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합의에서 신고서 제출까지

북한이 핵프로그램 신고서를 26일 북핵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건넸지만 원래 약속했던 시한보다는 6개월 가까이 늦은 `지각 제출’이다.

작년 `10.3합의’에 따르면 북한은 작년 연말까지 핵 신고서를 제출해야 했지만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및 시리아와의 핵협력 의혹에 대한 북.미 간 이견과 테러지원국 해제에 대한 일본의 반발 등으로 인해 아까운 시간을 반년이나 까먹었다.

외교 소식통은 “핵 신고 협상이 쉬울 것이라고 여기지는 않았지만 예상보다도 지루했다”고 말했다.

핵 신고와 핵시설 불능화를 연말까지 마무리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10.3합의’가 도출되자 언론의 관심은 핵시설 불능화에 맞춰졌었다.

핵시설 동결은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 타결 이후에도 이뤄졌었지만 핵시설을 못쓰게 만들어 재가동하는데 1년 이상 걸리도록 한다는 개념의 불능화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장애물은 불능화가 아닌 핵신고에 있었다.

불능화가 북한의 협조아래 비교적 착실하게 진행된 것과 달리 신고문제는 북.미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와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평양(작년 12월), 베이징(2월), 제네바(3월) 등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협의를 계속했지만 해법은 도출되지 않았다.

핵신고의 3가지 요소, 즉 플루토늄과 UEP, 시리아와의 핵협력 의혹 등이 모두 쉽지 않은 이슈였지만 특히 UEP와 핵협력 의혹에 대해 북.미가 첨예하게 맞섰기 때문이다.

제2차 북핵위기의 진원이었던 UEP는 북.미 간 체면과 명분의 문제여서 더욱 어려웠다.

북한으로선 줄곧 부인해 왔던 UEP의 존재를 갑자기 시인했다가는 `거짓말 정권’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수 있었다.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화끈하게 시인했다 오히려 일본과의 관계가 더욱 꼬였던 경험도 UEP고백을 꺼리게 만들었다.

미국으로서도 확실한 해명없이 UEP 문제를 슬쩍 넘어갔다가는 핵실험까지 목도해야 했던 지난 5년 간의 북핵정책이 도마 위에 다시 오를 수 있고 제네바합의 파탄의 책임까지 뒤집어 쓸 수 있어 결코 양보가 쉽지 않았다.

시리아와의 핵협력 의혹도 간단치 않았다.

당초 UEP에 비해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이 문제는 작년 9월6일 이스라엘이 공습한 시리아 북부의 군사시설이 북한이 협력해 만들던 원자로라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최대 현안중 하나로 부상했다.

미 행정부가 핵 확산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레드라인’으로 여겨왔다는 점에서 자칫 6자회담의 판을 뒤집을 수 있는 `뇌관’으로 작용할만한 폭발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은 시리아와의 핵협력 의혹에 대해서도 줄기차게 부인, 양측 간의 팽팽한 줄다리기만 이어졌다.

쉽지 않을 것 같던 해법은 `분리신고’와 `간접시인’ 방식이라는 창의적 아이디어로 도출됐다.

요약하자면 플루토늄 관련 사항만 정식 신고서에 담고 UEP와 핵협력의혹 등은 비공개 양해각서로 북.미 간만 공유하는 방식으로 분리하며 비공개 양해각서에 담기는 내용은 미국이 자신의 이해사항을 기술한 뒤 북한이 이를 `반박하지 않는다’고 명기하자는 것이다.

힐 차관보와 김 부상은 4월8일 싱가포르에서 만나 이 같은 방안에 합의하면서 핵 신고를 향한 가장 큰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금방 이뤄질 것 같던 핵 신고까지는 또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동안 UEP와 핵협력 의혹에 대한 협의에 집중하느라 정작 북핵문제의 핵심인 플루토늄에 대한 협의는 미진했기 때문이다.

주로 성 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의 방북으로 이뤄진 북.미 간 플루토늄 협의는 비교적 큰 고비없이 순조롭게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핵협력 의혹을 `간접시인’ 방식으로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미 행정부 및 의회 내 강경파의 지적이 변수로 부각됐다.

미국은 북한으로부터 검증에 필요한 1차 자료인 영변 원자로의 가동일지를 건네 받는 등 강경파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번에는 일본이 발목을 잡았다.

일본은 `북한의 자국민 납치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되면 안된다’며 미 의회를 상대로 강하게 로비를 펼쳤다.

미국은 결국 북.일 회담의 중재자로 나서야 했고 북한은 테러지원국 해제를 위해 이달 중순 열린 북.일 관계정상화 실무회의에서 `납치자 문제 재조사’ 방침을 밝히기에 이르렀다.

북한이 신고서를 제출하고 미국이 이에 상응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기 위한 마지막 장애물을 넘어선 것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