화헌법의 굴레를 벗고 정치군사적으로 강대한 세계의 지도국으로 재탄생하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떠한 경우에도 핵무장을 시도하지 않을 것”으로 결론짓는 것은 무리이며, 이 보다는 “현재로서 핵무장 가능성은 없으나 특정한 여건이 주어진다면 가능성이 생길 것” 정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를 위해 일본은 경제적 실리와 함께 군사적 잠재력을 쌓아왔으며, 이것이 곧 일본 핵정책의 저력이다. 일본이 축적한 엄청난 저력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 의해 ‘핵포기 및 농축/재처리 포기’라는 굴레를 쓰고 있는 한국의 경우와는 대별된다.

Ⅳ. 결언: 환경단체의 역할

그 동안 한국의 환경단체들은 왕성한 시민활동을 통해 환경보호에 적지 않게 기여해왔다. 그럼에도 국내외 핵문제의 급변을 감안할 때 핵문제와 관련한 환경단체들의 활동은 좀더 전문화ㆍ국제화되어야 하며, 실용주의적 원칙에 입각한 목표 및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첫째, 일본의 핵능력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경계의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과거 일본이 플루토늄을 반입할 때에 환경단체들의 반대활동이 두드러졌지만 일회성에 그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이제부터는 강화된 전문성과 국제적 역량을 통해 지속적으로 경각심을 일깨우는 활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우경화 및 보수화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 원자력 산업의 동향과 그것이 의미하는 군사적 잠재력을 꾸준히 추적하고 지속적으로 경고를 발할 필요가 있다.

둘째, 환경단체들이 무분별한 핵시설 확대에 반대함은 당연한 일이나, 원자력 에너지의 자국화를 위해 필요한 농축시설이나 폐연료봉의 친환경적 처리를 위해 필요한 재처리시설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처지를 개선하는데 앞장서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북한이 공개적으로 핵보유를 선언하여 비핵화공동선언과 제네바핵합의를 공개적으로 폐기한 마당에도 한국만이 공동선언에 명시된 ‘농축 재처리 금지’를 준수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 이는 결코 한국이 군사적 야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나 한국이 기존의 국제질서나 동맹질서를 부인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는 ‘핵보유 포기’를 전제한 평화적 핵이용에 관한 문제일 뿐이며, 한일간의 차별적 비핵제도를 철폐하는 문제일 뿐이다. 일본은 주변국들이 가진 대일 의구심을 해소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이에 한국의 환경단체들은 평화적 핵시설을 공유하고 그 배당금도 함께 나누는 ASIATOM 같은 다자간 원자력협력기구 창설을 주창하고 나설 필요가 있다.

셋째, 북한의 핵보유에 대해서도 경고음을 내어야 한다. 이제는 한국의 환경단체들도 북핵이 동북아 및 한반도의 안보환경을 크게 악화시킬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하며, 북한의 핵의도나 핵능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핵게임을 종합적으로 분석해보면 “반대급부”와 “일정수준의 핵억제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잡으려했다는 결론이 가능하며, 북한은 핵게임을 통해 “반대급부 획득,” “핵보유,” “한국사회의 분열” 등 세 마리의 토끼를 추구해온 것으로 분석됨. 자세한 내용은 Taewoo Kim, “North Korean Nuclear Politics at the Crossroads,” Korean Journal of Defense Analyses, Vol. XVI, Fall 2004, pp. 27-48 참조.

핵능력에 대해서도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 항간에는 “핵무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핵실험이 없는 상태의 조잡한 수준의 핵무기이므로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사실과 동떨어진 무책임한 낙관론이다. 남아공화국이 1993년까지 핵실험 없이 여섯 개의 핵폭탄을 만들어 유지했었다는 사실이나 이스라엘이 핵실험 없이 방대한 핵군사력을 유지하고 있는 사실을 감안할 때 핵실험의 유무가 결정적인 변수가 되지는 않는다. 또한 조잡한 핵무기도 엄청난 살상력을 발휘한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에 떨어진 역사상 가장 초보적인 우라늄탄 ‘Little Boy’와 나카사키를 강타한 최초의 플루토늄탄 ‘Fatman’은 수십만 명을 죽이고 두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조잡한 핵무기’ 논쟁은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난 것이다. 북핵문제가 어차피 안보문제나 외교문제의 범주에 머물지 않고 환경문제, 사회문제, 통일문제에까지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면, 한국의 시민단체들도 이를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오늘날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아시아에서 진행 중인 두개의 잠재대국 간의 패권경쟁을 주목해야 한다. 중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을 키우면서 시시각각 거대한 공룡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고구려 역사 죽이기’와 ‘발해 역사 죽이기’를 통한 중국인들의 동진(東南)은 이미 시작되었다.「동북공정」이 일단 한반도를 과녁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중국인들은 한반도너머로 일본과 아시아를 쳐다보고 있다. 일본도 다르지 않다. 일본도 북핵을 빌미로 군사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일본 역시 북한너머로 중국과 아시아 대륙을 응시하고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2004년 일본 정부가 펴낸「신방위대강」은 공공연하게 중국을 ‘위협 국가’로 지목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중국과 일본간의 패권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남지나해에서의 중일간 힘겨루기는 이미 뜨거워져 있다. 2004년도에는 중국이 미일의 해저 정보망을 실험하기 위해 원자력잠수함을 일본 영해에 침범시키는가 하면, 일본은 ‘일본-필리핀 안보협력’이라는 구호아래 일본 해상보안청 요원들을 보내 필리핀 해상보안청 직원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해적활동에 공동으로 대처한다는 명분이지만 이것이 중국의 남진(南進)과 동진(東進)을 견제하는 먼 포석이라는 점을 모르는 전문가는 없다.

아시아의 두 거인이 지역패권을 목표로 힘 키우기를 계속하고 있는 지금 한국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은 모든 한국인들이 고민해야 할 사항이다. 정부든, 민간인이든, 시민단체든 한국인이라면 이런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일본 핵문제를 고심하는 한국의 환경단체들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