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이후’ 北 대안 엘리트를 키워야 한다

동유럽 공산주의 붕괴 및 탈공산주의 이행의 역사를 보면 반체제 지식층을 중심으로 한 ‘대안 엘리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대안 엘리트는 공산당 독재국가와 이 국가를 추종하는 엘리트와 달리, 체제에 저항하거나 일정한 의도를 갖고 협력하는 지식인·전문가들로 구성된 사회세력이다.


대안 엘리트는 1950년대 말부터 성장하기 시작해서 1970년대에 들어와 대부분 공산권 국가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민주 체코 초대 대통령이 된 바츨라프 하벨 (Havel) 작가는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을 했을 때, 체코에서 독재와 협력하지 않는 국민으로 ‘제2 사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 제2 사회는 대안 엘리트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1970년대에 소련, 동유럽은 이러한 ‘제2 사회’가 있었다. 이들 국가에서 공산주의 체제를 공개적으로 반대한 인물이 한 두 명이 아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소련 사하로프 교수나 폴란드의 노동운동가 바웬사와 같은 사람은 변화를 위한 투쟁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제2사회’는 그들처럼 유명한 사람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었다. 동유럽이나 소련에서 시대착오적인 공산주의 독재를 반대하고 인간다운 정치, 효과적인 경제로 이행하려고 노력한 국민이 세월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었다. 그들 일부는 해외에서 망명 생활을 하지만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국내에서 활동을 했다. 


반체제 지식인들은 해외의 방송국, 신문사, 출판사 등을 이용하여 정권이 은폐하려는 사실과 소식을 알려주고 정치· 역사 · 경제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을 제공하였다. 반(反)독재 소설, 연구 자료도 해외에서 출판된 다음 공산권 안으로 확산되었다. 국내에서도 반체제 의식을 갖는 사람들은 어용 관영언론의 거짓말을 폭로하는 자료를 복사하여 확산하였다. 이 사람들은 숙청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민중의 목소리가 되었다.


각 나라에 따라 이러한 저항의 영향력이 달랐다. 폴란드나 헝가리와 같은 나라에서는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1970년대 초에 거의 다 공산당과 공산주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판단하게 되었다. 이러한 의식의 변화를 초래한 것은 공산주의 체제의 경제적 무능 및 정치적인 탄압 성격이었지만 대안 엘리트의 활동도 이 의식변화를 많이 촉진하였다. 


같은 시기에 소련에서도 인기 지식인 대부분은 체제를 직접적으로 비판하지 않았지만 공산당 정책에 대한 찬양을 피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하벨 (Havel)은 대안 엘리트가 주도하는 ‘제2 사회’ 가 나중에 민주화의 길을 열어줄 것으로 희망하였다.  당시에 이 희망이 지나친 낙관주의처럼 보였지만 사실상 하벨의 희망대로 되었다.


반체제 의식을 갖는 대안 엘리트들은 체제 붕괴를 촉진할 뿐만 아니라 탈공산주의 이행에 많이 참여하였다. 동유럽 국가의 탈공산주의 경험을 보면, 눈에 띄는 특성은 공산주의 시대에 대안 엘리트의 영향력이 강할수록 탈공산주의 이행도 통증이 덜 하고 민주주의 사회 건설이 더 잘 되었다는 것이다.


1960-70년대 동유럽에서 공산주의 체제에 저항이 제일 강했던 나라들이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이었다. 소련 연방국 안에서 대안 엘리트가 제일 강했던 지역은 발트 해 삼국이다. 지난 15여년 역사를 보면 이들 국가들이 가장 효과적인 민주체제를 실행해왔다.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들 국가들은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졌어도 간부계층을 대체하고 사회에서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세력이 이미 형성돼 있었다. 독재정권이 붕괴되자 실권을 잡을 수 있는 민주화 세력이 있었다.


또, 반체제 대안 엘리트가 영향이 큰 지역들을 보면 공산주의 시대 때도 교육, 언론, 학문 등에서 공산당의 영향이 그리 크지 않았다. 물론 공산당이 잡은 국가는 언론, 방송, 영화, 문학 활동까지 통제했지만, 어용 언론들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해 민심을 잡지 못했다.


기자들이나 학자들은 공산주의의 거짓말과 왜곡을 노골적으로 도전할 수 없는 조건 하에서도 객관적인 연구를 했고 현대적인 세계관을 표현했다. 결국 이들 국가에서 국민 대부분은 공산당 독재가 강요한 체제보다 더 효과적인 사회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동유럽 중에서도 좀 예외적이긴 하지만 폴란드의 경험을 볼 수 있다.


1960-70년대부터 폴란드만큼 ‘제2 사회’가 활발했던 동유럽 국가는 없었다. 당시 폴란드에서 정권과 협력한 지식인들은 반민주· 반민족 기회주의자로 평가받았고, 멸시와 적대감을 피하지 못했다. 폴란드 국민 대부분은 공산권 정권을 외부세력에 의해 부과된 반민족· 반민주 체제로 보았다.


1980년대 초 폴란드에서 민주화 노동운동이 발발했을 때 폴란드 국민들은 이 운동을 압도적으로 지지했고 정권과의 협력을 수치스러운 일로 여겼다. 1989년 공산당이 자유선거를 허용했을 때 공산당 후보자는 단 한 명만이 당선되었다. 민주화 운동이 혼란을 초래하지도 않았다. ‘제 2사회’ 출신들은 별 문제없이 공산당 간부들을 대체할 수 있었고, 대학교나 언론에서도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지지가 미미한 편이었다.


당시 폴란드에서 민주화 운동 출신들은 정치활동 경험뿐 아니라 실습 활동의 경험까지 있었다. 결국 폴란드에서 정치 이행은 부드럽게 전개되었다. 비공식적인 ‘제2 사회’는 쉽게 공식적인 ‘제1사회’로 변화되었다.


반대로, 대안 엘리트가 없거나 약했던 공산권 국가는 탈공산주의 이행이 훨씬 어려웠다. 어떤 경우에는 지금까지도 민주 국가를 건설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구소련 시대에 대안 엘리트가 거의 없었던 중앙 아시아 지역은 지금도 민주주의 국가가 하나도 없다. 이 넓은 지역에는 5개 국가가 있는데, 그 가운데서 3개국은 분명히 권위주의 국가로 여길 수 있고, 2개 국가도 완벽한 독재가 아니라고 해도 권위주의 경향이 심하다.


공산주의 시대에 대안 엘리트가 없었던 국가들은 공산체제가 무너진 다음에도 실권을 그대로 유지한 사람들은 간부들 뿐이다. 예를 들면 5개의 중앙 아시아 국가에서 대통령을 지낸 사람들 가운데 나이가 좀더 많은 2명은 소련 시대에도 공산당 최고 책임자인 제1비서를 지냈고, 나이가 젊은 2명은 소련 시대에 공산당 중급 간부로 지냈다. 물론 이들 나라의 중급 공무원들도 압도적으로 공산당 간부 출신들이다.


반체제 지식인들을 비롯한 대안 엘리트 영향이 없던 나라들에서는 공산당 간부들이 정권을 독점할 뿐 아니라 경제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원래부터 공산주의 사상을 별로 믿지도 않았고, 공산주의 사상을 체제 유지를 위한 하나의 도구로만 보았다. 이들 간부들은 1990년대 초 공산주의를 헌옷처럼 벗어버리고 지신을 ‘민주 정치인’이나 ‘시장경제 사업가’로 개조했다. 그러나 그들은 옛날처럼 부정부패, 기회주의, 현대사회에 대한 무식과 같은 특성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공산주의 시대에도 ‘제2 사회’가 없었던 나라들은 체제가 바뀐 다음에도 간부 출신 기회주의자들을 제거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세력이 거의 없었다. 결국 이들 국가에서는 경제문제가 심하고 특히 정치문제가 많다. 이들 국가들은 경제성장을 하는 경우에도 부정부패와 빈부격차가 심하고 권위주의 경향이 많이 나타난다. 또 유감스럽게도 간부들이 그대로 통제하는 탈공산주의 국가 대부분은 경제 부문에서도 별 자랑스러운 성과가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북한의 미래를 유추하면 낙관할 수 없다. 북한만큼 대안 엘리트가 약한 공산주의 국가도 없기 때문이다. 유감스럽지만 감시와 통제가 예외적으로 엄격한 북한에서는 침묵의 저항도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대안 엘리트가 생겨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사실은 북한 민중에게 독재정권에 저항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1960년대에 대안 엘리트가 생기기 시작한 소련에서도 1953년 스탈린 사망 시기까지 ‘제2 사회’는 불가능했다. 사상적 동원체제와 대중 테러를 통제수단으로 여긴 스탈린주의 국가에서 침묵의 저항은 너무 위험한 행위였다. 당시 소련 국민들은 마음 속으로 체제를 미워한다 해도 압력에 굴복하는 수밖에 없었고 체제 찬양을 피할 수 없었다.


소련에서는 1950년대 중엽 부분적인 자유화가 있었고, 전체주의에서 덜 엄격한 권위주의로 이행했기 때문에 대안 엘리트가 탄생할 수 있었다. 침묵의 저항을 위한 조건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살인적인 독재정권이라면 효과가 있는 저항이 있을 수 없다. 지난 15년 동안 북한 사회가 많이 바뀐 것은 사실이다. 1990년대 초까지 스탈린 시대의 소련보다 더 참혹한 독재 국가이었던 북한은 최근에 어느 정도 ‘자유화’ 되었다. 이 ‘자유화’는 주로 경제난에 직면한 정권이 옛날처럼 사회를 완전히 통제할 수 없어서 자연적으로 발생했지만, 국가의 ‘양보’도 없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탄압과 단속의 수준은 스탈린 사망 이후 소련 수준보다 훨씬 높다. 정치범의 수는 지금 북한에서15만 명 정도 되는데, 북한보다 1970년대 인구가 10배로 많았던 소련에서는 불과 수 천명에 불과했다. 이 사실만 고려해도 북한에서 대안 엘리트가 없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북한에 대안 엘리트가 없다는 사실은 북한에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실현해 가는 데 좋지 않다. 현대적인 지식과 사고방식을 가진 대안 엘리트가 없는 조건 하에서는 노동당 간부 출신들이 김일성-김정일 체제의 붕괴 이후에도 나라를 계속 다스릴 가능성이 높다.


물론 체제붕괴가 한반도 통일을 초래할 경우, 최고 지위에 남한 출신들이나 북한의 미약한 민주화 운동의 상징 인물들이 오를 수도 있다. 또 보위부원들을 비롯한 악명 높은 일부 간부들은 자신이 저저른 나쁜 짓 때문에 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탈김 시대’에 북한 지배계층은 압도적으로 간부들로 구성되리라는 점은 거의 불가피해 보인다.


또 체제붕괴 이후 간부 출신들의 행정 참여를 무조건 나쁜 것으로 보지는 말아야 한다.  좋든 싫든 노동단 간부들이 어느 정도 권력과 영향력을 허용하는 것은 그들의 저항을 완화하고 새로운 체제로의 이행에서 통증을 감소시키는 방법 중 하나다. 또, 간부들 가운데서 깨끗한 사람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탈김시대에 간부 출신들의 정치 참여가 문제가 아니지만, 그들이 권력을 독점하는 것은 문제다. 이것은 수많은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


첫째, 예외는 있겠지만 간부 대부분이 원칙 없는 기회주의자들이며, 부정부패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설사 수 억원의 연봉을 받을 경우에도 뇌물을 받거나 횡령할 방법을 발견할 것이다.


둘째, 북한 간부들이 북한의 백성들보다야 현대사회의 기술, 경제에 대한 지식이 더 많겠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는 아주 무식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북한 민중의 입장에서 김부자 독재체제의 붕괴 이후에도 똑같은 사람들이 특권과 권력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보면 새로운 체제에 대한 실망이클 것이다.


그래서 북한의 대안 엘리트 형성을 장려하는 것은 장기적인 대북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다. 이러한 대안 엘리트는 ‘김부자의 북한’이 아니라. 민중의 북한, 참된 북한을 대표하고 북한사회 안에 반체제 세력 형성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독재가 무너질 경우, 이 대안 엘리트들은 북한에서 정치적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북한 사람들에게 현대적인 사고를 전달하는 중개인들이 될 수 있다. 그들이 기자, 교육자, 기술 전문가, 경영자로 활동하면 북한 경제복구 사업에서도, 민주 정치 건설에서도 결정적인 세력이 될 수 있다.


김부자 정권과 관계 없는 북한출신으로서 그들은 남한출신보다, 간부출신보다 민중의 신뢰를 더 쉽게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북한의 복구를 더 효과있게 지도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북한 내부 사정을 고려하면 대안 엘리트를 교육할 수 있는 공간은 남한이며, 그 후보자들은 탈북자들이다. 현 단계에서 북한 대안 엘리트의 기반은 불가피하게 남한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