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축전, 무엇을 남겼나

“남북을 오가는 축전 한마당에 징검다리 하나를 놓았다.”

16일 막을 내린 6.15민족통일대축전은 지난해 평양에 이어 올해는 광주에서 개최, 휴전선을 오가는 ’민족 한마당’이 어느 정도 틀을 잡는 데 기여했다는 평을 받았다.

남북·해외 대표단은 축전 내내 환담과 부문별 현안을 논의하는 등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6.15와 8.15기념 축전이 날실과 씨실로 맞물릴 통일행사 정례화의 앞길을 밝혔다.

정현백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공동대표는 폐막연설을 통해 “안팎의 어려운 정세 속에서도 이번 축전을 통해 겨레의 드높은 통일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 말했고 북측 위원인 최창식 보건성 부상은 “축전을 통해 겨레의 마음을 하나로 이어주는 6.15공동선언의 귀중함을 더욱 깊이 새겼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행사는 서울.경기 지방에서 벗어나 광주에서 열렸다는 데 의의가 컸다.

북측 대표단은 행사 첫날인 14일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하는 등 시종 ’민중항쟁의 도시’를 찾은 데 의미를 부여했고 남측은 통일행사 개최지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여유’와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다.

또 6.15공동선언 6돌을 기념한 남북 공동수업은 학생들이 통일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통일행사 ’일보 진전’의 성과를 냈지만 축전 내실에 대한 아쉬움도 컸다.

남북·해외 대표단은 14일 저녁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개막식과 함께 개막축하공연에 참석했고 자정을 넘겨서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환영연회를 가졌다.

다음날인 15일 저녁에는 조선대학교에서 축하공연에 이어 자정께 무등파크호텔에서 축하연회에 참가했다.

16일에도 오후 목포 유달산 참관 후 유달경기장 축하공연, 신안비치호텔 환송연회가 계획돼 있다.

사흘 동안 장소만 달리했지 ’저녁 공연, 밤 연회’의 공식은 계속되는 셈이다.

더욱이 대표단이 만찬을 끝낸 시간은 예정보다 2시간 넘게 지체된 새벽 2시께로, 여유롭고 탄력적인 일정 안배가 아쉬웠다.

빠듯한 일정만큼 실속이 있었는지 의문도 제기됐다.

15일 공동 채택된 호소문은 통일에 매진할 것을 역설하면서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통일로 나가는 겨레의 앞길을 막을 힘은 이 세상에 없다”는 선언적인 말로 끝맺었다.

그나마 6.15공동선언실천 공동위원장 회의에서 재일 민단과 조총련의 화해 흐름을 환영하고 적극 협력하기로 합의하는 동시에 백낙청 남측위 상임대표가 “북과 해외 공동위원장에게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특정 정당 관련 발언들에 대해 우려를 전달”한 것이 가시적인 성과였지만 현안에 대한 해결책 모색이나 방향제시를 위한 자리는 부족했다.

또 이번 축전기간 북측 민간대표단장인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의 발언이 내내 논쟁의 씨앗이 됐다.

그의 ’한나라당 집권시 남북교류 파탄’ 발언은 한나라당의 규탄과 함께 물론 당국자의 유감 표명으로 이어졌고 각계 인사들의 사과 촉구 공개서한까지 나왔다.

백낙청 상임대표는 이와 관련, “한나라당도 6.15를 제대로 지지하라는 뜻이었다”는 안 서기국장의 ’해명’을 전했지만 조평통 서기국은 “우리는 진실을 말했을 뿐이며 한나라당으로서도 꼭 먹어야 할 약을 주었을 뿐”이라는 강경 입장을 유지, 6.15축전이 정치적 논쟁을 진화하고 앙금을 해소하기에는 한계를 보였다.

안 서기국장에 대한 비판과 함께 축전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비
등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와 자유교원조합 등 5개 보수단체는 12일 남북공동수업 중단을 촉구했고 북한민주화운동본부 관계자들은 14일 5.18묘지 참뱃길에 반북(反北) 현수막과 플래카드를 내걸어 경찰의 저지를 받기도 했다.

15일에는 국민행동본부가 서울역 광장에서 ’6.15공동선언 규탄대회’를 개최했다.

행사 준비위는 행사반대 목소리와 일부 언론의 ’반미(反美) 성토장’ 우려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애초 빌미를 제공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빛고을에서 열린 6.15축전은 그러나 이념 갈등으로 인한 파탄까지는 이르지 않는 ’여섯 돌의 성숙함’을 보이면서 북측에서 열릴 8.15축전에 바통을 넘겼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