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회령세관, 조선족 상대 금품갈취 극성

북-중 국경의 주요 관문인 함북 회령세관 직원들의 금품갈취 행위로 연변 조선족 사회의 분노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북한의 친척들을 만나기 위해 회령세관을 통과하는 조선족을 상대로 회령세관 직원들이 노골적으로 금품을 요구하거나 통과를 지연시키고 물품을 빼돌린 후 입국을 거부하는 등 각종 불법행위가 만연해 있는 것. 특히 나이 많은 조선족들이 돈과 물품을 빼앗긴 뒤 입국을 거부당하는 등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어, 연변 조선족 자치주 동포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회령세관 직원들의 이같은 비리는 지난 8월부터 집중적으로 포착되기 시작했으며, 피해자들은 회령세관의 물품 검사원 최모씨가 주동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례 1

인민폐 1만원 어치 돈과 물품 빼앗긴 李모씨


중국 옌벤조선족 자치주 룽징(龍井)시의 李모씨(71세)는 죽기 전에 친척들 얼굴이나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에 최근 북한방문을 준비했다. 친척, 자식들에 부탁해서 쌀, 밀가루, 중고 텔레비전, 중고자전거 등을 마련했고, 동네에서 헌옷들을 모았다. 몇 년 동안 플라스틱 병을 주워 모은 쌈짓돈을 여행경비로 챙겨서 지난 8월 중순 중국 싼허(三合)해관을 통과했다.

그는 입국자 중 가장 먼저 회령세관 앞에 도착했다. 그러나 눈에 띄게 짐이 많았던 그는 다른 입국자들의 수속이 모두 끝난 뒤에 수속을 받았다.

“세관 직원들이 ‘아바이 짐이 왜 이렇게 많아요?’ 하면서 내 물건들을 살폈다. 그래서 ‘북한에 형제들이 많다.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나누어 주려고 갖고 간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낌새가 이상했다”

북한세관의 입국심사는 대략 세 가지다. 우선 보위부에서 파견나온 직원들이 여행자들의 여행목적과 여행지를 심사하는 ‘정치검사’를 시작한다. 실제 북한에 친척이 있는지, 중국에서 발급한 ‘국경통행증’에 문제가 없는지 심사한다. 그 다음에 ‘세관검사’가 있는데 주로 위생검역과 소지품 검사를 한다. 마지막으로 군 보위사령부에서 파견나온 직원들의 ‘종합검사’가 있다.

회령세관 직원들은 ‘정치검사’부터 李씨에게 돈을 요구했다. 다음은 李씨의 말.

“먼저 통행증 검사를 하는 사람이 ‘정치 심사비’로 중국돈 80원을 요구했다. 그리고 나서 북한거주 친척을 확인하는데, 담당직원이 북한에 사는 누님과 내가 형제라는 증거가 없다며 트집을 잡았다. 누님 호구(호적)에 등기된 어머니의 기록과 내 호구가 일치하는데도 ‘형제임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버텼다. 하는 수 없이 중국 돈 100원을 심사대에 올려놓자 ‘통과’됐다.”

“그 다음 세관검사 때 ‘위생검사’를 한다며 내 몸에 물뿌리개로 소독약을 뿌리더니 ‘검역비’로 중국돈 50원을 요구했다. 그리고 짐에 몇차례 소독약을 뿌리더니 또 80원을 요구했다”

李씨는 여기까지는 그저 통과의례라고 생각했다. ‘저 사람들도 살기 힘드니 저렇게라도 먹고 살아야지’ 하고 느긋하게 넘겼다.

그런데 물품검사가 시작되자 세관직원들이 하나 둘 모여 들었다. 李씨는 과자, 음료수 상자를 주시하는 직원들에게 “먹어보라”며 상자 하나를 아예 그 자리에서 풀었다. 너도나도 하나씩 챙겨 돌아갔다. 통행증을 심사하던 직원은 이씨의 손가방을 맡아주겠다며 가방속에 있던 웅담분(紛) 6통을 가져갔다.

“물품검사 직원이 내 보따리들을 보더니 ‘짐이 수상하다’며 짐 검사를 늦추기 시작했다. 몇 개 짐은 검사도 하지 않고, 대뜸 친척이 세관 밖에 마중 나와 있는지 물었다. ‘내가 직접 회령으로 찾아갈 것’ 이라고 하니까 나를 3층으로 데리고 가더니, 이때부터 강압적인 태도로 심문했다.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으면 감옥에 넣겠다’고 협박했다. 이때가 저녁 7시가 가까워 밖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형제들을 만난다는 들뜬 마음에 아침도 먹지 않은 李씨는 상당히 피곤한 상태였다.

“내가 무슨 짐이 의심되느냐며 ‘감옥에 넣으려면 넣어라’고 맞서자 검사직원이 몇 가지 서류를 가져와 내 이름을 쓰라고 했다. 그러더니 몇 개 보따리는 빼놓고 나머지 짐만 가지고 중국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나는 항의하면서 나머지 짐을 챙기려고 하자 직원은 ‘모든 짐을 그냥 두고 몸만 돌아가라’며 윽박질렀다. 나는 혼자서 대응할 방법도 없고 몸도 지쳐서 일단 회령세관을 나와 다리를 건너 중국 해관으로 건너왔다”

李씨는 그 자리에서 중국돈 1천1백원과 쌀 100kg, 밀가루 120kg, 옷과 속옷 등 의류품 500여 점, 중고 텔레비전, 중고자전거, 중고 녹화기 등을 빼앗겼다. 오후 한나절만에 어림잡아 중국돈 1만원(한화 130만원 해당) 이상의 금액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李씨는 다음날 다시 회령세관으로 찾아갔다. 원래 중국의 ‘국경통행증’은 1회 통과만 허용되어 있지만 李씨의 사정을 들은 중국해관 직원이 한번 ‘눈감아 준’ 것이다. 이씨가 회령다리를 건너자 회령세관의 경비병들은 李씨가 세관 건물에 들어가는 것을 막았다. 李씨는 철문앞에 앉아 소리를 지르며 “왜 내 짐을 빼앗는가? 짐을 돌려주지 않으면 조선 중앙당에 신소(伸訴)하겠다”며 항의했다.

“이때 간부처럼 보이는 사람이 철문 앞으로 나오더니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 그는 내짐이 ‘비법(불법)월경자의 짐이기 때문에 몰수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증거가 있느냐?’며 따지니까 다른 직원이 나오더니 ‘여기 서류조치를 다 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며 내 서명이 담긴 서류를 내밀었다”

서류에는 회령세관이 李씨의 돈과 물품을 빼앗은 이유가 적혀 있었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李씨의 중국돈 1천1백원은 ‘비법 월경자가 보낸 돈이므로 몰수한다’고 적혀있었고, 친척에게 주려던 옷가지들은 ‘위생상태가 불량하여 몰수한다”고 되어 있었다. 쌀, 밀가루, 중고텔레비젼, 중고자전거 등은 ‘신고하지 않은 물품이므로 몰수한다’는 것이었다.”

전날 회령세관 3층에서 李씨에게 서명을 강요했던 서류들이 바로 이 ‘몰수이유서’였다. 李씨는 중국 선양(瀋陽)에 있는 북한총영사관에 항의할 계획으로 아직도 이 서류를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李씨에게 서류를 건네준 회령세관 직원들은 더이상 李씨를 상대해 주지 않았다. 8월의 뙤약볕에서 4시간 동안 버틴 71세의 노인은 울분을 안고 중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날 이후로 李씨는 억울함을 못 이기고 3주간 앓아 누웠다고 했다.

“중국돈 1만원이면 북한 친척들이 몇 달간 먹고 살 수 있는 돈이다. 내가 비법 월경자라면 그냥 돌아가라고 하면 될 것을 왜 애먹이고 짐까지 다 빼앗느냐 말이다. 돈과 물건을 빼앗긴 것도 억울하지만, 이 나이에 그 젊은 녀석들에게 모욕을 당한 것을 생각하면 잠을 잘 수 없다.”

사례 2

“감옥 넣겠다” 협박당하고 1만원 뺏긴 최모씨

중국 옌지(延吉)의 최모씨(57세)는 지난 8월 말 회령세관에서 중국돈 1만원 상당의 물품을 빼앗겼다.

2001년 가을, 회령에 살고 있는 누님이 최씨를 찾아왔다. 환갑이 넘은 누님의 행색은 초췌하기 이를 데 없었다. 누님은 옥수수죽으로 끼니를 떼우고 있다고 했다. 최씨의 살림도 넉넉지 않지만 10년만에 만난 누님이라 중국돈 700원에 쌀 20kg 을 주었다.

최씨는 두 딸이 출가하자 작년부터 누님에게 살림이나 보태줘야겠다는 생각에 돈을 모았다. 헌옷을 모으고, 시장 상인들에게 부탁해서 흑백 텔레비전과 중고 녹음기도 얻어 두었다. 고물 부품을 조립해서 자전거도 2대 만들었다. 쌀 150kg과 사탕, 과자, 술, 담배들을 샀다. 미리 인편을 통해서 회령세관 앞에서 누님과 만날 날짜를 잡고 그 날짜에 맞추어 집을 나섰다.

“그날 점심 때 나까지 세 사람이 회령세관 앞에 도착했다. 모두 친척이나 형제들에게 돈과 식량을 가져다 줄 요량으로 북한에 들어간다고 했다. 짐을 다 내리고 검사를 시작하는데, 글쎄 신발까지 벗으라고 하더니 신발굽을 검사했다. 검사 직원이 내 사타구니까지 더듬는 것을 보고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 땅을 처음 밟은 최씨의 첫인상은 회령세관 직원들의 ‘난폭함’이었다.

“세관에서 짐 검사를 마칠 때까지 중국돈 250원이 들었다. 한번씩 검사과정을 지날 때마다 돈을 달라고 했다. 짐 검사를 하는데 보따리와 상자를 가위로 삭뚝삭뚝 잘라 풀어헤쳤다. 쌀자루를 검사할 때는 쇠꼬챙이로 자루를 찌르는데 쌀자루에서 쌀이 흘러내렸다. 내가 항의했더니 ‘비법 물건들을 감추었는지 아는가?’ 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나이도 얼마 안된 것들이 존대말도 하지 않았다”

검사가 끝나고 최씨가 짐을 다시 꾸리자, 이번에는 다른 직원이 ‘검사를 다시 해야겠다’며 트집을 잡았다.

두 번째 짐 검사가 끝나자 검사직원은 “이 짐들을 모두 몰수한다”고 통보했다.

나는 “이 물건들을 북한에 가지고 갈 수 없으면, 중국으로 가지고 돌아가겠다”며 버티자 검사직원은 “여기는 조선땅이다. 그러니 당신 마음대로 가지고 나갈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비법 월경자’가 보낸 것이므로 당신을 감옥에 보낼 수 있다”며 협박했다.

이때부터 최씨도 언성을 높이며 대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주위에 아무도 없는 낯선 곳에서 ‘감옥’을 운운하는 그들의 위협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최씨는 “그렇다면 밖에 와 있는 누님이라도 만나고 가겠다”고 사정했지만 “밖에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이날 함께 회령다리를 건넌 두 사람도 모두 짐을 빼앗겼다. 세면도구나 ‘국경통행증’ 등 을 제외하고 모든 물건을 빼앗겼다고 했다. 최씨와 함께 국경을 넘었던 중년 여인은 물품은 없이 현금만 소지하고 있었는데 ‘비법월경자가 보낸 돈’이라는 이유로 중국돈 1만 7천을 모두 빼앗아 갔다고 했다.

두만강 줄기 따라 중국과 통하는 북한의 세관은 혜산, 무산, 회령, 삼봉, 남양등 총 9곳이다. 이중 회령세관은 물류와 인적 이동이 가장 많은 세관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조선족들은 혜산세관, 남양세관, 삼봉세관의 직원들은 비교적 친절하고 원칙적으로 일한다고 입을 모은다. 담배 한 보루, 술 한병만 건네줘도 짐을 옮기는 일을 직접 맡아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주장에 따르면 회령세관의 약탈행위는 한마디로 ‘개인비리’일 가능성이 높다. 피해자들의 다수는 회령세관에서 ‘짐 검사’를 담당하고 있는 ‘최아무개’를 지목하고 있다. 피해자들 중 李씨처럼 선양주재 북한 총영사관에 ‘신소’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중국정부로부터 다시 ‘국경통행증’을 발급받아 북한에 들어간 뒤 조선노동당에 직접 ‘신소’하는 것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다.

이제 북한 관료들의 비리와 부정은 내ㆍ외국인을 가리지 않는 ‘대담한 수준’까지 이르게 되었다. 부정부패가 만연한 평양의 ‘중앙’이 ‘공화국의 관문’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 옌지(延吉) = 김영진 특파원kyj@dailynk.com