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러시아, 아세안(ASEAN) 회원국 등이 참여하는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소속 18개국 정상들이 8일 북한의 핵포기를 촉구하는 ‘비확산 성명’을 처음으로 채택했다. 이번 EAS에서는 남중국해 문제 등 주요 정세와 관련해 정상들 간 입장 차이가 뚜렷했음에도 불구,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강한 메시지를 발신하는 데 합의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EAS 정상들은 이날 오후 라오스 비엔티안 국립컨벤션센터 제11차 회의를 한 뒤 발표한 성명에서 “북한에 대해 핵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비가역적인 방식으로 포기할 것과 국제적인 법적의무를 다 할 것을 촉구한다”면서 “북한의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심대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성명은 이어 회원국들에 “유엔 안보리 제재 레짐과 2005년 공동성명을 포함한 관련 모든 유엔 안보리 결의를 준수하고, 평화적인 방식으로 한반도의 비핵화에 실질적인 진전을 가져올 6자 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위해 공동의 노력을 지속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통상 EAS를 비롯해 아세안 관련 회의는 개별 국가에 대한 비난 등을 삼가는 관행이 있었던 만큼, 북한을 지목해 ‘우려’를 표한 이번 성명은 기존 ASEAN 관련 정상회의의 관행을 뛰어넘는다. 북한의 계속된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EAS 정상들의 위기감과 경각심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에 “북한을 제외한 6자 회담 참가국들이 모두 참여하는 정상회의에서 북한을 지목해 핵·미사일 포기를 촉구하는 별도의 성명이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면서 “우리 정부가 동 성명에 국제사회의 총의가 담긴 분명한 대북 메시지가 발신될 수 있도록 관련국들과 적극 협의하고 다각적 외교 노력을 기울인 결과”라고 평가했다.
관계자는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유엔 안보리 언론성명에 이어 4월 아시아교류·신뢰구축회의(CICA) 외교장관회의 선언문, 5월 G7 정상선언, 6월 원자력공급국그룹(NSG) 대외발표문, 7월 ASEM 정상회의 의장성명 및 ARF 외교장관회의 의장성명 등이 있었다”면서 “이번 성명도 국제사회가 북한의 도발에 대한 강력 규탄과 확고한 북핵불용의 메시지를 발신해온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강력한 북핵불용 의지 및 안보리 제재 레짐을 포함한 모든 관련 유엔 안보리 결의 준수를 촉구하자는 메시지는 대북제재와 압박 모멘텀이 더욱 강화돼 나가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EAS에 참석해 비확산 성명 채택과 관련 “북한의 지속적 핵 위협이라는 도전에 대해 EAS 정상 차원에서 단호한 대응의지를 표명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면서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의 시급성과 심각성을 직시하지 못해 지금 북한의 의지를 꺾지 못한다면 국제사회 전체가 후회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은 우리 모두에게 실존하는 위협이 되고 있다. 한국에는 국민의 생존이 달린 문제”라면서 “(대북) 제재 이행에 허점(loophole)이 있다면 이를 메우고 대북 압박망을 더욱 촘촘하게 해서 북한이 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EAS 참석을 끝으로 한반도 주변 4국 연쇄회담에 이은 이른바 ‘북핵·사드’ 외교를 마무리했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러시아·중국·라오스 순방을 통해 ‘북한 대(對) 국제사회’ 구도를 공고히 했다고 평가했다.
김규현 외교안보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정상외교를 통해 북한의 도발 위협에 대한 국제사회의 단호한 대응 의지를 재확인하고 국제 제재와 압박 체제를 더욱 촘촘히 해 북한의 전략적 셈법을 바꾸는데 이들 국가의 적극적인 협력을 유도했다”고 말했다.
김 수석은 “이런 성과는 거의 모든 동아시아 지역 국가 정상과 미국 등 주요국 정상들이 모두 참여한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점에 비춰 볼 때 ‘북한 대(對) 국제사회’ 구도를 더욱 공고하게 했다”면서 “이는 앞으로 북한 핵·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공조가 더욱 강화되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피력했다.
특히 북핵과 함께 또 하나의 주요 사안이었던 고도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문제와 관련해 그는 “중국 및 러시아와 최고위급에서 전략적 소통 기회를 가짐으로써 우리의 입장을 정상 차원에서 직접 분명히 설명하고, 앞으로도 계속 소통해 나갈 수 있는 토대를 다졌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