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유훈 지키려면 핵포기 못해”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는 김정일 발언 이후 북한의 외교채널과 관영방송은 연일 ‘조선반도 비핵화’를 주장하고 있다.

김일성의 ‘유훈’은 그만큼 북한정책의 결정적 기조다. 김일성의 ‘유훈교시’는 한마디로 북한사람들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관철해야 하는 지상의 과제다.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용어가 다섯 번이나 들어간 10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답변은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진심으로 바라는 것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6자 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실현된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막연하다.

그 이유는 핵무기 제조도 김일성의 유훈이고, 비핵화도 김일성의 ‘유훈’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진짜 유훈인가?

60년대 김일성 “우리도 핵무기 개발해야”

60년대 ‘카리브해 위기’를 기화로 미-소간 전략핵무기감축에 대한 대립이 팽팽했던 시기에 김일성은 “우리도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지시한 바 있다. 북한 남천화학연합기업소(영변 분강지구 원자력발전소)에 근무한 김대호씨(1994년 입국)는 “1962년 김일성에 의해 분강지구에 핵단지를 조성할 데 대한 지시가 내려졌다”고 증언했다.

김대호씨에 따르면 김일성은 핵물리 분야의 유능한 과학자를 찾아내 강력한 연구체계을 꾸려주었고, 전문고급인력들을 양성하기 위해 핵 단지 안에 핵물리대학과 김일성대학에 핵물리학부를 설치해주었다.

1986년에 영변 핵단지에서 첫 시험 원자로 가동이 성공하였고, 그해 12월 김일성은 핵 연료봉 재처리 시설을 건설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전국 전문대학 졸업생들을 모집하여 ‘12월 기업소’를 조직해주었다.

따라서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김일성의 ‘평생 유훈’이다. 바로 김일성의 유훈이기 때문에 북한은 핵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 김정일은 경제의 많은 부분을 희생시켰고, 그 결과 수백만의 주민들을 굶겨죽이는 ‘아픔’을 감내했다. 따라서 이번 회담 한방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기대는 억측에 불과하다.

핵에 집착하는 김정일의 속심

그렇다면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왜 김일성의 ‘유훈’인가? 이는 92년 ‘조선반도 비핵화에 관한 북남 공동선언’ 발표 당시 북한은 “우리는 핵을 안 만드니까 남조선에 있는 미국의 핵무기를 철수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이것이 6월 17일 김정일이 정동영 장관에게 했다는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수령님의 유훈’이라는 발언의 배경이다. 그러나 북한이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을 비롯하여 제네바 합의, IAEA 핵안전조치협정 등을 위반한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김일성의 ‘조선반도의 비핵화’ 유훈은 이미 깨진 유훈이다. 말하자면 북한이 2002년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지난 2월 핵보유 선언을 하면서 김정일이 아버지의 유훈을 이미 배신해버린 것이다.

회담에서 노리는 3가지 목적

그러면 지금 북한이 ‘조선반도 비핵화’를 주장하며 6자회담에 복귀한 목적은 또 무엇인가?

북한이 이번 회담에서 노리는 목적은 ▶시간벌기 전술 ▶ 남한의 대규모 경제지원으로 보이는 ‘중대제안’ 타먹기 ▶남북한 동시 반미감정 확산 등으로 보인다.

물론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행동에 들어가야 ‘중대제안’이 실행되겠지만, 북한은 제네바 합의 당시 ‘NPT 복귀와 핵동결’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만 들어주고 경수로 2기와 중유를 타먹었다.

지금의 상황은 과거와 많이 다르긴 하지만 북한은 또 무엇인가 지극히 당연한 요구만 들어주고 ‘중대제안’은 그저 먹는 전술로 나올 수도 있다. 만약 이 전술이 먹혀 들어가지 않으면 시간이라도 최대한 벌자는 속셈일 것이다.

이번 6자 회담에서 북한은 미북 양자협상의 틀을 마련하는 데 먼저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에는 회담 시간표 바꾸기와 지연전술로 나가자는 요량일 것이다. 양자회담 틀 짜기, 회담내용 조율하기, 의제 다시 뒤집기 식의 시간표가 이미 김정일의 머릿속에 짜여져 있을 것이다.

회담 복귀 뒤에는 또다른 강성전술 준비 관측

다음은 남한에 반미감정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민족 3대공조로 남한과 미국을 갈라놓는 것이 지금 북한의 대남전략이다. 6자회담을 하면서 자기 뜻대로 안되면 미국에 책임을 떠넘기면서 남한 내 반미여론을 조성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는데 미국은 핵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회담을 파괴하려 한다”는 식으로 나가는 것이다. 북한사람들은 이같은 김정일의 수법을 이미 다 알고 있는데, 남한에서는 너무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한반도 핵무기 철폐는 궁극적으로 미군의 완전 철수를 의미한다.

만약 이번 6자 회담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결렬된다면 북한은 ‘미국의 일방적이고, 패권주의적인 발상에 의해 회담이 깨졌다’고 비난하는 선전을 시도때도 없이 해댈 것이다.

자기 체제의 운명이 걸려있고 인민들의 떼죽음 위에서 만든 핵무기를 몇푼의 경제적 이익과 진짜 맞바꿀 김정일이 아니다. 김정일의 회담 복귀결정 뒤에는 언젠가 불쑥 내밀 또다른 핵위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지난 5월 마치 핵실험까지 할듯 하다 불쑥 유화전술로 나온 것처럼, 지금의 유화전술 뒤에는 강성전술이 준비되어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조영수(가명, 2001년 입국)
전종철(가명, 2002년 입국)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