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이승만·여운형 추도식…재평가 작업 본격화

오는 19일 같은 날 이승만 전 대통령과 몽양 여운형의 추도식이 열린다.


이 전 대통령의 45주기 추도식은 이날 오전 10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다. 이날 추도식에는 김문수 경기도지사, 우무석 국가보훈처 차장,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 및 광복회원, 기념사업회원, 유족 등 3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추도식은 국민의례와 최재분 장로의 기도, 고인 육성녹음, 경기도지사 추도사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16일에는 이 전 대통령의 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작성한 영문 일기가 ‘6.25와 이승만- 프란체스카의 난중일기’로 출판돼 기념회를 가졌다.


황해도 평산 출생인 이 전 대통령은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고 같은 해 4월에 상하이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됐고 1921년 5월 워싱턴 군축회의, 1933년 제네바 국제연맹회의에 참석해 일본의 침략성을 폭로했다.


1948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해 정부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했다. 6.25 동란을 극복하고 한민동맹과 자유민주주의 발전의 토대를 닦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 통치 문제로 4.19를 통해 대통령직에서 하야했다. 정부는 이 박사의 공훈을 기려 1949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했다.


몽양 여운형의 63주기 추모식도 이날 오전 11시 강북구 수유리 묘전에서 ‘몽양 여운형 선생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다.


이날 추모식은 손용호 서울북부보훈지청장, 함세웅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비롯한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과 광복회원, 기념사업회원 및 유족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 전창일 기념사업회 이사의 경과보고, 여철연 기념사업회장의 식사, 헌화 및 분향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경기도 양평 출생인 여운형은 배재학당, 흥화학교 등에서 신학문을 익혔고 1919년 4월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외무부 차장, 임시의정원 의원 등을 역임했다.


1944년 8월에는 일본의 패망을 확신하고 비밀리에 건국동맹을 결성해 조국광복을 준비했으며 광복 후에 건국준비위원회 조직을 추진했다. 정부는 이러한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이 전 대통령은 독재자로, 여운형은 사회주의 이력으로 독립운동에 대해 그 진가가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고 있다며 이들에 대해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는 지난 4월 ‘4·19혁명과 이승만’이라는 주제의 세미나 참석, “이승만 초기 대통령은 장기집권과 3.15부정선거 등 비판받아 마땅한 정치적 과오가 있지만 전 생애에 걸친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수립, 6.25동란에 나라를 수호하는 등 빛나는 업적은 마땅히 평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철순 부산대 교수는 “이승만 대통령은 사실 미국과 사사건건 대립하고 대한민국의 국익을 지키려다 미국과 수차례 갈등을 빚었다”면서 “미국은 이승만을 견제하려 했으나 정세의 변화로 이승만의 단정노선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을 뿐 그가 미국에 순응적인 맹목적 친미주의자이거나 대미 사대주의자였기 때문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지난 5월 발간된 ‘대한민국 건국의 재인식’이란 책에서 김용직 성신여대 교수는 “이승만의 단정수립 제안은 당시 상황에서 평화적 합의에 의한 통일이라는 목표가 소련과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거부당하여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나왔다”며 이승만의 단독정부론에 대해 그에게 모든 분단의 책임을 전가하려는 시선을 경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정식 펜실베니아대 명예교수는 “(여운형은) 마르크스를 신봉하지만 폭력을 통한 혁명과 유물론은 거부하고, 자유와 평등을 이상으로 삼았던 진보적 민족주의자”라고 말했다. 여운형의 독립에 대한 집념과 조국통일에 대한 열망을 강조한 이 교수는 그를 “한국사회가 따라잡기엔 너무 앞서나간 열린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남시욱 교수는 “오늘날 한국의 좌파세력이 아직도 구좌파적 사고방식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시대착오가 아닐 수 없다”며 “좌파이면서도 사회통합에 관심을 보였던 여운형 모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운형의 독립운동에 대한 재평가는 사회주의성향이라도 독립운동을 한 것에 대해 인정해준다는 긍정적인 부분이 있는 반면 친일행위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진행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