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총리의 자유주의는 성공할 것인가?

▲ 독일대연정 총리로 선출된 메르켈

총선이 끝나고도 혼미한 상태에 놓여 있던 독일의 정치 일정이 대연정(大聯政)으로 가닥이 잡혔다.

총리와 비서국 장관을 포함한 16개 자리 중 내무, 경제, 기술, 국방, 교육, 가족 장관은 기민 기사당 연합이 가져가고 부총리 겸 외무, 재무, 노동, 법무, 보건, 교통, 환경, 개발 등 8개 장관을 사민당이 차지했다.

이러한 배분에 대한 평가는 사민당이 총리를 내어 주는 대신 자기 실속은 확실히 챙겼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기민 기사당 연합이 총리에 올인, 다른 부분에서 지나치게 많이 양보하였다는 불평이 쏟아졌다.

이는 단순한 권력 배분의 차원이 아닌 개혁의 성패와 관련된 것이었다. 미래 독일의 운명을 좌우할 결정적 개혁 정책에 대한 요직을 다 내주고 어떻게 개혁을 실현하겠느냐는 것이다. 이는 ‘절반의 진실’을 담고 있다.

그 ‘반’은 양당의 이념 및 정책의 차이로 인한 지극히 사실적이고도 현실적인 진단이며 이는 결국 ‘ 머지않아 쪼개지고 말 것’이라는 비관적 푸념으로 연결된다. 다른 ‘반’은 양당이 이미 중도적 측면에서 많이 다가서 있으며 대연정이 원만할 경우 70%의 강력한 힘에 의한 유래 없는 개혁드라이브가 가해질 수 있다는 낙관이다.

전후 초고속 성장의 신화를 뒤로 한 채 통일 후유증과 고질적인 ‘복지병’에 발목이 잡혀 저성장-고실업의 장기 침체에 허덕이고 있는 독일이 과연 다시한번 비상할 수 있을까? 새 정부의 숙제는 한마디로 ‘독일병’ 치유다. 새 정부는 이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 의지를 천명하고 나섰다.

개혁의 방향은 한마디로 자유주의적 방향이다. 구체적으로는 기업 활동의 활성화로 요약될 수 있다. 기업의 활력을 유도함으로써 성장의 엔진을 되살려 놓는 것이 관건이다.

메르켈 총리의 개혁방향

그를 위한 주요 정책으로는 첫째, 세금 인하다. 법인세를 22%로, 소득세를 39%로 인하함으로써 ‘기업 투자’와 ‘국민 소비’ 라는 양자의 부양을 동시에 꾀하는 것이다.

둘째, 노사 문제에 과감하게 칼을 대려 한다. 이는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진다. 그 하나는 20인 이하 사업장에 대해서는 자유로운 해고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새 정부는 실업률 12%라고 하는 심각한 실업 사태를 어떻게든 진정시켜야 한다.

이에 정리 해고의 유연화라는 극약 처방만이 장기적으로 고용 창출을 노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산별 임금 협약 구조의 대개편이다. 독일은 같은 업종에 대해서는 개별 기업 단위가 아니라 산별 단위 노사 대표가 협상하는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노조의 힘이 절대적으로 막강할 수밖에 없다.

이 외에도 건강보험의 고용주 부담 완화와 같은 친기업적 정책을 과감히 밀어붙일 계획이다. 그런데 이러한 개혁 방향이 그렇게 신선해 보이지 않는 것은 과거 80년대 미국, 영국의 신자유주의적 개혁드라이브와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대외 정책의 변화도 명백하다. 새 총리 앙겔라 메르켈(여성, 51세)은 게르하르트 슈뢰더와 달리 친미적 노선을 분명히 할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선거 기간 슈뢰더의 모험주의가 독일을 심각한 위험에 빠트렸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독일을 유심히 보는 이유

이라크 전쟁 당시 프랑스에 동조하며 갈팡질팡하는 등 슈뢰더의 기회주의적 외교가 독일에 가져다 준 것은 이득없는 불안한 외교 환경뿐이라는 것이다.

러시아에 정성을 쏟은 슈뢰더와 달리 메르켈은 특별히 미련이 없어 보인다. 러시아의 영향력보다는 EU와 미국에 의존하려는 신생 동유럽 자유주의 국가들을 향해서는 더욱 적극적인 제스처를 취할 것 같다.

한편 새 총리 메르켈에 쏠린 세계의 시선은 경이롭다. 최초의 여성 총리, 최초의 동독 출신에 최연소 총리다. 메르켈의 성공은 동독민들에게 10여년이란 시간의 간격만 있을 뿐 그들도 통일된 독일 사회를 명실공이 통치하고 이끌어 갈 수 있다는 보편적 자신감과 가능성을 뚜렷이 확인시켜준 것이다.

메르켈이 여성 총리라는 사실과 국가가 처한 상황의 공통성으로 인해 영국의 영웅 ‘대처’에 비유된다. ‘영국병’의 늪에서 극적으로 영국을 구원한 ‘철의 여인’의 모습을 메르켈이 다시 한번 세계인들에게 보여 줄 수 있을까?

통일 독일의 정치 상황이 우리에게 예사롭지 않은 이유는 10년, 20년 후의 우리의 모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올바른 사회주의 체제 변동 및 안정적 통일 모델, 낙후한 북한의 급속한 부양과 한국의 지속적인 발전 등 우리에게 좋은 타산지석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이종철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