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 이후 국제사회와 북한간 유화적 대화 국면이 조성된 가운데, 유럽연합(EU)이 강도 높은 추가 대북(對北)제재를 실시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연합뉴스는 10일 유럽연합 소식통을 인용해 EU가 김정일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과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등 김정일의 최측근들을 제재대상 인물로 지정하는 강력한 대북한 제재를 단행했다고 보도했다.
EU는 지난달 22일 브뤼셀에서 열린 환경장관회의(환경이사회)에서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 한 대북제재 ‘규정(Regulation)’ 개정안을 승인했다.
대북제재 ‘규정’ 개정은 지난해 7월 열린 EU 외무장관회의에서 유엔 안보리 결의 1874호와는 별개로 EU가 자체 대북제재에 나선다는 ‘공동입장’을 채택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규정’은 EU 각 회원국 실정법에 우선하는 효력을 지니는 가장 강력한 규범이다.
이번에 개정된 ‘규정’에는 ▲입국·통과 금지 ▲자산 동결 ▲역내 송금 금지 등의 제재를 받을 대상자로 기존의 개인 5명, 법인 8개 이외에 13명의 개인과 법인 4개가 추가됐다.
추가된 13명의 개인 가운데는 장성택 행정부장과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외에 김정일 비자금을 관리하는 김동운 노동당 중앙위원회 ’39호 실장’과 핵무기 개발을 총괄하는 전병호 노동당 군수비서 등이 포함됐다.
또한 영변원자력연구소, 련광무역회사 등 4개 법인이 대량파괴무기(WMD) 등에 연관된 혐의로 제재대상 법인으로 추가 지정됐다.
EU의 추가 제재 명단에는 유엔이나 미국과 일본의 독자적 대북제재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김정일의 최측근들이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유엔 안보리 제재위원회는 지난해 7월 윤호진 남천강 무역회사 책임자, 리제선 원자력 총국장, 황석하 원자력 총국 국장, 리홍섭 전 영변 원자력 연구소 소장, 한유로(Han Yu-ro.한글표기 불분명) 련각산수출조합(조선 련봉총회사) 책임자 등 핵·미사일 프로그램과 연루된 인물 5명을 제재 대상으로 선정한 바 있다.
EU가 핵·미사일 개발에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지 않은 장성택 행정부장과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을 제재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북한 체제 수뇌부들을 타깃으로 한 강도높은 압박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외에도 EU는 최근 북한의 고려항공에 대해 5년 연속 취항 금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EU는 북한 고려항공이 안전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뚜렷한 조치나 노력을 보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안정성 기준에 부합하는 올바른 운항 지침을 따르고 있지 않은 점 등을 주요 실격 사유로 지목했다.
이춘근 이화여대 겸임교수는 “유럽은 아프리카 지역에 대해서도 쿠데타가 발생했을 경우 독재자들의 개인 계좌를 동결하는 제재 조치를 취한다”며 “이번에 북한의 파워엘리트들을 구체적으로 지정해서 제재를 했다는 것은 북한 내부의 급변사태가 생겼을 경우를 상정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또한 “북한이란 국가 자체에 제재 조치를 취하면 결국 피해보는 것은 선량한 주민들 뿐”이라며 “개인에 대해 제재를 취했다는 것은 북한 권력층과 인민을 분리해서 보겠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하는 상황에서 직접적인 압박은 어려우니까 EU를 활용해 북한을 압박하는 전술을 구사하는 것일 수도 있다”며, 제재 대상들이 WMD(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연루됐다는 증거를 확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는 실무진 차원의 인물들에 대해 제재가 이뤄졌다면 이제는 점점 권력층으로 압박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김정일의 턱 밑까지 조이고 있다”며 “북한으로서는 상당히 압박을 느낄 수 있는 조치”라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