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6자회담 재개까지 13개월

북핵 6자회담이 중단된지 1년1개월 만인 이번 달 마지막 주(週)에 재개될 예정이다.

작년 6월23∼26일 베이징(北京)에서 개최된 3차 6자회담에서 같은 해 9월 이전 에 차기 회담을 열자고 합의하고 그로부터도 10개월 만에 제 궤도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중단 1년을 넘기면서 회담 무용론까지 제기됐던 점을 감안하면, 일단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것이 정부 안팎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오래도록 기다려왔던 북한의 복귀 선언을 계기로 본회담을 앞둔 밀도있는 사전협의가 진행될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큰 틀에서의 사전협의는 9∼13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중ㆍ일ㆍ한 순방과 그와 겹친 12∼14일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방북을 통해서, 그리고 실무협의는 6자회담 수석.차석대표급 접촉을 통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지속적인 대치에서 대화 재개로 급선회하게 된 계기는 ‘6.10’ 워싱턴 한미정상회담과 ‘6.17’ 정동영 대통령 특사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면담이었다.

당시 정 특사를 면담한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미국과 추가협의 후’라는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7월중 6자회담 복귀 용의”를 표명했다.

그 후 지난 달 22일 미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가 “김 위원장 면담 희망” 발언도 재개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했다.

미 행정부 내에서 예를 찾기 힘든 힐 차관보의 강한 이니셔티브가 6자회담 재개와 재개시 실질적인 진전 논의의 큰 추동력이 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6.17 면담’후 정부가 미.일.중.러 4개국에 특사를 보내 ‘북한 진의’ 알리기에 주력한 데 이어 지난 달 말 정 장관이 워싱턴을 방문해 딕 체니 부통령 등 미 행정부 내 대북 강경세력을 설득했던 것도 주효했다는 후문이다.

이와 비슷한 시기인 6월30∼7월1일 뉴욕에서 열린 전미외교정책협의회(NCAFP) 주최 비공개 토론회에서 6자회담 차석대표인 리 근(李 根) 외무성 미국국장은 미측 카운터파트인 조셉 디트러니 대북협상대사와 만나 마지막 점검을 벌였고, 북한은 리 국장 귀국후 1주일도 안된 9일 ‘결심’을 내놓았다.

북미 양국의 재개 노력도 전에 없이 눈에 띄었다.
‘큰 나라’인 탓에 여러 목소리가 불가피한 미 행정부는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삼가달라”는 우리 정부의 요청을 흔쾌히 수용해 입조심에 나섰고, 해마다 6.25 전쟁 기념일을 전후해 대미 비난의 목소리를 높여왔던 북한도 올해에는 이런 움직임이 일절 없었고 평양 권투 경기장에서 미 국가 연주에 기립으로 화답하는 성숙한 매너도 보여줬다.

제4차 6자회담은 단지 열리는 데 그쳐서는 안된다는데 관련국들은 대체로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이 때문에 향후 본회담에 앞선 사전협의는 노력도 단순한 재개가 아닌 실질적 진전에 초점을 맞춰질 전망이다.

우리 정부가 정동영-김정일 면담에서, 그리고 그 직후 이태식(李泰植) 외교차관 과 정 장관의 방미를 통해 미 행정부에 자세히 밝힌 ‘중요한 제안’도 6자회담 재개시 실질적인 진전을 위한 방안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2003년 8월의 1차 6자회담이 북핵 문제를 대화로 풀겠다는 공론의 장(場) 이었고, 그 이듬 해 2월의 2차회담이 모멘텀을 잇는 회담이었으며, 4개월 후인 6월 의 3차 회담이 남북한, 미국 등 3국의 해법이 제시됐다는 점에서 ‘협상(negotiation) 의 들머리’였다고 할 수 있다.

3차 회담에서 6개국은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제3차 실무그룹회의를 열어 한 반도비핵화의 첫 단계 조치로 핵동결의 범위.기간.검증방법과 상응조치(보상)를 구 체화하기로 하는 등 8개항의 의장성명을 채택하고 3개월후인 작년 9월말 이전에 제4차 회담을 열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작년 7월 고(故) 김일성 주석의 10주기 조문 불허와 탈북자 집단입국 사 건, 미 의회의 북한인권법 제정 등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물론 북미관계가 냉각되면 서 3차회담의 합의사항인 제3차 실무그룹회의 개최는 계속 지연됐고, 4차 본회담도 약속 기일을 넘기고 말았다.

또 작년 11월 미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시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와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간 혼전이 예상되면서 북한은 선택을 계속 미뤘으며, 특히 선거를 앞두 고 북한이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른바 ‘10월 위기설’이 퍼지기도 했다.

그렇게 6자회담은 해를 넘겼다. 그리고 지난 1월20일 부시 대통령의 취임식과 2월2일 연두교서에서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북한을 자극하는 말이 나오지 않으면서 6자회담이 조만간 재개될 것이라는 조심스런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기대도 잠시였다. 1월 18일(현지시간)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상원 외교위 인준청 문회에서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Outposts of Tyranny)라고 언급, 논란의 불씨를 제공했다.

그리고 북한은 2월 10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6자회담 무기한 중단과 핵무기 보유’ 선언을 했다.

이는 여러가지 책략이 담긴 북한식 승부수로 분석됐지만 그간의 6자회담이 공식 적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이뤄져왔다는 점에서 한.미. 일.중.러 5개국에게는 말 그대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 5개국은 대북 설득에 전력을 쏟았으나 성과는 없었다.

특히 정부는 지난 3월 힐 차관보의 방북을 권유, 북미간 직접 접촉을 유도했지 만 북-미 양측의 거부로 무산됐다.

그런 가운데 북한은 3월 31일 후속카드를 던졌다.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 면서 6자회담을 ‘핵군축회담’으로 전환하자고 제의하고 나온 것이다.

이 대목에서 5개국은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다.
북한의 주장을 인정한다면 6자회담 자체가 깨지는 상황이 초래되기 때문이다.

핵군축회담 주장은 6자회담 틀의 존재 여부를 떠나 협상수위를 높여 미국으로부 터 보다 확고한 안전보장을 받으려는 노림수로 풀이되었다.

그런 이유로 6자회담은 한동안 답보 상태가 유지될 수 밖에 없었다.

변화가 감지된 것은 지난 5월 8일의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발표였다.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을 빌린 외무성 대변인의 발표문 한 구석에 미국이 주권국가로 인정하는 지 여부와 6자회담 내에서의 양자회담 의지가 있는 지를 직접 만나 확인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던 것이다.

이를 기회로 닷새 후에 미 국무부 실무자들이 유엔주재 북한대표부를 방문했고, , 3주 후인 6월6일 북측의 요구로 재차 뉴욕접촉이 성사돼 서로의 의중을 파악하는 절차가 있었고 그 후 북미 양국 6자회담 차석대표가 마지막 입장을 점검하는 ‘뉴욕세미나’를 거치면서 북한의 ‘결심’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북미간의 근본적인 이견 해소가 되지 않은 채 회담이 재개됐다는 점에서 4차 회담 역시 진통을 예고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어렵사리 회담이 재개된 만큼 북미 양국을 중심으로 6자회담 참가국들이 머리와 가슴을 맞대고 현명한 선택을 도출해 내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