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에서 집값 상승과 생활난이 겹치면서 다른 사람의 집에 돈을 내고 들어가 사는 이른바 ‘동거’ 형태의 주거 방식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데일리NK 양강도 소식통은 13일 “혜산시의 경우 동거하는 주민이 3년 전보다 약 10% 정도 늘어난 것으로 체감된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집값 상승을 주요 배경 중 하나로 꼽았다. 생활이 어려워 기존 집을 팔고 더 싼 집을 마련하려는 주민들이 새집을 구하는 기간 동거집에서 잠시 생활하거나 처음부터 집을 마련하지 못한 청년층이 동거를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방에서 혜산으로 올라온 대학생들이 주 수요층이라고 한다. 대학 기숙사가 있지만 생활 여건 등을 이유로 대학 근처 주택에 방을 얻어 사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설명이다. 또 신혼부부들도 주로 동거집을 찾는데, 장기간 동거를 하기보다는 자기 집을 마련하기 전까지 임시로 머무는 성격이 강하다는 게 소식통의 말이다.
수도 평양에서는 최근 2~3년 사이 동거 자체가 크게 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경제력이 있는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일정한 수요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평양 소식통은 “요즘 돈 좀 있는 대학생들이 동거집을 많이 이용한다”면서 “외곽 지역은 한 달에 10달러 정도면 방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평양에서는 아파트 방 한 칸을 빌리는 방식이 가장 흔하다고 한다. 대학생이 방 하나를 따로 사용하면서 위생실(화장실)은 집주인과 같이 쓰고, 부엌은 집주인과 사전에 합의해 사용하는 식이다.
혜산은 평양보다 동거 형태가 다양한 것으로 파악됐다. 학생들의 경우에는 주로 방 한 칸을 빌려 집주인과 위생실 등을 같이 사용하는 반면, 가족 단위 동거인들은 부엌이나 생활공간이 따로 마련된 땅집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집주인이 자기 집 옆이나 윗방을 개조해 별도 부엌을 설치하고 동거인에게 내주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양강도 소식통은 “장사가 잘 안되거나 생활이 어려운 집들이 집 옆에 작은 공간이나 부엌을 만들어 동거를 준다”고 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주택 일부를 떼어 매달 생활비를 마련하는 형태인 셈이다.
동거비는 주택 위치와 조건에 따라 차이가 크다. 평양에서는 일반적으로 30달러 안팎에 형성돼 있다고 한다. 외곽 지역의 저렴한 동거집이 월 10달러 정도이며, 중심지역의 조건 좋은 집은 월 100달러 수준이라고 소식통은 설명했다.
중구역 창전거리와 미래과학자거리 등 중심지역에 위치한 집은 동거비가 상대적으로 더 높은데, 이런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동거인을 들인 사실을 외부에 잘 알리지 않기 때문에 가격대가 공개적으로 형성되지는 않는다는 전언이다.
혜산에서 가장 싼 땅집은 한 달 동거비가 쌀 10㎏ 값 정도, 아파트는 월 10달러 안팎으로 알려졌다. 장마당이나 대학과 가깝고 집 안에 자체 지하수 시설인 이른바 ‘쫄짱’이 있으면 가격이 더 올라간다. 조건이 좋은 경우에는 일반 주택보다 5~10% 정도 높은 가격을 받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동거비가 물가와 환율의 영향을 받는 것도 혜산의 특징이다. 북한 돈으로 가격을 정하면 쌀값이나 위안화·달러 환율 변동에 따라 동거비도 조정된다. 반면 달러나 위안화로 가격을 정한 경우에는 금액 자체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평양에서 최근 2~3년간 동거비가 크게 오르지 않았다는 것과 대조된다.
즉 평양에서는 주택 위치와 질이 동거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반면, 혜산에서는 쌀값과 환율 등 물가가 동거비에 크게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이전에도 있던 동거…최근에는 ‘생계형 임대’ 두드러져
동거 형태의 주거 방식은 최근 생겨난 것은 아니다. 개인 주택을 증축하거나 개조해 임대하는 사례뿐 아니라 일부 돈주들이 여러 채의 주택을 확보한 뒤 임대 수익을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과거와 현재의 동거비를 그대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지역과 주택의 형태가 다르고, 물가 역시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목할 만한 것은 임대 성격이 하나로 고정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북한에서는 과거부터 돈주 등 경제력이 있는 주민이 여분의 주택을 임대해 수익을 올리는 사례와 생활이 어려운 주민이 주거 공간을 활용해 현금을 마련하는 사례가 함께 나타나 왔다. 최근에도 이러한 모습들은 이어지고 있다.
특히 혜산에서는 생활이 어려운 주민이 자신이 실제로 살고 있는 집의 일부를 개조해 동거인에게 내주고 매달 생활비를 마련하는 사례가 구체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집값 상승과 생활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기존에도 존재해 온 ‘생계형 임대’가 두드러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젊은층의 내 집 마련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도심 아파트 가격이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크게 오르면서 집을 구하지 못한 젊은 신혼부부들이 부모와 함께 살거나 동거집에서 생활하고, 심지어 집을 마련하지 못해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혜산에서는 비슷한 흐름이 포착됐다. 최근 혜산에서는 결혼할 때 남성과 여성 집안이 절반씩 돈을 부담해 집을 마련하는 방식이 하나의 관행처럼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여성이 결혼 전에 직접 집을 마련하는 사례도 있다는 전언이다.
평양에서도 결혼한 뒤 무조건 남편 부모와 함께 사는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처음부터 분가가 가능한 경제력을 결혼 조건으로 보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높은 집값이 일부 동거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동거 자체가 장기적인 주거 선택지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월세는 있는데 왜 ‘전세’는 없을까
흥미로운 것은 북한에서 오랫동안 주택 매매와 임대가 암암리에 이뤄져 왔지만, 한국에서와 같은 ‘전세’ 형태의 주거 방식은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평양과 양강도 소식통 모두 “전세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대신 집주인이 목돈이 필요하면 6개월이나 1년치 동거비를 한꺼번에 받은 뒤 일정액을 깎아주는 방식이 사용된다. 이번에 양강도 소식통을 통해 혜산에서 1년치 동거비를 미리 내면 약 5%를 할인해 주는 사례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에 전세가 없는 것은 주택이 공식적으로는 국가 소유인 북한의 특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 사이에서 실질적인 주택 매매가 이뤄지고는 있지만, 주택 자체의 소유권을 넘긴다기보다는 ‘살림집 이용 허가증’으로 대표되는 거주권을 넘기는 것에 가깝다. 이런 구조에서는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거액을 맡긴 뒤 몇 년 뒤 돌려받는 계약이 보호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이런 계약은 신용 관계가 전제돼야 한다. 신용이 깔려있지 않으면 법률적으로라도 보장이 돼야 하는데 북한에는 등기 등 주민 간 권리관계에 대한 서류를 통해 법적으로 보장해 줄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다.
집주인 입장에서도 전세보다 월세가 현실적이다. 현재 동거인을 들이는 주민 상당수는 당장 생활비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매달 10달러나 30달러 또는 쌀값에 해당하는 현금을 받는 것이 목돈을 한꺼번에 받아 운용하는 것보다 생활에 직접 도움이 된다.
세입자 입장에서도 큰돈을 가지고 있다면 그 돈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집을 빌려 쓰기보다는 살림집 이용 허가증을 넘겨받는 방식으로 자기 집을 마련하는 것이 더 선호된다. 결국 북한 주택시장에 ‘집을 산다’, ‘잠시 빌려 산다’라는 선택지는 존재하지만, 한국식 전세 제도가 들어설 요인은 없는 것이다.
동거 형태의 주거 방식이 늘고 있으나 북한 주민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내 집을 마련하는 일이라는 게 소식통들의 말이다. 평양의 대학생들에게 동거집은 학교 가까이에서 생활하기 위한 임시 공간이고, 혜산시 주민들에게는 집을 새로 마련하기 전 잠시 머물거나 생활비를 보충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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