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산업합리와, 안정화

 

이번시간에는 1980년대 산업합리와, 안정화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과 함께 그 뒤를 이은 정치적 혼란으로 경제위기는 심화됩니다. 1980년대 연간 성장률은 남한경제가 고도성장을 개시한이래 20년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새로 집권한 전두환 신군부에게는 경제회복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릅니다.

신군부는 마이너스 성장과 혼란의 원인을 박정희 시대 중화학공업화의 무리한 추진에서 찾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박정희의 아이들로 비쳐졌던 신군부가 박정희 정부와의 차별성을 보일 기회이기도 했던건데요.

신군부는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를 주도한 상공부라인 대신 중화학공업에 부정적이었던 경제기획원라인에게 경제정책의 주도권을 주면서 당시 중화학 공업화정책에 부정적이었던 경제관료자들은 중화학공업 과잉설비와 중복투자를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각 기업들이 하고 있던 사업의 통합을 시도합니다.

1980년 8월20일 국보위 상공자원관리위원회는 중화학공업 투자의 효율을 제고하고 이들 사업을 내실화시킨다는 명분하에 우선 1차로 발전설비와 자동차, 건설중장비 부문을 대상으로 투자조정안을 발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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