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UP 실종가능성…영변핵시설 ‘사명’ 다하고 땡처리?

북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

제5차 3단계 6자회담이 공동문건을 발표하고 끝났다.

공동문건의 골자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60일내 폐쇄(shut down)하면 한국이 중유 5만t에 달하는 에너지를 우선 지원하고, 북한이 핵시설 불능화(disabling)할 경우 중유 95만t 상당을 지원하되 이를 5개국이 분담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북관계 정상화 등 5개 워킹 그룹을 설치해서 논의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합의는 맹점이 많다.

6자회담의 최종목표는 한반도 비핵화다.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폐기하면 달성된다. 북한 핵의 ‘폐기’라고 할 때 그 대상은 1)핵시설 2)핵개발 프로그램(플루토늄, 농축 우라늄) 3)핵무기다. 이 세가지가 모두 해체, 파괴되어야 ‘북핵 폐기’가 달성된다.

2.13 베이징 합의는 1)의 핵시설 중에서도 영변 핵시설에 대한 조치가 비교적 명확히 되어 있다. 나머지, 재처리 플루토늄과 이미 완성된 핵무기, 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한 언급은 빠져있는데, 이번 합의문의 ‘모법'(母法)격인 9.19 공동성명을 원용한다 해도 허점이 매우 많다.

이번에 폐쇄-봉인 및 불능화 대상으로 명기된 1)은 ‘영변 핵시설’이다. 북한은 영변 외에도 태천 등 다른 곳에도 핵시설 의혹을 가진 곳이 몇 군데 더 있다. 더구나 1)이 제대로 이행된다 해도 2)와 3)으로 이어지려면 산넘어 산이다. 이 말은 북한의 핵 ‘폐기’를 종착지라고 할 때, 이번 2.13 베이징 합의는 출발지에서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자, 이제 9.19 공동성명 이행완료를 종착지로 보고 출발하는데, 앞으로 우리 자동차가 제대로 갈지, 교통사고가 날지, 낭떠러지에 떨어질지 모르지만 하여튼 가봅시다’라는 의미와 비슷하다. 그만큼 종착지는 멀고 험하다는 뜻이다. 그중에서도 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문제는 처음부터 ‘실종’될 가능성까지 있다.

영변 핵시설은 지금까지 북한이 플루토늄 핵무기를 제조·생산하는 데 사용돼 왔다.

현재 북한은 92년경 추출한 플루토늄과 2003년 이후 추출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8천개의 폐연료봉을 합치면 플루토늄은 대략 40kg~50kg으로 파악된다. 북한이 재처리 플루토늄을 핵무기 제조에 모두 사용했는지, 또는 일부가 남아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핵 전문가들은 이를 모두 핵무기로 만들었을 경우 5~10개 정도를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본다.

반면 한국정부의 공식견해는 북한이 1~2개의 핵무기를 갖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견해는 95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은 이를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 핵실험 실패의 경우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1~2개만 갖고 핵실험을 강행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따라서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는 사실은 여분의 핵무기가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고, 적어도 5개 정도의 완성된 핵무기를 갖고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 상식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그렇게 보고 대비하는 것이 국가안보의 기본원칙이기도 하다. 물론 북한이 정확히 몇 개의 핵무기를 보유했는지는 김정일과 전병호 군수공업담당 비서 등 극소수만 알고 있을 것이다.

북, 필요한 핵무기는 이미 확보?

북한이 적어도 5개 정도의 핵무기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하는 이유는, 북한 핵에 인질로 잡히는 나라가 첫째 남한이고 한 다리 건너 일본이기 때문이다. 핵무기의 기본용도는 선제공격용이 아니라 반격용, 또는 위협용이다. 북핵이 남한과 일본에 문제가 되는 것은 위협용의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지금은 북한 핵무기가 테러집단에 이전되는 경우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도 북핵의 피해자가 될 수 있지만, 미국은 이미 최대 핵강국이어서 북한 핵의 인질이 될 수는 없다. 중국,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북한이 굳이 핵무기를 많이 가져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결국 핵이 없는 남한과 일본이 위협의 대상인데, ‘남한용’으로는 2개, ‘일본용’으로는 3개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수도권에 인구가 밀집돼 있고, 일본은 3개의 큰 섬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번 베이징 합의에서 명기된 영변 핵시설 폐쇄→불능화 조치가 큰 의미가 없을 것으로 보는 이유는, 40~50kg의 플루토늄으로 5개 이상의 핵무기 제조가 가능하기 때문에 영변 핵시설은 이미 ‘자기 사명’을 다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영변 핵시설을 방치할 경우 더많은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기 때문에 폐쇄, 불능화 조치가 당연히 필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플루토늄 핵무기는 농축 우라늄보다 제조 및 관리비용이 더 많이 들어간다. 이 때문에 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선호하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HEUP)이다. 북한은 2002년 10월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의 존재를 시인했다가 이후부터 부인하고 있다. 현재 북한의 공식입장은 ‘미국이 증거를 내놓으면 HEUP를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9.19 공동성명에 ‘모든 핵 프로그램의 성실 신고’가 명기돼 있긴 하지만 미국이나 IAEA가 증거를 내놓기 전에 북한이 먼저 ‘성실 신고’할 것으로 기대하기란 어럽다. 북한은 앞으로도 ‘있지도 않은 그 무슨 고농축 우라니움 프로그람을 내놓으라는 말이냐’고 나올 것이 거의 명백하다.

하지만 HEUP의 존재에 대해서는 96년 경 북한이 미사일 기술을 파키스탄에 넘겨주고 그 대신 고농축 우라늄 기술을 들여온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파키스탄 핵개발의 대부인 압둘 카디르 칸 박사의 증언,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비서의 증언에서 교차확인되고 있다.

황 전 비서는 “전병호 군수공업담당 비서가 그 전(96년 이전)에는 나에게 ‘핵무기를 몇개 더 만들어야 하니까 국제비서(황장엽)가 외국에 나갈 때 플루토늄을 좀 사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96년 전비서가 외국에 갔다가 가을 경 다시 나타나 ‘이제 플루토늄을 사올 필요가 없게 됐다. 파키스탄과 농축 우라늄 기술 협정을 맺었다’고 말했다”는 증언을 여러 차례 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베이징 합의문에는 “북한은 9.19 공동성명에 따라 포기하도록 돼있는 사용후 연료봉으로부터 추출된 플루토늄을 포함, 성명에 명기된 모든 핵프로그램의 목록을 여타 참가국들과 ‘협의’한다”로 돼 있다. ‘협의’한다는 말은 북한의 공식입장대로 ‘우리는 HEUP가 없다’고 주장할 경우 ‘말 공방’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협의’ 과정에서 HEUP 문제는 실종될 가능성이 있고, 이것이 이번 베이징 합의문의 결정적 맹점이다.

김계관 얼굴 ‘승리’ 희색

북한의 HEUP 존재에 대해서는 2002년 10월 미 국무부 제임스 켈리 대북특사가 방북하여 강석주 제1부상에게 들이민 ‘증거’가 있다. 이 증거는 북한이 원심분리기에 필요한 특수알루미늄 재제를 구입한 영수증일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가 있다. 또 칸 박사와 황 전 비서의 증언도 있다.

그런데, 분명히 미국이 먼저 ‘증거’를 들이밀고 HEUP의 존재를 주장했는데도 이번 합의문은 아주 두루뭉실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북한의 핵실험 이후 부시 행정부의 성급한 성과주의의 일면이 발견되는 것이다.

만약 HEUP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북한은 이번 베이징 합의를 통해 이미 필요한 핵무기는 보유한 상태에서 ‘자기 사명’을 다한 영변 핵시설을 ‘땡처리’ 해주고 100만톤 상당의 에너지를 얻어가는 꼴이 된다. 13일 베이징 합의 후 북한 김계관 부상의 얼굴은 희색이 가득했다. ‘승리’했다는 모습이 역력했다.

다음달 19일 제6차 6자회담이 열린다. 그러나 북한 핵폐기로 가는 종착지는 너무 멀어 보인다. 관련국은 이제부터 끈질긴 지구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또 뒤통수를 얻어맞는 제네바 합의의 재판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